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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수학 과외- 정현수 (동화작가)

기사입력 : 2022-10-27 20:25:36

“선생님, 피타고라스와 삼각비의 사인, 코사인, 탄젠트, 이런 거 고등학교 때 배웠는데요?”

파뿌리 같은 허연 머리의 할매는 젊디젊은 수학 과외 선생님에게 수줍은 듯 주름 자글자글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네, 지금은 중학교 교과서로 당겨왔어요.”

젊은 과외 선생님도 애매한 웃음으로 할매의 모자란 실력을 위로해 주듯 상냥히 대답했다.

바로 그 파뿌리 할매가 나, 그리고 범상치 않은 수학 실력자 젊은 과외 선생님과의 대화는 할매를 부끄럽게도 만들지만, 삶의 보태기가 되어 3년 시간은 이렇게 흘렀다.

전 세계가 코로나 여파로 세상을 혼돈 속으로 막 밀어 넣는 시점에 나는 어쩌다 ‘방정식’ 한 문제를 접하게 됐다. 아마 중학교 1학년 교과서에 있을 법한 문제였는데, 너무 쉬워 보여 금방 풀어버릴 줄 알았는데 예상과는 반대로 풀지 못했다. 나는 분명 중학교 때 수학 시험도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기억했다. 이렇게 절망스럽게 살아도 되나 안절부절못했다. 한국검정교과서 협회에다 중학교 수학 교과서를 주문하고 책이 도착하는 즉시 그날부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학 방정식 문제 풀이에 전념했다.

오른 팔목과 어깨, 허리는 집안일을 못 할 만큼 아팠고 병원 치료를 겸하면서도 연필을 놓지 못하고 두 달 가까이 방정식에만 매달렸다. 방정식만 끝내면 될 듯했지만, 날이 지날수록 방정식보다 더 흥미로운 문제가 나오고 혼자서 전쟁을 치르자 큰 결심을 하게 되었다. 과외 선생님이 꼭 필요했고 3년이란 시간인 지금에 이르렀다. 어느 날 소셜미디어를 보다가 풋 하고 웃음이 터졌다. ‘제일 쓸모없는 취미생활’ 중에 수학 공부가 해당한다는 것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 나이에 수학 공부해서 뭣에 쓰려고?”

지인들이 말했다. 그때도 지금도 듣고 있는 말에 나는 실실 웃는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만둘 수가 없다. 공부 도중 파방(罷榜) 되면 수학에 대한 지금의 이런 깨소금 맛을 놓치게 될 아까운 마음이 팍삭 더 늙은 할매로 전락하고 말 것 같은 불안감이다.

“그렇다면 고등학교 수학도 공부할 텐가, 어쩌면 대학 수능도 보겠네!”

그들은 대단하다는 말을 섞어서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그리하여 수학 과외 선생님의 가르침에 이젠 중 3 수학책에 코를 박고 앉아 전력을 다하는 중이다. 이런 내가 되레 기특해서 흐뭇 또 흐뭇하다.

“적어도 중학 3년 치는 마쳐야지. 전 과정을 깨우치고 나면 어쩔는지. 그 뒷일은 뒤에 생각하기로 하자. 옳지! 이젠 소문을 내 보련다.”

사그라지지 않는 열기지만 알리기엔 좀 부끄럽긴 하다. 그러나 수학의 재미는 말로 나타낼 수 없을 만치 정답을 맞혔을 때의 쾌감, 잘 풀어지면 풀어지는 대로 안 풀어지면 안 풀어지는 대로 수학의 매력에 자꾸 빠져드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참으로 기이하다.

‘수학’이란 아주 명쾌한 학문이라 생각이 든다. 지금의 내 실력으론 학문이라고 말하기엔 턱도 아니지만 왜 이제야 수학을 접하게 되었는지 매우 늦은 감에 꽤 안타까운 마음이다.

치매는 걸리지 않을 거라는 지인들의 우스개 같은 농이 수학의 정답보다 더 깊이 나의 뇌 공부방에 들어박혔다.

정현수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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