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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957) 휴적비렬(休績丕烈)

- 훌륭한 업적과 큰 공훈

기사입력 : 2022-11-29 08:09:18
동방한학연구원장

지난 11월 25~26일 안동(安東)에서 ‘퇴계(退溪) 유교사상의 확장성’이란 주제로 제29회 퇴계학국제학술대회가 개최돼 성황을 이뤘다.

국제퇴계학회는 퇴계학을 세계로 확장하기 위하여 1985년 결성됐다. 지금까지 대만(臺灣), 일본, 미국 유럽 등 세계 각지에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해 세계에 선양하고, 많은 외국학자들을 동참하게 만들었다.

국제퇴계학회와 퇴계학연구원의 설립과 운영에는 춘곡(春谷) 이동준(李東俊 : 1915-1988) 선생의 탁월한 경륜과 지극한 노력이 들어 있다.

춘곡을 대하면 “‘걸출(傑出)한 인물’이란 바로 이런 분을 두고 하는 이야기구나!”라는 느낌이 든다. 탁월한 추진력과 끝없는 열정을 가진 분이다.

그는 퇴계선생 종가에서 태어났다. 지금 16대 종손 이근필(李根必) 옹의 당숙이다.

젊은 시절 문경시멘트 공장을 경영하여 대기업가가 됐다. 그 뒤 새로운 사업으로 전환했으나 뜻과 같지 못하여 손을 뗐다.

1970년 퇴계선생 서거 400주년 기념으로 퇴계학연구원을 창립했다. 서울대학교 박종홍(朴鍾鴻) 교수, 고려대학교 이상은(李相殷) 교수 등 한국학계의 비중 있는 학자들을 초빙해 연구와 경영에 참여시켰다.

〈퇴계학보〉를 발간하고, 학술대회를 꾸준히 개최하여 명실상부한 연구하는 기관으로 만들어 나갔다. 그러나 퇴계학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 국제화를 해야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실행에 옮겼다.

1978년 겨울 춘곡은 연민(淵民) 이가원(李家源) 선생과 성균관대학교 정범진(丁範鎭) 교수를 대동하고 대만에 도착했다. 당시 김언종(金彦鍾) 등 유학생들이 통역하고 안내하여 일을 많이 도왔다.

도착해서 공자의 종손 공덕성(孔德成), 고명(高明), 전목(錢穆) 등 원로교수를 만나 국제퇴계학회 대만 지회의 설립과 대만에서 국제퇴계학술대회를 개최하게 협조해 달라고 했다. 당시 대만 학자들은 퇴계의 존재를 몰랐고, 또 “주자(朱子) 학회도 아직 결성 안 되어 있는데, 무슨 퇴계학회 설립?”하며 비협조적이었다.

그러자 춘곡은 “우리는 국적에 상관없이 주자를 대학자로 높여 성균관과 전국 각 향교 서원에서 모시고 있습니다. 학문에 국경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선생들이 협조하지 않으면, 돌아가서 주자의 위패(位牌)를 다 철거해 버릴 것이오”라고 강하게 몰아붙였다.

우여곡절 끝에 대만사범대학 곽위번(郭爲藩) 총장의 허락을 받아, 1979년 11월 해외에서는 처음으로 퇴계학 국제학술대회를 대만에서 개최하게 됐다. 1988년 올림픽에 맞추어 서울에서 개최했는데, 전 세계에서 200여명의 퇴계학 연구자들이 모여 성황을 이뤘다. 1989년 중국 대륙에서의 개최가 확정돼 있었는데, 춘곡은 1988년 연말 별세하고 말았다. 별세한 지 35년이 되었지만, 그 뜻을 잘 이은 분들이 지금도 퇴계학연구원과 국제퇴계학회를 잘 운영하고 있다.

*休 : 아름다울 휴, 쉴 휴.

*績 : 길쌈할 적, 업적 적.

*丕 : 클 비. *烈 : 공훈 렬, 매울 렬.

동방한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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