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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자산 기록 프로젝트- 마산어시장 알바들] (7) ‘홍콩빠’ 추억 품은 횟집

파도 철썩이던 판잣집서 ‘낭만 한 점’… 아, 그리운 나의 청춘

현재 롯데백화점 마산점 주차장 인근

기사입력 : 2022-11-24 08:03:48

마산에는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갈 수 있는 ‘홍콩빠(홍콩바)’가 있었습니다. 1960~80년대 많은 주당들을 끌어들였던 곳으로 마산어시장 횟집들의 시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다와 맞닿아 철썩이는 파도를 맞으며 해산물과 막걸리를 맛볼 수 있는 낭만적인 곳이었다는데요, 구항의 매립과 상권의 변화로 지금까지 홍콩빠의 이름을 지키고 있는 곳은 몇 곳 안됩니다.

알바들은 ‘홍콩빠 7번 의령횟집’에서 일하며 박귀순(73), 정금이(68) 대표님으로부터 표류기를 들었습니다. 각각 마산에서 나고, 마산에서 공부한 알바들이지만 까맣게 몰랐던 이야기입니다.

▶오늘의 할 일

-밑반찬 나르기

-줄돔·밀치·쥐치 뜰채로 건져내기

-밀치 횟감 썰기

-홍콩빠 흔적 찾고 이야기 듣기

1970~1980년대 홍콩빠로 추정되는 사진. 나무말뚝에 판때기를 엮은 데다 천막을 얹은 형태다./경남신문DB/
1970~1980년대 홍콩빠로 추정되는 사진. 나무말뚝에 판때기를 엮은 데다 천막을 얹은 형태다./경남신문DB/
‘구 홍콩빠’로 부르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롯데백화점 마산점 인근의 횟집거리.
‘구 홍콩빠’로 부르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롯데백화점 마산점 인근의 횟집거리.

◇홍콩빠의 낭만

홍콩빠는 50여년 전 구마산 어선창 근처에 들어섰던 횟집촌을 말합니다. 현재 위치로는 롯데백화점 마산점 빌딩 주차장 옆에서부터 마산어시장 대풍횟집골목 즈음이었다고 해요. 바닷속에 나무말뚝을 세우고 판때기(판자)로 바닥을 만든 뒤 양철지붕으로 마감한 건물들이 기찻길처럼 늘어져 있었습니다. 여기에 1번부터 64번까지 횟집 번호가 붙여졌고요.

어시장을 연구한 이경미 박사에 따르면 홍콩빠는 1973년 부림시장 화재로 어시장에 난전이 크게 늘자, 소방도로를 확보하기 위해 현재 농협 지점에서부터 구 어업조합 150~200m 사이 난전을 시에서 강제 철거하고 세운 것이라 합니다. 초기 형태는 경남신문 자료사진처럼 천막만 걸친 간이 주점 형태였던 것으로 추정되고요. 삐걱대는 3.5평 남짓한 가게에는 탁자 3개를 두고 주로 해삼, 멍게, 아나고(붕장어), 꼬시래기(문절망둑) 등을 팔았답니다.

이국적 정취가 깃든 ‘홍콩빠’의 이름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여러 추측이 있는데요, 바다에 말뚝을 세워 만든 밀집된 구조물들의 모습이 홍콩의 수상가옥과 그 모양이 닮아서 불리게 됐다는 설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1950~70년대 마산을 다룬 책 ‘그곳에 마산이 있었다’에 따르면 술값을 치르다 주인에게 농담조로 ‘홍콩에서 (라이터돌을 실은) 배 들어오면 (돈을 버니) 한 잔 사겠다’고 한 말에서 유래했다는 말도 있었다네요.

이 책을 쓴 김영철씨는 “70년대 홍콩빠는 호주머니가 가벼운 이들을 위한 술집이었을 뿐만 아니라 방학 때 마산 출신의 대학생들이 고향에 돌아와 음악회, 문학의 밤 등을 열며 문화를 전파할 때 ‘아지트’로 삼은 곳이었다”며 “운동권 학생들이 ‘혁명과 저항의 도시’였던 마산으로 몸을 숨길 때 자주 찾은 곳이기도 했다”고 전합니다.

