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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이 만난 우리 시대의 명인] ⑩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송진호

장구 치며 삶 변주하는 대한민국 최연소 ‘청년 명인’

기사입력 : 2022-07-07 08:05:15

찌는 듯한 더위에 쏟아지는 빗소리처럼 강렬한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흠뻑 적셔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요즘 군 단위의 행사에 빠지지 않는 농악은 예부터 농사짓는 사람들을 하나로 엮어주며 노동의 피로를 덜어주어 구경하는 이들까지 흐뭇하게 했다.

의령 ‘집돌금농악’은 의령군 화정리에 있었던 농악이 임진왜란 이후 400년 동안 전승된 것이다. 임진왜란 이후 오늘날과 유사한 형태를 갖추고 발전했는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걸출한 전문 농악인 송철수 옹(1912~1984)이 직접 명주마을 농악을 가르치면서 활성화되었다. 그는 우리나라 3대 유랑 연희집단인 신반대광대패, 솟대쟁이패 및 남사당패의 치배(풍물놀이에서 타악기를 치는 사람)였다. 의령 ‘집돌금농악’은 송철수 옹의 사망 이후 맥이 끊겼다가 2015년 ‘집돌금농악보존회’를 중심으로 복원되기 시작했다.

지난 2020년 10월 27일 국립국어사전박물관 발기인 대회 및 창립 선포식에서 송진호 대표가 장구 공연을 하고 있다./사진작가 제광모/
지난 2020년 10월 27일 국립국어사전박물관 발기인 대회 및 창립 선포식에서 송진호 대표가 장구 공연을 하고 있다./사진작가 제광모/

의령군 의령읍 소재 청년 문화예술협동조합인 ‘천율’ 송진호 대표. 그는 고 송철수 옹의 손자로 장구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다. 2020년 대한민국 대한명인회 30살 최연소 명인이며, 2019년, 2020년 경남 차세대 유망예술인으로 선정되었고, 2021에는 대한민국 인재상을 수상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흥이 많았다. 새소리, 바람 소리, 벼락이 치는 소리에도 손가락을 두드리곤 했다. 7살 무렵 할아버지의 제자에게 풍물놀이를 배우러 다녔다. 그때는 학교에서 사물놀이 수업이 많았다. “야 너 한번 해봐” 친구들 앞에서 우연히 해본 것이었는데 선생님과 친구들은 우레 같은 박수를 보냈다.

“기분이 좋았어요. 사람들이 손뼉 치고 좋아하니까 우쭐해져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죠.”

2016년 의병제전 ‘집돌금농악’ 축하공연.
2016년 의병제전 ‘집돌금농악’ 축하공연.

그는 중학생 때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상을 받았지만,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는 대신 의령고등학교를 택했다. 대학교는 최고의 대학에 진학하고 싶어 중앙대 전통예술학부 국악과에 입학해 학사과정을 마쳤다. 진주교육대학 대학원에서 문화예술 석사과정을 밟았으며 지금은 영남대학교 대학원에서 음악학 박사과정 중에 휴학한 상태다.

“장구를 10년 정도 치면 어느 정도 악기에 대해 안다고 할 수 있죠. 그러나 기술적인 것만으로는 안 되는 부분이 있어요. 연주를 한다는 것은 사람의 마음에 감동과 울림을 줘야 하는 것이니까요. 안정적인 연주를 위해 버스킹 공연도 해야 하고요, 영상을 찍어서 음악에 몰입할 수 있는 내공도 길러야 하고요, 또한 정신적인 수행도 병행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연습은 매일매일 꾸준하게. 연주는 까다롭게 해야 해요. 그래서 무대에서 연주할 때는 연습했던 자기를 최대한 믿고 임하는 게 중요합니다.”

스님 같은 민머리의 그는 장구를 잡은 지 23년 차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젊다. 그러나 악기를 대하는 표정만큼은 노련해 보인다.

“장구로 곡을 연주할 때는 처음에는 느리게 다음에는 아주 느리게 곡을 쳐보는 겁니다. 가능한 만큼 느리게 치면 칠수록 박자가 더 힘들어져요. 그다음엔 자신이 칠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한 번 쳐보는 거예요. 그러면 자신이 컨트롤 할 수 있는 편한 속도가 나오거든요. 박자의 기준은 내가 잡는 것이기 때문에 손 소리가 안 들릴 정도로, 가장 느리게 쳐보고 가장 빠르게 쳐보다 보면 소화 가능한 속도로 실력이 탄탄해지더라고요. 그래서 빠르게 칠 때와 느리게 칠 때의 양쪽 리듬의 속도를 다 살려보는 연습을 꾸준히 하면 최적의 안정감을 가지게 되고 또 자신만의 속도를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칠 수 있게 돼요. 그게 제가 연마한, 나름의 방법입니다.”

