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경남 예술청년 코로나 분투기 (3) 음악청년편

단 두 명을 위한 하모니… 형제 뮤지션 ‘꿈의 연주’ 멈추지 않았다

코로나로 좌절된 일본·프랑스 유학

기사입력 : 2023-03-14 21:33:21

“음악을 함께 만들고 싶다는 마음에서 ‘음악공방’이라 이름지었죠.”

30㎡ 남짓한 창원 명서동 도롯가 1층 건물, 2인 쇼파 하나가 관람석의 전부이자 연주자와 관객의 거리가 1m인 이곳에선 연주곡의 배경을 충분히 설명하고, 연주자들의 개인적 경험이 담긴 곡을 연주한다. 또한 관객들 이야기를 경청한 뒤, 느낀 바를 즉흥 연주로 들려주기도 한다. 연주자와 관객이 서로 귀기울이는 일, 이것이 이들이 생각하는 ‘진짜 음악’이다.

지난 8일 단 2명만을 위해 재즈를 연주하는 창원 ‘음악공방’에서 이승태(30), 이승근(28) 형제를 만났다. 연주자 2명에 관람객 2명, 코로나19로 사적 모임이 극히 제한되던 때의 모임 가능 인원수로 맞춘 것이다. 최소한의 인원에라도 현장의 분위기와 음악을 공유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스민 곳. 코로나 때의 공연계 상황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이 공간에서 어떻게 그 시간들을 거쳐왔는지 들어봤다.

지난 8일 창원시 의창구 명서동에 있는 ‘음악공방’에서 이승태·이승근 음악가가 재즈를 연주하고 있다.
지난 8일 창원시 의창구 명서동에 있는 ‘음악공방’에서 이승태·이승근 음악가가 재즈를 연주하고 있다.

◇어떻게 음악을 하게 되셨어요?

-이승태 : 창녕에 있는 분교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6학년 때 선생님이 바이올린을 다 사가지고 오셔서 배우게 하셨어요. 그 때부터 바이올린에 빠져서 경남예고를 졸업한 뒤 창원대 음대를 잠시 다니다 자퇴하고 국방부 교향악단에 들어갔죠. 그 시기에 유학의 꿈을 품고 제대 후 일본으로 유학을 갔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이 일반 클래식이 아니라 즉흥연주가 중요한 ‘재즈’인 걸 깨달았거든요. 재즈 바이올린으로 유튜브를 검색해 가장 상단에 있는 일본 연주자의 영상을 보고 그분께 무작정 연락드렸는데 학교를 알려주셨어요.

-이승근 : 저는 형이 음악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접해 중학교 때부터 기타를 쳤어요. 둘 다 일본음악을 많이 들었던 터라 팝록(pop·rock) 장르, 싱어송라이터로 일본 유학을 갔고요. 일본에서 정착을 마음먹고 떠난 건데, 코로나 때문에 귀국하게 됐어요. 일본에서 2년제 대학을 졸업하고서 형 학교(4년제)로 편입을 하려고 합격까지 해 놓은 상태였는데 코로나로 집안 사정이 좋지 않게 되면서 창원으로 돌아오게 됐죠.

◇코로나가 유학에도 영향을 준 거네요.

-이승태 : 그렇죠, 저도 일본에 눌러 앉을 생각이었는데 2020년 초에 귀국했어요. 아쉬운 마음에 장학금을 준비해 몇 개월 후 프랑스 리옹으로 유학을 다시 떠났는데 코로나가 점점 더 심해지더라고요. 2020년 8월에 갔는데 학교 수업을 제대로 못 들었어요. 실기 전공은 보통 일대일 레슨을 받거나 여러 학생들이 모여서 합주 연습을 하는데, 밴드 연습은 싹 다 없어져서 유학 1년 동안 한 번 받았죠. 일대일 레슨조차도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됐는데 음악 실기수업을 온라인으로 받는 게 정말 쉽지 않거든요. 인터넷 연결이 잠시 안 좋거나 하면 박자가 이상해지죠, 음악에서는 0.1초도 큰 딜레이(지연)이니까요. 선생님이 먼저 시범을 보여주시고, 따라 해보라고 하시는데 제 연주가 저쪽에서 이상하게 들리기도 하고 선생님 연주가 이상하게 들릴 때도 있었어요. 좋은 장비를 구비할 수도 없는 상황이니까 선생님 댁에 찾아가서 몰래 레슨 받기도 했죠.

-이승근 : 형이 프랑스를 간 이후 저는 일본에 계신 선생님과 온라인 줌으로 수업하기도 했는데 한국-일본이어서 그런지 날씨가 궂은 날이면 연결이 특히 안 좋아 수업이 어려웠어요. 이렇게 수업 자체도 뒤틀린 데다, 단순히 유학 하나가 어그러진 것이 아니라 제가 계획했던 것, 이루고 싶었던 것이 모두 물거품이 되고, 몇 년간 구축해온 관계도 틀어지니 몸도 마음도 한꺼번에 무너지더라고요. 정신적으로도 너무 힘들어 정신과에도 다녔습니다.