1960~1980년대 마산어시장 인근 바다 위에 다리를 세운 뒤 다닥다닥 붙어 목조 횟집이 즐비했던 홍콩빠 거리를 알리는 표지판이 창원시 마산합포구 해안도로변에 설치되어 있다.
1960~1980년대 마산어시장 인근 바다 위에 다리를 세운 뒤 다닥다닥 붙어 목조 횟집이 즐비했던 홍콩빠 거리를 알리는 표지판이 창원시 마산합포구 해안도로변에 설치되어 있다.
옛 홍콩빠를 잇는 횟집임을 알리는 간판이 7번 의령횟집 앞에 설치돼 있다. 주변 홍콩빠 횟집들도 동일한 형태의 간판을 사용한다.
옛 홍콩빠를 잇는 횟집임을 알리는 간판이 7번 의령횟집 앞에 설치돼 있다. 주변 홍콩빠 횟집들도 동일한 형태의 간판을 사용한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롯데백화점 마산점 지상주차장 입구와 인근의 횟집을 '구 홍콩빠'로 하고 있지만 현재 다수의 횟집이 영업을 하지 않고 있다./김승권 기자/
창원시 마산합포구 롯데백화점 마산점 지상주차장 입구와 인근의 횟집을 ‘구 홍콩빠’로 하고 있지만 현재 다수의 횟집이 영업을 하지 않고 있다./김승권 기자/

◇넘실대는 이야기

“그때는 뭐 단속이고 뭐고 없어가꼬 학생들이 주말만 되면 가마우지처럼 밀리(밀려) 내려왔지. 여는(여기는) 창문에 파도가 막 철썩여가꼬 마산 앞바다가 똥물일 때지만 손님들이 바다 옆이라고 좋아했거든.”

사전 지식을 습득하고 출근했는데 생생한 현장 이야기는 남다르네요.

지금 어시장 내부에는 횟집이 빼곡하지만 40여년 전 당시 횟집은 홍콩빠가 전부여서 사람들이 몰렸답니다.

“학생들이 3일이면 3번 가게, 5일이면 5번 가게 이렇게 가기도 했다니까. 그중에서도 우리 숫자가 7번이어서 장사가 잘 됐어. 럭키 세븐 아이가(이잖아).”

이종사촌 지간인 선배님들도 홍콩빠 초기부터 운영한 건 아닌데요, 인수 당시 다른 사람이 사려고도 했답니다. ‘7번’의 인기를 증명하는 것이겠죠. 당시 주문이 많았던 메뉴도 궁금했습니다.

“아나고(붕장어)를 많이 무찌(먹었지). 그 때 한 접시에 2000~3000원 했고. 도다리는 비싸서 6000원씩 했다. 바빠서 사람을 쓰면 하루에 6000원 하던 시절이야. 아이고, 그때는 이 고기들 먼저 살라꼬(사려고) 새벽 4시에 막 배로 안 뛰 갔나(뛰어갔다). 먼저 살라꼬(사려고) 다라이에 뛰들어가 막 사람들이 자빠(넘어)지기도 하고 물에 빠지기도 하고 그랬다. 요새는 전화만 하면 물차가 딱 오지. 요새 이기(이것이) 장사가.”

파도를 끼고 회 먹는 낭만이야 있었지만 상인들은 좁은 곳에서 해산물을 썰었고, 앉을 곳도 마땅치 않아 쉴 때는 계단에 걸터앉았습니다. 이 계단을 오르면 다락방 같은 2층이 나왔다고 합니다.

“연인끼리 오면 주로 2층을 갔지. 그라믄(그러면) 내려오기가 귀찮아가지고 남자들은 2층 창문에서 그대로 소변을 누기도 했어. 손님이니까 뭐라 말도 못하고 다들 그러려니 했지.”

이슬기 기자와 이아름 PD가 뜰채를 이용해 수조 안의 말쥐치를 잡고 있다.
이슬기 기자와 이아름 PD가 뜰채를 이용해 수조 안의 말쥐치를 잡고 있다.
이슬기 기자가 취재진이 먹을 횟감을 썰고 있다.
이슬기 기자가 취재진이 먹을 횟감을 썰고 있다.

