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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955) 의방지훈(義方之訓)

- 옳은 방법의 가르침

기사입력 : 2022-11-15 08:03:56
동방한학연구원장

연민(淵民) 이가원(李家源 : 1917~2000) 선생이 한문학(漢文學)의 대가인 것은 다 안다. 학문뿐만 아니라 덕행(德行)에 있어서도 배울 것이 너무나 많다.

선생은 제자나 손아래 사람은 물론이고 친구 심지어 손위 사람까지도 잘못하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지적하여 바로잡았다. 때로 심하게 화를 낸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 정신은 안 보고 화내는 것만 확대하여 “성질이 못 됐다” “퇴계 후손이라고 안하무인(眼下無人)이다” 등등의 이야기만 퍼뜨려, ‘퇴계 후손이고 글 좀 한다고 잘난 채하고 사람 이가원’으로 이미지를 만들어갔다. 그렇게 믿는 사람이 대단히 많다.

자신을 바르게 처신하고 누구에게나 당당하게 대했다. 나무라는 말씀은 모두 바른 사람 되라는 데 있는데 꾸지람을 한두 번 들으면 그만 발길을 돌렸다.

선생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시간 어기는 것과 어떤 모임에 자주 빠지는 사람이나 일이 있다고 중간에 나가는 사람 등이다.

1982년 연세대학교를 정년퇴임하고 방대한 ‘조선문학사(朝鮮文學史)’ 저술을 위해서 연구회를 만들었다. 회원들은 주로 국문학, 한문학을 전공하는 교수로 자료 수집과 번역을 도와주기로 했다. 토요일 선생 댁에 모여 자료를 취사선택하고 강독을 했다.

회원들에게는 선생이 베껴 모은 한문학 연구 자료 ‘실학지자(實學之資)’ 복사본과 자작 친필 병풍 한 폭씩을 나눠 주었다.

매주 10여 명의 교수들이 모여서 강독회를 하는데 한 교수가 사전 해명 없이 연속 2주를 빠졌다. 선생이 화를 내며 “모 교수는 왜 안 나오나?”라고 물었다. 그러자 어떤 교수가 “집 보러 다닙니다”라고 대답했다. 실제 그 교수는 이사하기 위해서 부인과 함께 집을 구하러 다니고 있었고, 시간이 토요일 일요일 밖에 안 나 강독회에 나올 수가 없었다.

선생이 노기(怒氣)가 등등하여 “말세는 말세다. 교수가 공부는 안 하고 부동산이나 보러 다니니 뭐가 되겠노? 교수는 집이 두 채면 안 돼!”라고 말했다. 대답한 교수가 기에 질려 “이사하기 위해서”라는 말을 감히 보충하지 못 했다. 그러자 선생은 “그런 교수는 우리 연구회에 필요 없어”라고 잘라 버렸다. 약속시간에 1분만 늦어도 선생은 행사 자체를 아예 취소해 버린다. 만년에 중국에서 저명한 교수가 와서 찾아 뵙고 다음 날 낮 12시 식사하기로 약속했다. 다음날 길이 막혀 5분 정도 늦었다. 들어서니 벌써 분위기가 싸늘했다. “식사하러 가시지요” “안 간다” “길이 좀 막혀서….” “길 막히는 일이 어제 오늘 새로 생긴 일이가? 미리 감안해야지” 하시고는 끝내 안 가셨다.

필자도 여러 번 야속한 생각이 들었지만 큰 교훈을 얻었다. 그래서 필자도 어떤 모임에 가입 안 했으면 몰라도 가입했으면 반드시 출석하고, 출석했으면 중간에 안 나오고, 시간을 철저히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워낙 엄하게 가르침을 받아 가슴 깊이 가르침이 확실히 남아 있다.

* 義 : 옳을 의 * 方 : 모 방

* 之 : 갈 지 * 訓 : 가르칠 훈

동방한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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