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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만남, 기다림- 이승석(범숙학교장)

기사입력 : 2023-03-14 20:12:17

긴 겨울 끝자락 따스한 햇볕이 반가운 봄이다. 꽃을 피우기 위해 머금고 있는 나무들에서 봄을 만나고 매년 이맘때면 설레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만난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은 대부분 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십 대 여학생들이다.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적 환경 속에서 상처를 주고받으며 그 과정에서 키워진 결핍들은 부정적 정서들로 가득 채워지고, 무너지게 된다. 누구나 결핍이 조금씩 있기 마련이다. 적절한 결핍은 성장에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결핍은 긍정의 싹을 틔우기에 너무나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이 긍정의 싹을 틔우기 위해 우리 학교는 여러 선생님들의 작은 아이디어를 모아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이번에는 테마 수업(좋은데이)이다.

한 달에 한 번, 매번 다른 테마 Day를 정하여 온종일 아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주고, 기다려 주는 과정을 반복하여 정서적으로 허기진 마음을 채워주는 수업이다.

낙동강 변의 시원한 바람과 들에 핀 꽃들의 응원 속에서 자전거를 타며, 힘들고 지친 마음을 달래어 본 ‘자전거 Day’. 풍광이 좋은 강변 밤하늘 밝은 별 아래 따뜻한 모닥불을 지펴 오순도순 모여 앉아서 밤새 자신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다 함께 밤을 지새운 ‘캠핑 Day’, 노래, 춤, 마임 등 자신들이 준비한 공연을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선보이며 주인공이 되는 ‘끼 Day’. 여행이란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계획부터 진행한 여행 Day는 스스로 지어 먹은 설익은 밥과 직접 끓인 짠 찌개, 바닷물이 무섭고 두렵지만 마지막 용기를 내어 도전한 ‘씨워크’도 긍정 정서를 한 점 추가하는 시간이 되었다.

‘좋은데이’는 우리 아이들의 출발점이자 목표이고, 함께 살아가는 것을 배우는 첫걸음이었다. 아무 곳에나 피어도, 생긴 대로·이름 없이 피어도 모두 꽃인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너무나 예쁜 꽃으로 보이는 Day였다.

오늘도 우리는 교무실을 어김없이 찾는 아이들 속에서 그들이 쏟아내는 감정 찌꺼기들을 담아내며 긍정의 싹을 틔울 때까지 오늘도, 내일도 묵묵히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기다릴 것이다.

이승석(범숙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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