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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한국민속소힘겨루기협회 왕재구 의령군지회장

“코 꿴 지 6년… ‘의령 소힘겨루기’ 전통 계승에 앞장”

2016년 50대 후반에 소힘겨루기 입문

기사입력 : 2022-11-03 08:04:04

한국민속소힘겨루기협회 의령군지회 왕재구(64) 지회장은 요즘 의령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람 중 한명이다. 지난 1월 의령군지회장을 맡은 이후 10개월 만에 지회 소속 소들이 각종 민속소힘겨루기대회에 출전해 무려 7차례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이는 의령 소들이 한해 거둔 성적으로는 역대 최고의 성적표다. 여기다 지난 5월 1억5000만원 정도의 거액을 주고 매입한 전국 소힘겨루기 최강인 ‘갑두’가 최상의 컨디션이 아니면서도 지난 9월 열린 함안대회에서 우승하며 소힘겨루기 인기몰이에도 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갑두는 힘겨루기소 중 역대 최고의 승률(98%)을 갖고 있어 전국적으로 다양한 계층의 팬들이 많다. 소힘겨루기 마니아들은 뛰어난 성적 때문에 각종 대회에 출전하는 갑두를 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대회장을 찾아오고 있고 왕 지회장에게는 갑두의 근황을 묻는다고 한다.

여기다 의령군지회는 전국 처음으로 소힘겨루기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해 주도적으로 나서는 등 전통 민속문화 계승에도 앞장서고 있다.

왕재구 한국민속소힘겨루기협회 의령군지회장이 ‘갑두’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왕재구 한국민속소힘겨루기협회 의령군지회장이 ‘갑두’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심신이 허약할 때 소힘겨루기에 입문= 왕재구 지회장의 소힘겨루기 입문은 매우 늦은 나이인 50대 후반에 이뤄졌다. 지난 1984년부터 소 사육을 시작해 현재 150두 가량을 기르고 있지만 소힘겨루기에는 지난 2016년 입문했다. 당시 육체적·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였던 왕 지회장에서 동네 선배들이 “코를 꿰바라(소힘겨루기에 입문해라). 재미가 있을끼다”라고 권유하면서 소힘겨루기와 인연을 맺었다. 소힘겨루기에 입문한 이후 왕 지회장은 훈련하는 소들과 정신적 교감을 하고 직접 훈련도 하면서 건강을 많이 회복했다고 한다. 현재 갑두를 포함해 7두를 훈련시키고 있다.

왕 지회장은 2017년과 2018년에는 소힘겨루기협회 의령군지회 감사를, 2019년부터 2021년까지는 부지회장을 역임하고 올해 1월부터 지회장을 맡고 있다. 지회장은 지회를 운영해야 하고 각종 대회 등을 준비해야 해 자신의 힘겨루기소 훈련과 대회에 집중할 수 없어 회원들은 맡기를 꺼린다고 한다. 하지만 왕 지회장은 3년 만인 올해 각종 대회가 재개되자 지회 운영 활성화 및 회원 권익 향상을 위해 사재 500만원을 기탁하고 의령 소들의 각종 대회 참가를 지원해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두고 있다.

◇소힘겨루기 전국 최강 갑두 매입으로 유명세= 왕 지회장은 지난 5월 경북 청도에서 태어난 9년생 갑두를 1억5000만원을 주고 매입했다. 일반적인 백두급 힘겨루기소의 2~3배 가격이다. 이 금액은 힘겨루기소 역대 최고 금액으로 알려져 있다. 갑두는 당시 민속소힘겨루기 대회는 물론 청도갬벌대회 성적까지 포함해 무패를 달리던 백두급 전국 최강자였다. 갑두는 10월 말 기준 전국민속소힘겨루기대회 55전 53승 2패, 청도갬벌대회 40전 40승 무패 등 총 93전 91승 2패(승률 98%)를 기록하고 있는 현역 최강자다.

고향을 떠나 의령군 가례면 송죽농장으로 터전을 옮긴 갑두는 한동안 제 컨디션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잘 먹지도 않으면서 기력이 없어 힘없이 바닥에 엎드리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한다. 하지만 왕 지회장이 3개월 정도 지극 정성으로 보살피고 사료를 교체하면서 이제는 전성기 때의 70% 정도는 컨디션이 회복됐다고 한다.

