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지역자산 기록 프로젝트- 마산어시장 알바들] (10·끝) 알바의 종막

보고 듣고 느낀 일상이 곧 역사, 어시장은 오늘도 나아갑니다

기사입력 : 2022-12-14 21:18:31

"처음 왔을 때는 고기가 별로 없었는데 지금은 많네요, 화롯불도 생겼고요.” “그래, 느그가 고기 올케 안 날 때 왔다 아이가(너희는 고기가 제대로 안 날 때 왔지).”-모녀상회 고순덕 대표

매주 마산어시장을 다닌 지 3개월. 전어가 있던 한여름에서부터 대구가 드는 한겨울로, 어시장에서의 세 계절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생선가게, 젓갈가게, 과일리어카, 커피 리어카, 건어물가게, 횟집, 수협 공판장, 수협 중매인 가게 등 8곳에서 일했고, 10건의 기사, 8개의 영상으로 남겼습니다. 마산에 연고가 있던 알바들 눈에도 하나부터 열까지 신기했던 마산어시장의 일상과 역사들을 채집하듯 옮겨 놓는 시간들이었네요. 포털사이트에서 검색되지 않으면 ‘없는 존재’로 여겨지는 시대, 기록되지 못한 이야기를 부단히 지면과 온라인으로 나르며 마산어시장의 매력과 가치를 강조해왔습니다. 이 과정 속에 지역언론의 역할이 있다고 느끼면서요.

◇알바비로 받은 것들

알바를 시작한 후 어시장 안팎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알바비 좀 받냐’는 것이었는데요, 저희의 알바비는 ‘이야기’로 받았습니다. 일상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두는 ‘일’을 함께한 덕분일까요, 어색할 수 있는 첫 만남에도 깊이 묻어둔 이야기들을 들려주셨습니다. 모두 입을 맞춘듯 ‘힘든 거? 말도 몬 한다(어떻게 말해. 말도 못하게 힘들었지)’로 말을 시작하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아이의 세발 자전거 바퀴를 떼내어 리어카를 만들고, 갓난아이를 업고 출퇴근하며, 두 아이를 데리고 마산수출자유지역 도랑가에서 죽을 쒀서 여공들을 대상으로 팔았다는 이야기들도요. 수십년 동안 매일같이 새벽 3시면 일어나 일하느라 굳은 어깨, 평생 아가미를 잡아채 갈고리처럼 휘어진 손가락도 어루만질 수 있었습니다.

이슬기 기자가 40여년간 생선 손질을 하다 손가락이 휜 고순덕 사장의 손을 잡고 있다.
이슬기 기자가 40여년간 생선 손질을 하다 손가락이 휜 고순덕 사장의 손을 잡고 있다.
이아름 PD가 젓갈 가게에서 젓갈을 담고 있다.
이아름 PD가 젓갈 가게에서 젓갈을 담고 있다.
이 기자가 새벽 경매에서 배종은 중매인이 낙찰받은 수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이 기자가 새벽 경매에서 배종은 중매인이 낙찰받은 수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두둑히 받은 알바비는 ‘정’입니다. 어시장에 가면 알바들을 안아주시는 분들이 생겼거든요. 특히나 과일 리어카를 끄는 의령댁, 커피 리어카를 끄는 중리댁 선배님들은 이동 동선이 많아 갈 때마다 한두 번씩은 마주치지요. 커피고, 귤이고 내주시는 건 물론이고, 알바하느라 헝클어진 머리와 우스꽝스럽게 접힌 옷깃을 보고 혀를 차며 옷매무새를 다듬어주십니다.

알바한 곳이 아님에도 ‘공주들 왔나, 오늘은 또 뭐하노’ 하며 인사를 건네주시고 알바들에 ‘잘해보라’며 응원해주시는 상인분들이 정말 감사했습니다. 매주 단골가게가 하나씩 생기는 것 같았다는 독자의 말에 격하게 동감했지요. 매번 낯선 일에 몸은 고되어도 이곳을 계속 찾고 싶었던 이유는 어시장 사람들에 있었거든요.


