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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호머 헐버트-강희정(편집부 차장대우)

기사입력 : 2022-10-06 20:07:19

“임금께서 친히 언문(諺文: 당시 한글을 부르던 말) 28자를 만드셨다” 1443년 세종실록의 한 내용이다. 이는 조선 4대 임금인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했다는 기록이다. 3년 후 세종은 글자를 만든 이유와 사용법을 적은 훈민정음을 반포한다. 하지만 당시 훈민정음을 비롯해 허균의 홍길동전, 최초의 한글 조리서 음식디미방 등을 살펴보면 지금의 띄어쓰기와 점찍기가 없다.

▼“문자사에서 한글보다 더 간단하게, 더 과학적으로 발명된 문자는 없다” 1886년 조선에 도착한 푸른 눈의 외국인, 호머 헐버트. 그는 미국에서 온 교육자 겸 선교사였다. 헐버트는 일찌감치 한글의 우수성을 알아본 첫 번째 외국인이었다. 한글을 영어와 달리 발음기호가 없고, 자음과 모음의 조합이 간편한 과학적인 문자라고 평가했다. 1889년 ‘사민필지’라는 최초의 한글 지리 교과서를 만들며 한글보다 한자를 우수하게 여기던 당시 분위기를 개탄하기도 했다.

▼“구절을 띄어쓰는 것은 알아보기 쉽도록 함이다” 본격적으로 한글에 띄어쓰기를 사용한 것은 1896년 창간된 독립신문이다. 주시경과 함께 한글을 연구하던 헐버트는 독립신문에 띄어쓰기와 점찍기를 도입해 가독성을 높인 장본인이다. 이후 주시경과 국문연구소를 설립, 한글 맞춤법을 체계화해 한글 발전에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됐다. 또한 한글의 우수성과 우리문화를 세계에 알린 언론인이자 독립을 지원한 독립운동가였다.

▼“한국인라면 하루도 잊어서는 안 될 인물이다” 안중근 의사는 일본 경찰이 헐버트에 대해 묻자 이렇게 답했다. 한글이 만들어진 지 올해로 제576돌이다. 창제 당시에는 대접받지 못했던 한글이 지금의 대한민국 기본 문자가 된 것에는 헐버트 같은 한글학자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한글날, 한국인보다 더 한글을 사랑한 ‘찐한국인’이었던 그의 발자취를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것도 뜻깊지 않을까 싶다.

강희정(편집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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