왕 지회장은 자신의 몸도 완전하지 않아 다른 힘겨루기소들의 훈련은 전문 훈련사에게 맡기지만 갑두만큼은 직접 훈련을 시킨다. 여름철에는 5시 정도 일어나 남강변에서 1시간 30분 정도 훈련을 한다. 하지만 농번기에는 일손이 모자라 훈련을 하기가 쉽지 않다. 왕 지회장은 갑두가 컨디션을 잘 조절하면 내년까지는 최고의 기량을 유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힘겨루기소 사육에 많은 비용 수반= 힘겨루기소를 키우는데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유지관리비용이 많이 든다. 전문 훈련사에게 훈련시키려면 1두당 월 평균 80~100만원이 든다. 몇개월만 훈련시키더라도 비용이 엄청나다. 또 1두당 월 사료비 30만원은 기본이고 영양제 구입 등에 추가로 20만원이 더 든다. 전국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소 이동차량을 대여하고 대회 수일전부터 현지에 도착해 숙식해야 한다. 대회 직전에는 힘을 쓰는데 도움이 되는 최고급 영양제나 음식을 제공한다. 전국대회 1회 참가비용만 300만원 정도가 소요된다. 일년에 전국대회 5~6곳에 참여하려면 최소 1500만원이 필요하다. 따라서 힘겨루기소 1두당 연간 3000만원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같은 비용 부담 때문에 힘겨루기소 사육은 결코 쉽지 않다. 현재 의령군지회 회원은 50여명이지만 실제 힘겨루기소를 사육하는 회원 수는 30명 정도에 불과하다. 사육두수도 60여두에 불과하다.

왕 지회장은 힘겨루기소의 두수가 적정한 수준으로 늘어나고 4월에서 10월까지 월 2회 정도 준상설대회가 개최되길 희망한다. 그러면서 지자체가 사육농가에 지원금 규모를 늘려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지원금 규모가 늘면 힘겨루기소 사육에 도움이 되면서 소힘겨루기 전통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왕 회장은 준상설대회는 지역의 주요 관광상품이 될 수 있는 만큼 관광산업 육성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통보전에도 앞장서는 의령군지회= 민속소힘겨루기 의령군지회는 소힘겨루기의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및 보유자 인정 등에도 주도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회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소힘겨루기의 무형문화재 지정 및 보유자 인정 등에 대한 타당성 조사를 실시했다. 이어 자체적으로 관련 용역을 발주했고 의령군에서도 비슷한 용역을 발주해 힘을 보태고 있다. 지회는 경남도의 조언과 지원을 받아 무형문화재 등록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왕재구 지회장은 “우리의 전통민속문화이자 놀이인 소힘겨루기가 다시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 다행스럽다”며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소힘겨루기 본향에 걸맞게 전통문화를 잘 계승하고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왕재구 한국민속소힘겨루기협회 의령군지회장이 ‘갑두’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왕재구 한국민속소힘겨루기협회 의령군지회장이 ‘갑두’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소힘겨루기 역사= 소힘겨루기는 수소끼리의 싸움이다. 소힘겨루기는 농경사회에서 소를 기르기 시작할 때부터 자연발생적으로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이는 농경사회의 주요한 풍속이자 놀이문화였다. 소힘겨루기는 마을 대항전, 면 대항전, 군 대항전으로 발전했다. 지금은 의령, 진주, 함안, 창녕, 창원, 김해, 대구, 청도, 보은, 완주, 정읍 등 전국 11개 지역에서 개최되면서 전국대회로 발전했다.

소힘겨루기는 곡식이 무르익고 소들이 들판에서 풀을 배부르게 뜯어먹어 영양이 좋고 근육의 활력이 왕성한 때인 백중날이나 추석날 등에 진행됐다. 농사를 짓느라 비지땀을 흘렸던 농민들이 풍년을 기원하며 즐긴 마을축제와 같은 민속놀이의 하나로 연례적으로 행해졌다.

◇의령 소힘겨루기 역사= 의령지역 소힘겨루기는 고려말 공양왕 때 진주 목사 관할에 있던 의령현과 합천군의 속현이었던 신번현(현재는 신반)이 합쳐진 후 두 현이 동서로 나눠 양지역 힘겨루기를 소힘겨루기를 통해 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홍의장군 곽재우가 왜구 침입을 막기 위해 낙동강과 남강변에 소를 몰아내 곳곳에서 싸움을 붙여 모래바람과 함성으로 의병들이 많아 보이게 해 정암진 승첩을 이끌어 내는 전략으로 사용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소힘겨루기는 일제의 단속으로 주춤하다가 해방이후 곳곳에서 다시 진행됐다. 의령지역은 의령천과 정암진의 모래사장, 가례면의 한내변, 유곡면의 세간천변, 부림면의 신반천변 등에서 실시됐다고 전해진다.

근대 의령의 소힘겨루기 역사와 전통은 진주와 함께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의령에서는 1910년도에 ‘의령투우대회’가 열린 것을 보여주는 우승기가 김일상(75)씨 집에서 발견됐다. 이는 의령의 근대 소힘겨루기대회 역사가 110년 이상 된 것을 증명한다.

현대에서는 1986년 1회 의령소힘겨루기대회가 열렸고 올해 33회 대회가 개최됐다. 의령에는 전국을 호령한 유명한 힘겨루기소들이 많았다. 한 때 전국을 재패한 의령 소는 ‘범이’, ‘꺽쇠’, ‘불사조’ 등이 있었다. 이 중 범이는 성적 191전 187승 4패(승률 98%)로 전국에서 힘겨루기소로 가장 유명했다. 현재는 백두급 전설인 ‘갑두’와 올해 백두급에서 2승을 거둔 ‘강투’, 한라급에서 3승을 거둔 ‘태검’이가 전국적 명성을 얻고 있다.

글·사진= 김명현 기자 mh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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