◇촘촘해진 역사들

아름PD와 저는 각 가게별 일과와 일의 특성을 관찰하고 노하우를 배우며 일을 익혀나갔습니다. 생선을 잡아 분류하는 일에서부터 젓갈과 건어물을 담을 때의 손놀림, 과일과 선어, 커피를 판매할 때의 말투와 표현을 따라했고, 일하면서 자연스레 올해 어종별 어획량, 위판 상황과 이에 따른 시장의 변화까지 함께 알게 됐지요. 일종의 마산어시장 일상사, 생활사를 그려내게 됐습니다. 마산수협과 상인회 연혁에는 나오지 못할 이야기들이지요.

1960~1970년대로 추정되는 마산어시장 모습.
1960~1970년대로 추정되는 마산어시장 모습.
1970~1980년대로 추정되는 마산어시장 모습.
1970~1980년대로 추정되는 마산어시장 모습.

상인들이 기억하고 전해들은 역사들, 오가며 들렀던 오래된 가게들, 근대 건축물을 기록하는 일은 오랜 역사의 채집이기도 했습니다. 개항기 외국 자본으로부터 마산어시장을 지킨 객주들, 풍어와 선원들의 안녕을 기원한 성신대제, 유통의 시작점인 수협 공판장, 전국구로 유명한 횟집거리 홍콩빠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넘실댔지요. 어시장에서 유일하게 그물만을 판매하는 40년 넘은 선구점(그물집)이 곧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는 사실도요. 기사와 어시장 역사의 빈자리들을 더 채워주는 일도 있었습니다. 기사를 읽은 독자분들이 마산어시장에 얽힌 추억들을 공유해주신 덕분인데요, 특히 홍콩빠 편을 보시고 옛 추억에 잠긴 분들이 많았습니다.

마산어시장에서 아귀를 파는 한 상인이 아귀를 다듬고 있다.
마산어시장에서 아귀를 파는 한 상인이 아귀를 다듬고 있다.
2012년 2월 마산어시장 상인이 두터운 옷을 입고 화로에 손을 녹이고 있다.
2012년 2월 마산어시장 상인이 두터운 옷을 입고 화로에 손을 녹이고 있다.

“80년대 초반의 홍콩빠, 추억의 2번 김해집의 단골이었답니다. 매주 화요일 저녁 퇴근 무렵이면 출근하듯 드나들었지요. 생선회는 기본이고 산낙지는 서비스로 인심이 푸짐했답니다. 소주 4~5병을 거뜬히 마시고, 늦은 밤 가고파 바다를 거닐던 추억이 엊그제 같습니다.”(김복근)

“직장시절 줄창나게 댕긴 기억이 있는 전원다방과 홍콩빠 횟집들, 싸긴 했지만 월급날이라야 갈 수 있었던 곳이지요.”(최상철)


◇후배 알바의 영입 효과

“아이고, 내가 국회의원 선생님 알바를 다 둬보고 말이야. 저기 커피잔 옆에 300원 두고 오시면 됩니다.”

알바가 8차례나 이어지자 후배 신입 알바를 영입할 기회도 생겼습니다. 마산어시장이 위치한 마산합포구가 지역구인 최형두 국회의원이었는데요, 알바들과 함께 마산어시장 방수앞치마를 입고 커피 리어카 김종숙 선배님 일을 돕기로 했습니다. 최 의원은 사무실이 어시장과 맞닿아 있어 혼자서도 자주 어시장을 찾는다고 했습니다.

최형두 국회의원이 이 기자, 이 PD와 함께 36년째 리어카를 밀며 커피를 팔고 있는 김종숙씨를 돕고 있다.
최형두 국회의원이 이 기자, 이 PD와 함께 36년째 리어카를 밀며 커피를 팔고 있는 김종숙씨를 돕고 있다.

“점심 맛있게 드셨습니까, 커피 한잔 드십니까.”

