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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램덩크’에 3040 추억 새록새록…대중문화 ‘복고’ 인기 지속

‘더 퍼스트 슬램덩크’ 200만명 돌파…‘타이타닉’·‘둘리’ 재개봉

레트로 콘셉트 걸그룹 뉴진스…H.O.T ‘캔디’ 리메이크한 NCT드림

기사입력 : 2023-02-05 10:10:16

#1. 영화관에 들어선 한 남성이 좌석에 앉기 전 두꺼운 겉옷을 벗자 관객들의 시선이 한곳에 쏠렸다. 후드티 위에 덧입은 빨간색 농구 조끼 뒤에는 '11'이라는 숫자가 크게 쓰여 있다. 90년대 학창 시절을 보낸 이라면 누구나 떠올릴 '슬램덩크' 속 강백호의 등번호다.

#2. 지난해 12월, 트렌디한 맛집, 카페가 밀집한 서울 성수동 길목에 알록달록한 간판이 세워졌다. NCT 드림의 새 음반 '캔디' 홍보 매장. 1996년 발매된 그룹 H.O.T. 메가 히트곡을 리메이크한 음반이다. 한파 속 길게 줄을 선 10대 팬들은 쨍한 원색 옷에 털 달린 모자를 쓴 NCT 드림 멤버들의 사진을 보며 연신 즐거워했다.

최근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영화계는 물론 가요계나 방송가에서도 복고를 콘셉트로 한 음반, 작품이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지난달 4일 개봉과 동시에 일일 박스오피스 2위로 진입한 1990년대 인기 일본 만화 '슬램덩크'의 극장판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꾸준히 관객을 모으면서 2~3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진은 15일 서울 한 영화관의 슬램덩크 홍보물. 2023.1.15 scape@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지난달 4일 개봉과 동시에 일일 박스오피스 2위로 진입한 1990년대 인기 일본 만화 '슬램덩크'의 극장판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꾸준히 관객을 모으면서 2~3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진은 15일 서울 한 영화관의 슬램덩크 홍보물. 2023.1.15 scape@yna.co.kr

5일 영화·방송·가요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4일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최근 누적 관객 수 200만명을 돌파했다. '슬램덩크' 만화 단행본도 영화 개봉 이후 60만 부 이상 판매됐고, 넷플릭스 등 각종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에서도 '슬램덩크' TV 애니메이션 시청 시간도 대폭 상승했다.

199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끈 만화 '슬램덩크'를 보고자란 30∼40대들의 '팬심'을 제대로 겨냥했다는 평가다. 실제 영화 관객 10명 중 7명은 30∼40대다. 어렸을 때와 달리 구매력을 갖춘 30·40세대는 농구용품 전반에 대한 판매량도 대폭 증가시켰고, 이에 '슬램덩크' 한정판 LP와 '슬램덩크 와인' 등 파생 상품까지 나왔다.

영화계에서는 과거 히트작의 재개봉 소식도 이어지고 있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타이타닉'이 개봉 25주년을 기념해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돌아오며, TV 애니메이션 '아기공룡 둘리' 극장판도 오는 5월 다시 극장에서 상영된다.

복고 바람은 가요계에도 불고 있다. 1990∼2000년대 이른바 'Y2K' 감성을 녹인 음반에 30·40세대는 물론 MZ세대의 취향까지 저격하고 있다.

[어도어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어도어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레트로 콘셉트를 내세운 걸그룹 뉴진스는 데뷔 음반 '뉴 진스'(New Jeans)를 발매 첫 주 31만장 판매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역대 걸그룹 데뷔 음반 중 발매 첫 주 판매량 최고 기록이다.

최근 걸그룹들이 강렬한 고음이나 비트로 '걸크러시'를 강조한 데 반해 뉴진스는 따라부르기 쉬운 가사와 멜로디로 차별화를 꾀했다. 무대의상이나 뮤직비디오 등도 10대 소녀들의 청량한 느낌을 강조하면서 1990년대를 풍미한 걸그룹 S.E.S를 떠올리게 한다는 반응도 나온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지난해 12월 그룹 NCT 드림은 원조 아이돌 H.O.T.의 '캔디'(Candy·1996)를 리메이크한 앨범을 발매하며 음원 사이트 멜론 '톱 100' 1위에 오르는 등 음원 차트 정상에 올랐다. 소속사가 성수동, 홍대, 연희동에 마련한 음반 홍보 매장에는 매서운 한파를 뚫고 첫날 3천명이 넘는 팬들이 몰렸다.

'캔디'는 풋풋한 노랫말과 재치 넘치는 안무로 신드롬을 일으켰던 히트곡으로 NCT 드림의 리메이크는 원곡을 기억하는 3040 세대에는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10대 팬들에게는 복고풍 분위기로 새로운 매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아이돌 그룹 외에도 가요계에서는 2000년대 초반 데뷔한 윤하, 테이, 성시경의 노래가 음원차트 상위권에 오르며 주목받고 있다.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은 발매 반년이 지나 음원차트 1위를 휩쓸었고, 테이가 밴드 버즈의 히트곡 '모놀로그'를 리메이크한 동명의 노래도 10위권에 올랐다.

방송가에서도 가족애가 강하고 이웃집과 교류가 활발했던 2000년대 이전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는 그 시절을 보낸 이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화제가 됐고, 지난해 방영된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닥친 199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풋풋한 청춘들의 성장을 그리며 큰 사랑을 받았다. 올해도 KBS TV에서는 1987년에 갇힌 두 남녀의 아름다운 시간 여행을 그린 '어쩌다 마주친, 그대'를 방영한다.

과거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나 만화를 모티브로 삼은 드라마도 나온다. MBC TV는 수사물의 시초로 꼽히는 '수사반장'(1971∼1989)의 프리퀄 '수사반장 1963'을 선보인다. 원작보다 10년 앞선 1860년대를 배경으로 최불암이 연기한 박한영 반장의 젊은 시절을 그린다. 추억의 만화 영화 '영심이'의 주인공 오영심과 왕경태가 30대가 된 모습을 실사화한 '오! 영심이'도 방송된다. 아직 채널은 확정되지 않았다.

이런 대중문화 복고 바람은 단순히 30·40세대들의 추억에 호소하기만 해서 성공하는 것은 아니란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복고 트렌드는 당대를 경험했던 세대들만 소비하는 게 아니라 현세대가 이걸 새롭게 받아들여야 넓게 소비될 수 있다"며 "이른바 '뉴트로'(신복고)는 나이 든 세대를 고정적인 팬층으로 가져가면서 새로운 세대를 유입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기본적으로 콘텐츠가 좋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과거 콘텐츠를 재활용하는 방식을 긍정적으로만 바라볼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콘텐츠 시장 전체적인 차원에서 보면 이미 검증된 작품을 재활용한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창작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게으른 기획"이라며 "과거의 정겨운 추억을 즐기며 좋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비판적인 지점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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