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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밥- 강지현(편집부장)

기사입력 : 2022-10-03 19:40:49

우리에게 밥은 주식(主食) 그 이상의 의미다. 밥은 안부다. ‘밥 먹었냐’는 말은 상대의 안녕을 묻는 인사다.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에는 관심과 위로가, ‘밥 한번 먹자’는 말에는 사랑과 애정이 담겨 있다. 좋아하는 사람과 먹는 밥은 기쁨이다. 그런가 하면 밥은 목숨이다. ‘밥줄’은 일터요, ‘밥벌이’는 나와 식구(食口)를 먹여 살리는 일이다. 때문에 우리는 ‘밥값’ 하는 인간이 되기 위해 부단히 애쓴다.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 쌀밥 한번 배불리 먹는 게 소원이던 때가 있었다. 가을에 수확한 양식이 바닥났던 보릿고개의 굶주림은 악몽이었다. 밥을 양껏 먹을 수 있게 된 건 1970년대 통일벼가 보급되면서다. 당시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136㎏까지 늘었다. 주발에 고봉밥 쌓아올려 먹고 그 힘으로 일했다. 하지만 쌀 소비량은 매년 줄어 지난해엔 56.9㎏으로 떨어졌다. 50년 전 절반에도 한참 못 미친다. 한국인이 하루에 먹는 쌀은 155.8g. 햇반(210g) 하나도 안되는 양이다.

▼밥은 죄가 없다. 뱃살의 주범으로 찍혀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던 밥이 저탄고지(저탄수화물 고지방) 식단의 유행으로 한동안 더 미움 받았다. 탄수화물이 만병의 근원이라는 속설도 한몫했다. 문제는 잘못된 식습관이다. 밥은 오히려 건강한 삶을 돕는다. 쌀은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무기질, 지방, 단백질 등을 고루 함유하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쌀 중심 식단은 비만을 줄이고 심혈관질환을 예방한다. 청소년의 정서 안정에도 효과가 있다. 밥은 보약이다.

▼밥은 사랑이다. 빵이나 면, 고기에서는 느낄 수 없는 따뜻함이 있다. 밥은 엄마다. 푸근하고 마냥 좋다. 이토록 애틋한 밥이지만 밥을 둘러싼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전국의 쌀 저장창고엔 팔지 못한 묵은 쌀이 가득 쌓여있고, 유례없는 고물가에도 쌀값만은 속절없이 떨어진다. 농민들은 황금빛 들판을 보고도 웃지 못한다. 밥 짓는 가을날 아침, 구수한 밥 냄새에 마음이 아리다.

강지현(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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