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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환경 시즌3] (23) 우수관에 ‘고래’ 만드는 사람들

‘바다의 시작’ 우수관, 고래가 웃자 쓰레기가 줄었다

기사입력 : 2022-09-26 21:31:02

흡연자가 길거리에 버린 담배꽁초는 우수관을 통해 하천과 바다로 향한다. 수질을 오염시키고 해양생물을 해친 담배꽁초가 마지막으로 향하는 곳은 사람의 몸이다. 미세하게 쪼개진 담배 플라스틱을 먹은 물고기가 우리의 식탁 위에 올라오면서다.

예컨대 담배꽁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바다를 지키고 우리의 몸 또한 지키는 길이 된다. 사람이 만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 또한 사람이다. 바다를 위해, 사람을 위해 바다의 시작인 우수관을 지키려는 지역주민들이 하나 둘 힘을 합치기 시작했다.

창원 봉림동우수관지킴이 소속 회원들이 우수관 빗물받이에 붙인 고래 스티커./봉우리/
창원 봉림동우수관지킴이 소속 회원들이 우수관 빗물받이에 붙인 고래 스티커./봉우리/

◇지역을 위해 나서는 주민들= 창원 봉림동 우수관 빗물받이는 파란 고래다. 빗물받이 양 옆으로 고래의 머리와 꼬리 스티커가 붙어 있다. 직접 봉림동을 돌며 녹슨 빗물받이를 고래의 모습으로 변화시킨 것은 지역 주민들이다.

봉림동우수관지킴이(이하 봉우리)는 봉림동 주민 10여명이 함께하는 주민자치회 소속 봉사동아리다. 이들은 기후위기·환경재난 시대에 누구나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을 찾기 위해 모였다. 모티브는 지역 기관에서 시작한 캠페인이다. 봉우리 회원들은 지난해, 경남도자원봉사센터가 경남 18개 시·군 자원봉사센터와 공동협력사업으로 시작한 ‘바다의 시작 캠페인’을 알게 됐다. 우수관에 담배꽁초를 비롯한 쓰레기를 투기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인식개선 활동이었다.

지난 7월 봉우리 회원과 학생 등이 봉곡시장에서 캠페인을 전개하는 모습./봉우리/
지난 7월 봉우리 회원과 학생 등이 봉곡시장에서 캠페인을 전개하는 모습./봉우리/
지난 7월 봉우리 회원과 학생 등이 봉곡시장에서 캠페인을 전개하는 모습./봉우리/
지난 7월 봉우리 회원과 학생 등이 봉곡시장에서 캠페인을 전개하는 모습./봉우리/
지난 7월 봉우리 회원과 학생 등이 봉곡시장에서 캠페인을 전개하는 모습./봉우리/
지난 7월 봉우리 회원과 학생 등이 봉곡시장에서 캠페인을 전개하는 모습./봉우리/

김은주 봉우리 대표는 “봉림동은 장마철마다 우수관이 막혀 낮은 지역의 주택가가 침수되는 일이 많았다”며 “환경을 위해서도 지역민의 삶을 위해서도 우수관 관리가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해 뜻이 맞는 사람과 함께 활동을 시작했다”고 취지를 전했다.

봉우리는 지난해부터 인근 학교 초등학생들과 함께 유동인구가 많은 장소와 담배꽁초를 비롯한 쓰레기가 많이 버려지는 장소, 학교 주변 등 장소를 선정해 우수관 빗물받이를 청소하고 캠페인 문구와 고래 스티커를 빗물받이 주변에 부착했다.

고래 한 마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몇 시간이 걸린다. 빗물받이 뚜껑을 열고 버려진 담배꽁초와 쓰레기를 수거한 뒤 빗물받이 양 옆으로 고래 입과 꼬리 스티커를 붙인다. 스티커가 잘 고정되기 위해서는 고무망치로 500번에서 1000번을 두들겨 줘야 한다. 팔이 얼얼하지만 방긋 웃고 있는 고래 스티커를 보면 마음이 뿌듯하다고 말한다. 주민들은 고래가 된 빗물받이가 건강한 바다를 만들기를 기원한다.

작업 이후 모니터링도 나서고 있다. 작업 장소를 주기적으로 방문해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진행하며 주민들의 행동 변화와 우수관의 상태를 동아리 회원들과 공유하고 있다. 지속적인 관리를 위해 2022년 경남도공동체활동지원주민공모사업에 공모한 사업 ‘우수관은 쓰레기통이 아니야’가 선정되기도 했다.