송진호 대표가 장구 공연을 하고 있다.
송진호 대표가 장구 공연을 하고 있다.

“공연하러 다니면서 인상 깊었던 일이나 연주를 든다면요?”

“군에 입대할 때 예체능 국악대를 뽑았어요. 해병대사령부 군악대 군악병사물놀이 전공으로 5명 뽑았는데, 너무나 힘든 관문이었죠. 5명 모두 동반 입대했는데 제가 팀장을 맡게 됐어요. 공연을 나간 것 중 백령도에 갔을 때는 굉장했어요. 그곳은 정말 멀더라고요. 4~5시간 정도 멀미하고 내내 쓰러지듯 기진맥진해 있을 때 북한 땅과 백령도가 보였어요. 그런데 공연할 생각을 하자 힘이 나는 거예요. 공연은 5명 전원 모듬북 작품을 하나, 다른 하나는 사물놀이 공연을 했는데 앙코르가 나오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곳 주민들이 공연을 너무 좋아하시는 거예요. 대접도 잘해주시고. 그곳에 갈 때는 많이 힘들었는데, 공연을 하고 나니 공연이 누구한테는 큰 기쁨을 주는구나! 마음에 위안을 주는구나, 하는 뿌듯하면서도 벅찬 즐거움을 안고 배에 오를 수 있었죠.”

그때 송진호씨와 중앙대 군악대 동기 4명이 모여 창립한 단체가 의령 연희공간 ‘천율(天律)’이다. 그는 의령 전통문화의 풍물을 체계화하고 널리 알리기 위해 무한한 열정을 쏟고 있다.

송철수 옹은 송진호 대표가 태어나기 6년 전인 1984년에 작고했다. 역사적인 격변의 시기를 거치며 할아버지의 사진은 태워 없어지거나 모두 버려졌다. 송진호 대표가 전국을 돌며 제자들을 수소문해 그의 몇몇 사진을 구했고, 그의 기능도 전수받았다. 그것이 장구와 얼른조선식마술(연행했던 놀이 종목 중 하나), 그리고 신반대광대다.

그동안 송진호 대표에게 안정된 일자리 제안이 여러 군데에서 들어왔지만, 그는 모두 마다하고 의령 ‘집돌금농악보존회’와 ‘신반대광대’의 예술감독을 맡았다. 그는 2016년 황토현전국농악경연대회 대상(국무총리상), 2017년 경남민속예술축제 최우수상(경상남도지사상)을 수상했다. 이후 의령집돌금농악보존회 학술세미나를 6회 개최했으며 2018년 한국민속예술축제 경남도 대표로 출전해 신명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의병탑 앞 송진호 대표.
의병탑 앞 송진호 대표.

마지막으로 장구가 송 대표에게 어떤 의미일까, 물어보았다.

“장구는 아버지와 고모, 저의 가족들에게 대못을 박은 사건이었죠. 왜냐면 그들은 저에 대한 기대가 너무나 컸기 때문인데… 풍물이 저의 미래를 못 박은 것이라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제가 하나하나 잘 꾸려가고 있고 나름 인지도도 있고, 열심히 사는 것 같으니까. 그런대로 봐주는 거죠.”

송 대표는 바쁜 시간을 쪼개어 고등학교에 찾아가 일주일에 6시간씩 학생들에게 재능기부를 한다. 풍물을 가르칠 때면 심신이 찌든 학생들과 한몸이 되어 농악을 즐긴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의 생계가 가장 현실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국악을 하는 청년예술가들이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 직장이 없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예술의 생태계라고 생각합니다”라며 쓴웃음을 짓는다.

그럼에도 송진호 대표는 100여명의 농악패를 만들고 있다. 매주 목요일 의령문화원에서 주민들에게 풍악을 가르친다. 장고와 북을 울리며 사람들의 가슴에 다가갈 때 그는 살아난다. 그가 사람들과 풍물놀이를 하며 악기를 울릴 때 사람들의 얼굴은 생기로 빛난다. 너와 내가 타인이 아니라 우리라는 것, 서로에게 든든한 지팡이라는 것을 느낀다. 그럴 때 송 대표는 이미 수천개의 장구와 북, 꽹과리와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하늘과 땅을 울리는 소리를 듣는다.

홍 혜 문소설가
홍혜문 소설가

홍혜문(소설가)

※이 기사는 경남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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