◇이 공간은 어떻게 시작됐을까요?

-이승태 : 2021년 8월 귀국하고 막막했어요. 음악은 하고 싶은데 어떡할지 고민하다 일단은 해보고 싶은 걸 해보자는 생각에 빚을 내서 2022년 1월 첫 주, 오래된 오피스텔에서 음악공방을 시작했죠. 원래도 관객과 호흡할 수 있는 소규모 연주를 좋아했고, 생계를 유지하려면 적어도 8명은 불러야 하지 않겠냐 했지만 인원 제한이 4명이라 ‘2명만이라도 해볼까? 음악만 하면 그것만으로 좋지 않을까?’ 하고 공방을 열어 ‘단 2명에게 들려주고 싶은 재즈콘서트(단2명 콘서트)’를 시작했습니다. 라디오나 유튜브나 방송에서 자신의 사연을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잖아요. 그렇게 소통해보고 싶었어요. 박수 매너를 익히고, 사전에 음악의 배경을 공부하지 않으면 무슨 이야기가 담겼는지 전혀 모르는, 상황들을 바꿔보고 싶기도 했고요.

◇시작해보니 어땠나요?

-이승태 : 처음에는 사람들이 잘 모르실 테니까 무료 연주로 시작했어요. 홍보하려고 지인들, 당근마켓에 뿌린 티켓만 200장이 될 것 같은데 그렇게 해도 관객이 없었어요. 반년 동안 온 분들이 20팀도 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6개월 이후부터는 무료로 공연하는 것이 우리 가치를 갉아먹는 것 같아서 그만뒀습니다. 생존하려고 레슨을 시작했고, 외부 연주도 해서 공연 적자를 메우고 있죠. 클래식 공연의 경우 지역에 무료 공연이 많아서 더욱 연주를 이어가기 힘든 것 같기도 해요. 음악회를 돈 주고 본다는 인식이 깔려있지 않으니까요. 지방 연주자가 늘어나기 위해서는 500원,1000원일지라도 값을 주고 본다는 인식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이승근 : 처음 연주를 보러오셨을 때 너무 기뻤어요. 지인들도 아니었거든요. 그러다 무료 연주를 중단하고 돈을 받으니 관객이 더 안 왔어요. 한 달에 한두 팀만 찾아주셨죠. 지금은 나름 노하우가 쌓여서 안정화된 상태예요. 연주로 생각해보면 처음에는 저희 둘 즉흥 연주 호흡이 너무 안 맞았어요. 그래서 끝나자마자 형이 나무란 적도 많고요, 그게 엄청 힘들었는데 지적 받은 부분을 신경 쓰고 서로 맞추려 하니까 더 좋은 연주가 되고 있다고 느껴져요. 특히 공방을 열고 나서는 학교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이 배우고 있다고 생각해요. 좋은 아이디어를 내고, 관객에 좋은 연주를 들려드려야 하니까 더욱 주도적으로 연습하고, 조사·연구도 하게 되거든요.

◇창원 말고 다른 지역에서 했다면요?

-이승태 : 재즈음악에 대한 수요가 많은 서울이나 부산에서 공간을 열어야 하냐는 생각도 했어요. 여기는 전공자들도 적고, 재즈음악을 즐기는 분도 적고, 저희와 음악의 뜻이 맞는 분을 찾기도 힘드니까요.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창원을 선택한 건 잘했다고 생각해요. ‘단2명 콘서트’를 50번 정도 했는데 한 번도 안 좋았던 적이 없었거든요. 진상 관객이 있을 법도 한 데 말예요. 한 분 한 분 다 생생하게 기억할 정도로 좋았고, 이렇게 하는 곳이 저희밖에 없다고 자부하고 관객들도 특별하게 생각해주시니 뿌듯해요. 특히 재즈팬, 음악마니아 분들이 특정 음악을 원하시는 측면도 있는데 오히려, 창원분들께서 음악에 대한 편견이 없다는 생각도 들어서 저희 음악을 자유롭게 들려드릴 수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떻게 음악하고 싶나요?

-이승태·이승근 : 10년 전이라면 꿈도 못 꿨을 것 같은데, 지금은 여러 매체가 있어 저희 음악을 전세계에 보낼 수도 있으니 존재를 드러내면서 자신감 있게 활동하고 싶어요. 많은 창원 시민 분들에게 좋은 음악적 경험을 선사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우리 동네 작은 연주회’를 기획, 실행해보고 있어요. 처음에는 저희 음악공방 가게에서 연주회를 하고 싶었지만, 너무 공간이 협소하고 저희 힘만으로는 운영하기가 힘들겠더군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동네 마음 맞는 카페 사장님들을 찾아서 매달 연주회를 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앞으론 범위를 더 확대하고, 더 큰 단위에서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음악 페스티벌’도 만들어보고 싶고, 지역축제에서 즉흥 이야기를 듣고 연주해드리는 부스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글·사진= 이슬기 기자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이슬기 기자의 다른 기사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