◇영광은 있다가 지고

1988년 구항 매립 발표 이후 홍콩빠는 두어차례 이전을 거쳐 이 자리에 왔습니다. 대산, 고성, 우리, 곰돌이 횟집, 신대구횟집 등 옛 홍콩빠 횟집들이 모인 곳이 됐죠. 여기 와서도 한동안 24시간 영업을 할 정도로 장사가 잘돼 매일 5000원씩 넣은 금은방 일수로 산 금반지를 아직도 끼고 있습니다.

“쪽잠 자다가 손님들이 계산해달라카면(달라고 하면) 일어나고 그랬다. 그때 단골이 지금도 오는 거지. 3살 꼬마가 산낙지를 와사비에 꼭꼭 찍어묵는 기 신기했는데, 가가(그 애가) 서울에서 의사해가지고 지금도 가끔 마산 오면 엄마랑 들른다.”

호시절이 지나고 이곳 횟집들을 가로지르는 만국기는 찢기고 빛바래 있습니다. 이 골목 홍콩빠 횟집은 올해 한 곳, 작년에 한 곳 문을 닫았습니다.

손님이 오기 전 이슬기 기자가 식탁 위로 밑반찬을 나르고 있다. /이솔희 VJ/
손님이 오기 전 이슬기 기자가 식탁 위로 밑반찬을 나르고 있다. /이솔희 VJ/
이슬기 기자, 박귀순 대표, 이아름 PD가 손질한 자연산 모듬회를 보여주며 미소를 짓고 있다.
이슬기 기자, 박귀순 대표, 이아름 PD가 손질한 자연산 모듬회를 보여주며 미소를 짓고 있다.

◇파이면 다시 깎고

장사가 안 되다 보니 일할 의사를 밝혔을 땐 손님이 없어 알바도 필요 없을 것 같다고 하셨는데, 다행히 점심 때 손님이 오셔서 일거리가 생겼습니다. 탁자 위 비닐을 깔고 찌끼다시(밑반찬)를 나릅니다. 시원함을 담당할 홍가리비탕도 드리고요. 자연산 모듬회를 주문하신 손님을 위해 뜰채로 펄떡이는 줄돔·꼬시레기·밀치를 잡았습니다. 요새는 머리와 내장, 지느러미만 손질하고 기계에 넣으면 금세 생선껍질이 벗겨집니다.

도마에 오른 횟감들은 박 대표님 손이 스치자마자 접시에 자리합니다. 아름PD가 잽싸게 냉동실에서 접시 아래 넣을 아이스팩을 갖고 왔고요. “알바 잘 썼죠?” “그러게, 잘 썼네~!”

자연산 횟감을 망치면 안되니, 썰어보는 건 저희가 먹을 회로 도전해봤습니다. 회도 세월도 써느라 푹푹 파인 소나무 도마 앞에 섭니다. 손목을 놀려봐도 대표님 속도 반에 반도 못 따라갑니다. “빠르게 썽걸어야지(썰어야지). 그렇게 하면 회가 익어 뿐다(버린다). 맛이 없다.”

30년 동안 파인 굴곡이 깊어질 때마다 깎아내 평평하게 만들었던 도마처럼, 홍콩빠를 이은 횟집들이 다시 새로운 힘을 갖길 바라는 건 큰 욕심일까요.


▶지역자산기록 보고

저 멀리 바다에 섬이 하나 떠 있습니다. 그 앞으로는 양철을 얼기설기 엮은 허름한 건물에 노란 불빛이 켜져 있습니다. 절로 돝섬과 홍콩빠로 읽히는 건 작품의 제목 덕입니다.

막 썰어낸 해삼에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을 것만 같은 저 방 안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오갔을까요. 어딜 가든 비슷한 프랜차이즈 낭만이 아닌 밤을 보낸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흉내낼 수 없는 그때 마산만의 감성을 느낀 이들이요.

그러니 경험하지도 못한 40년 전 밤을 상상하는 아름PD와 저는 옛 감성과 현 시대의 가치를 결합한 홍콩빠 거리가 생겨나길 바라게 됩니다.

마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작가처럼 기성세대에는 추억을 떠올릴, 젊은 세대에게는 새로운 추억을 만들 곳으로요. 마산 바다, 그 어느 지점 하나에는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글= 이슬기 기자

사진= 김승권 기자·이솔희 V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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