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작가칼럼] 자신의 색깔로 어우러진 단풍처럼- 임채성(시조시인)

기사입력 : 2022-11-03 19:34:58

바야흐로 단풍의 계절이다. 묘향산과 금강산을 거쳐 설악산으로 남하한 단풍의 물결이 내장산과 지리산, 바다 건너 한라산까지 점령했다.

산과 들의 나무는 물론 도심의 가로수들도 초록의 고집을 버리기 시작했다. 가히 만산홍엽(萬山紅葉)이란 말을 실감케 한다.

나뭇잎은 봄부터 여름까지 초록의 엽록소를 덜어내고 단풍이란 이름으로 물든다. 광합성을 담당하던 엽록체 속의 엽록소를 분해하여 회수하고 나면 보다 안정적인 색소만이 남는데, 그것이 바로 그 나뭇잎의 단풍색이 되는 것이다. 나뭇잎이 드러내는 단풍색이야말로 나무 본연의 색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단풍이 절정인 숲을 들여다보면 깨닫는 진실이 있다. 단풍은 빛에 의한 색의 축제이지만 그 축제를 주관하는 것은 특정한 하나의 나무가 아니다. 단풍나무 하나의 색깔만을 단풍이라 칭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단풍나무와 참나무, 은행나무, 느티나무, 벚나무, 자작나무 등 종류도 다양하다. 단풍나무, 당단풍, 홍단풍, 사탕단풍, 복자기, 고로쇠, 신나무 등 흔히 단풍나무로 통칭되는 단풍나무과의 나무만 하더라도 전 세계 2속 150종이 분포하며 우리나라에서도 15종이나 자란다고 한다.

참나무는 또 어떤가. 참나무라는 이름의 나무는 없지만 굴참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떡갈나무, 상수리나무를 통칭해 참나무라 부르지 않던가. 한겨울에도 초록을 잃지 않는 소나무나 잣나무도 ‘갈비’라는 솔가리를 단풍으로 떨구고, 자작나무는 잎을 다 떨군 뒤에도 그 나목의 색깔로 은빛을 더해간다.

이처럼 가을의 숲은 빨강, 노랑, 주황, 갈색, 하양, 초록, 검정 등 자신의 색깔을 전부 쏟아내면서도 또한 함께 어우러진다. 제 색이 으뜸이라고 우기거나 저 혼자 잘났다고 뽐내지 않는다. 다름의 가치를 인정하고 서로를 받아들임으로써 함께 어울려 숲이 된다. 그러므로 단풍은 아름다움을 넘어 숭고함의 미학을 우리에게 전한다.

가을의 풍요와 조화로움을 단풍의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숲에서 저 홀로 ‘튀는’ 나무는 없다. 겨울 숲을 홀로 지키고 선 독야청청의 소나무를 보며 그의 돌올함을 찬탄할 수는 있으나 가을 숲에서는 그러한 독불장군의 이미지가 통하지 않는다.

숲은 큰키나무와 작은큰키나무, 풀과 넝쿨들이 얽히고설킨 곳이다. 그런 곳에서 조화와 상생의 이치를 저버리고 홀로 잘남을 뽐내는 독야청청의 독불장군이라면 숲의 조화와 평화를 깨트릴 뿐이다.

갑과 을, 공정과 평등, 각자도생 등의 용어가 회자될 정도로 사회 모순이 첨예해지고 있는 지금의 우리 사회가 딱 저랬으면 좋겠다. 스스로 욕망을 멈춘 나무들이 모여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을 전하듯이 내가 머무는 세계의 사람들도 한데 어울려 저 가을 숲의 색깔을 빚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나’보다는 ‘우리’를 생각하는 공존과 연대의식은 ‘더불어 숲’이라는 명제를 완성하는 키워드가 될 수 있다. 너나없이 자신의 색깔대로 살아가되 서로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공동체적 이상을 이룰 단풍의 대합창 같은 대동(大同)사회의 꿈은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

임채성(시조시인)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