◇학교를 넘어 사회 변화 꿈꾸다= 창원 무동초등학교에도 ‘바다 지킴이’가 있다. 학교의 환경동아리인 ‘그린그램’ 소속 학생들이다. 이들은 바다와 해양생물을 위한 활동을 주로 전개하며 해양오염 원인이 되는 담배꽁초를 우수관에 버리지 않기 위한 캠페인도 진행한다.

창원 무동초등학교 환경동아리 그린그램 소속 학생들이 우수관 빗물받이에 그린 고래그림./그린그램/
창원 무동초등학교 환경동아리 그린그램 소속 학생들이 우수관 빗물받이에 그린 고래그림./그린그램/

학생들은 봉우리와는 달리 우수관 빗물받이에 스티커가 아닌 고래 그림을 페인트로 그린다. 20여명의 초등학생들이 옹기종기 앉아 그린 고래는 무동초등학교 앞에 설치된 빗물받이에서 방긋 웃고 있다.

창원 무동초 그린그램 학생들이 우수관 빗물받이에 고래그림을 그리고 있다.
창원 무동초 그린그램 학생들이 우수관 빗물받이에 고래그림을 그리고 있다.

아이들은 담배꽁초를 버리지 말자는 캠페인에서 나아가 담배꽁초 어택 활동도 진행했다. 담배회사에 투기된 담배꽁초를 모아 친환경 담배필터를 개발해 달라는 단체 편지를 보내고 다 핀 담배꽁초를 보관할 수 있는 꽁초처리 제품 자판기를 동네 아파트, 상가, 편의점 등에 설치하기도 했다.

그린그램 동아리 회장인 정아람(무동초·6년) 양은 “담배 필터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있고 그것이 결국 우리의 몸으로 들어온다는 사실이 놀라웠다”며 “그런 것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는 것이 뿌듯했다”고 얘기했다. 이어 “다른 학생들과 어른들에게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환경에 대한 심각성을 꾸준히 알려나가고 싶다”고 전했다.

창원 무동초 그린그램 학생들이 담배 회사에 보낸 담배꽁초와 편지.
창원 무동초 그린그램 학생들이 담배 회사에 보낸 담배꽁초와 편지.

◇우수관 투기 문제, 장기적인 의제로 나아가야= 우수관 빗물받이가 고래의 모습으로 변모하자 지역 주민들의 행동도 바뀌게 됐다. 빗물받이 뚜껑을 드러내 청소해도 금방 쌓이던 담배꽁초와 쓰레기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김은주 봉우리 대표는 “아예 모아놓은 담배꽁초들을 한 번에 우수관에 쏟아 버리는 일도 있었는데 고래 스티커가 붙은 이후로 그런 흔적들이 보이지 않았다”며 “주변정리도 잘 되고 있어 효과를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수관에 대한 인식 변화는 봉우리의 최종 목표다. 이들은 최근 ‘우수관은 쓰레기통이 아니야’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지역 주민들이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바다의 시작 챌린지’도 시작했다. 캠페인은 이미 확산되고 있다. 봉우리는 지난 21일 창원 마산회원구 합성2동 주민자치위와 함께 합성2동 인근의 빗물받이에 고래 스티커를 부착했다. 합성2동 주민자치위도 우수관 미화 작업을 의제사업으로 지정했다. 함안의 한 중학교에서도 연락이 왔다. 같은 활동을 진행하는 환경 동아리를 만들 예정이라는 얘기였다.

봉우리 회원들은 지역의 작은 동아리가 지역에서 시작한 캠페인이 창원 전체로, 경남 전체로, 나라 전체로 뻗어나가면 좋겠다는 소망이 허황된 꿈은 아니겠다고 웃으며 얘기한다. 다만 단기적인 관심에서 그치는 것은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담배꽁초 우수관 투기 문제는 장기적인 의제로 끌고 나가야 한다.

“우리 캠페인이 화제가 되지 않는 게 더 좋을지 몰라요. 반짝 화제가 됐다가 금방 사그라지기보다는 천천히 인식전환이 이뤄져야 이 의제가 지역으로 확산될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다른 챌린지는 기관장, 단체장부터 시작하지만 우리는 일반 시민들부터 시작해 천천히 올라가려구요. 우리를 위해서 바다를 위해서 캠페인은 계속돼야 합니다.”

어태희 기자 ttott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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