커피 리어카는 처음이다 보니 커피를 나르다 얼음을 쏟기도 했지만 한 잔 한 잔 상인분들께 커피를 배달하며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듣습니다. 어시장의 변화를 직접적으로 가져올 수 있는 알바라 어려움을 토로하며 앞으로의 발전 방향을 제안하는 분들이 계셨거든요. 다들 한목소리로 ‘마산 관광의 부재’를 지적했습니다. 관광 콘텐츠 부재가 심각하고, 그나마 가장 큰 행사인 국화축제도 상권이 형성돼 있지 않은 해양신도시 부지 위에서 열린 것이 아쉽다는 겁니다.

커피 알바에 나선 최형두 국회의원과 이슬기 기자, 이아름 인턴PD가 창원시 마산합포구 마산어시장에서 상인에게 커피를 배달한 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커피 알바에 나선 최형두 국회의원과 이슬기 기자, 이아름 인턴PD가 창원시 마산합포구 마산어시장에서 상인에게 커피를 배달한 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제 식구도 줄었기에 전통시장에서 구매가 생기기 매우 어려운 구조라 결국 바다 관광으로 인한 소비가 일어나야만 시장이 살아납니다. 지금 마산 바닷가는 행정적 관리를 항만청이 하고 있기 때문에 활용을 못하고 있어요. 이제 창원시가 나서 무학산과 돝섬, 도심지를 낀 바다를 어떻게 활용할지 과감하게 생각해 봐야죠.”(종합상회 김삼조 대표)

최형두 의원은 크게 공감하며 ‘마산 지중해길 조성과 수상택시의 도입을 언급했습니다. 자주 배가 오갔던 예전처럼 귀산·진해로 오가는 수상택시를 둬서 축제기간의 차량 정체를 해소하고, 마산만의 특화된 관광콘텐츠를 만들자는 겁니다. 커피 서빙 알바만으로 이렇게 정책 제안과 방안이 제시되다니요.

“제가 국회에서 마산을 ‘대한민국 지중해 도시’라고 홍보합니다. 해외특파원 지내며 여러 나라를 돌아봐도, 이런 도시가 없습니다. 요트도 띄워 바다낚시를 하면서 놀 수 있게 만들어야죠.”


◇마산어시장 미래 위한 채집을

마산어시장으로 사람들을 다시 끌려면 외부 관광 요소뿐 아니라 내부의 특색도 살려야겠죠. 벌떡이는 생동감, 싱싱한 수산물, 시간의 흔적이 남아있는 시장은 매력이 가득하지만, ‘먹거리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어왔습니다. 20대 아름PD는 ‘야시장’을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어시장 방문을 어려워하는 젊은 세대와의 벽을 허물 수 있는 것이 ‘야시장’이라고 생각해요.”

경남청년예술인단체 ‘아트디엠’이 마산어시장 방수앞치마를 입고 춤추고 있다.
경남청년예술인단체 ‘아트디엠’이 마산어시장 방수앞치마를 입고 춤추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마산어시장이라는 ‘브랜드’를 키우는 것에도 힘써야 할 텐데요. 이번 기획을 위해 마산어시장 알바들은 마산을 주제로 제품을 만드는 브랜드 ‘마사나이’와 협업, ‘마산어시장 방수앞치마+방수팔토시’를 제작해 직접 입고 일하며 알바한 가게에 선물로 드렸습니다. 기획기사를 진행하며 작게나마 지역 브랜딩을 시도했고, 호응을 얻은 것에 의의를 둡니다. 경남 청년예술인이 모인 춤 단체 ‘아트디엠(ART DM)’은 이 앞치마를 입고, 상인분들과 함께 춤추기도 했습니다. 상인은 물론 청년이 입고 싶고, 가고 싶게끔 만든다면 성공적인 마산어시장 브랜딩이 되지 않을까요. 그동안 지켜봐온 어시장 매력을 잘 살릴 수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믿습니다.

마산어시장 방수앞치마를 입고 춤추고 있는 경남청년예술인단체 '아트디엠'.
마산어시장 방수앞치마를 입고 춤추고 있는 경남청년예술인단체 '아트디엠'.

글= 이슬기 기자·사진= 김승권·성승건 기자, 경남신문DB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이슬기 기자의 다른 기사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