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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기울어진 말들- 이상규(문화체육부장)

기사입력 : 2022-09-19 19:40:27

언젠가 성평등 강사가 우스갯소리라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 말은 대부분 남자 우선, 남자 중심으로 되어 있다. 보기 드물게 여성이 먼저 나오는 말이 있다. 그 말인즉 ‘연놈’이다.” 이 농담에도 남녀의 반응이 다르다. 남자는 대개 이 말을 듣고 웃고 넘기지만 여자들에겐 우스갯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여성 차별성 호칭이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우리 사회에서 이 말은 유머라기보다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진다.

▼20~30대 남성들은 성차별이나 페미니즘이란 말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병역의무와 함께 심한 취업난을 겪고 있는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남녀 성차별은 엄연하고 개선 속도도 늦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고 있다지만 고용률이나 고용 형태, 임금 수준 등에서 남녀 격차가 여전하다. 2022년 9월 현재 여성 고용률은 남성보다 20%포인트 정도 낮고 비정규직이나 저임금 근로자도 여성이 훨씬 많다.

▼‘김여사→운전미숙자, 바지사장→대리사장, 효자상품→인기상품, 스포츠맨십→스포츠정신’.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최근 “특정 성별에 기울어져 있는 말들, 이제는 평등하게 만들어갑시다”며 지난 2020년 학교 등 공공기관에 배포한 자료 중 일부이다. 이 단체는 성차별 언어를 성인지 관점의 언어로 바꾸고, 성평등 의식을 확산하기 위해 ‘성차별 언어 개선’ 캠페인을 해오고 있다.

▼저출산 문제에서 보듯 결혼, 임신, 육아는 더이상 여성만의 일이 아니다. 여성의 경력단절로 인한 부작용도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감당해야 한다. 양성평등교육진흥원 관계자는 캠페인 취지를 설명하며, “누군가가 성차별적이라고 느끼고,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단어들을 바꿔나가는 과정을 통해 성평등 의식을 깨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남녀가 어우러져 살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성차별을 개선하기 위해선 기울어진 말부터 바꾸는게 순서일 것이다.

이상규(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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