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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방비 걱정에… 80대 할머니는 장판도 못 켜고 추위 버텼다

[난방비 급등으로 더 힘겨운 에너지 취약계층 찾아보니]

창원 사파동 주택가 독거 할머니

기사입력 : 2023-01-26 20:06:12

“잘사는 사람들도 난방비 보고 벌벌 떤다는 데 나는 더 무섭지.”

26일 오후, 창원시 성산구 사파동의 한 주택가. 2층짜리 단독주택 1층 원룸에 세를 들어 혼자 살고 있는 이모(87) 할머니는 최근 일주일간 병원 신세를 졌다. 겨울 난방비와 전기료가 무섭다며 보일러도, 전기장판도 켜지 않은 채 생활하다 결국 심한 독감을 앓았다. 퇴원 이후 자식들이 집을 찾아 온도 조절기를 켜고 끄지 못하게 고무줄을 엮어 고정했다. 가입된 보험이 따로 없는 할머니는 병원비만 400만원이 나왔다. 아팠던 일보다 자식들에게 부담을 준 것이 가장 속상하다고 얘기한다. 조금이라도 전기료를 아끼고자 할머니는 전등도 끄고 지낸다.

26일 오후 창원시 성산구의 한 주택가 단칸방에서 홀로 지내는 노인이 난방비와 전기세를 아끼기 위해 양말·겨울 목토시·보온조끼를 입고 생활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26일 오후 창원시 성산구의 한 주택가 단칸방에서 홀로 지내는 노인이 난방비와 전기세를 아끼기 위해 양말·겨울 목토시·보온조끼를 입고 생활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내가 돈도 못 버는데 이런 거라도 아껴야지 안 하겠나. 오늘은 그래 안 춥다.”

보일러를 틀어도 집 틈 사이로 외풍이 들어와 쌀쌀했다. 춥지 않다고 말하는 할머니는 집 안에서도 털조끼와 복지센터에서 줬다는 넥워머를 차고 두꺼운 양말을 신었다. 겨울 내내 추운 날에만 전기장판을 틀었다는 할머니는 자식들이 보일러를 켠 이후 전기장판의 코드도 빼놨다.

지역의 경로당이 한파쉼터로 지정돼 있지만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 할머니는 “바로 앞에 경로당이 있지만 동네 집 주인들만 가는 곳”이라며 “예전에 살던 곳에 날 받아주는 경로당이 있어 그곳에 가곤 한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가 갈 수 있는 경로당은 걸어서 30분이 걸리는 위치에 있다.

난방비가 큰 폭으로 오른 이번 겨울은 취약계층에게 더욱 가혹했다. 에너지 취약계층을 위해 정부가 에너지바우처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추운 겨울 전기장판 하나로 버티던 할머니는 혜택을 받지 못한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도, 차상위계층도 아니라는 이유다. 이 할머니는 복지 사각지대에 처해 있다.

올해(2022년 7월~2023년 4월) 기준, 경남에는 6만9377가구가 에너지바우처 지원금을 받고 있다. 도내 에너지바우처 대상은 2018년 3만7628가구, 2019년 4만1899가구, 2020년 4만3358가구, 2021년 5만 993가구로 점차 늘어났다. 올해는 특히 난방비가 올라 한시적으로 소득 기준을 확대해 더 많은 가정이 이 혜택을 받게 됐다. 그러나 복지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사각지대에 처한 취약계층, 특히 독거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도움이 절실하다고 얘기한다. 경남도가 파악한 도내 독거노인 수는 14만5000여명. 에너지바우처 혜택자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날 이 할머니의 집을 함께 방문한 생활지원사 A씨는 “난방비, 전기료 지원도 좋지만 사각지대에 처한 노인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할머니 집에 설치된 노란 보온 텐트를 가리켰다. 보온 텐트는 5년 전 지역 복지센터에서 할머니에게 제공했다. 그는 “난방비를 지원한다 해도 노인들은 보일러를 틀지 않는다. 이 보온 텐트가 외풍을 막아줘 노인들에게 인기가 많았다”며 “이처럼 실제로 도움이 되는 정책이 나왔으면 한다”고 전했다.

어태희 기자 ttott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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