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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함께 보는 경남의 명소 (69) 고성 하일면 학림의 노거수

노거수가 품은 그리운 일곱 살의 봄

기사입력 : 2023-05-16 08:11:40


미운 일곱 살

손톱만 하던 꽃들 넘치도록 과하게 흩날릴 때 연한 잎들 낱낱이 세우고 봄이 풀어지고 있을 때

순한 냄새 맡은 풀쐐기들이 가지 끝 여기저기에서 부른 배를 밀며 느릿느릿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옮겨갈 때

보리알 여무는 소리 마당 너머에서부터 들리고 여벌 달 뜨는 윤사월 따끈한 햇볕에 한껏 늘어지던 복실이가 긴 하품으로 나를 슬쩍 바라볼 때

그날따라 어느 절인가로 불공 드리러 가는 엄마를 따라가고 싶었던 나는 한사코 떼어놓으려는 서러움에 아무리 악다구니를 써도 ‘터 팔아 남동생 하나 데려오너라’ 일러놓고 엄마는 내 울음소리 못 들은 척 가뭇없이 사라져버렸다 나는 엄마의 뒷모습에 힘없는 돌팔매질만 날리다 눈물 콧물 범벅으로 내 미운 일곱 살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버려진 밥알처럼 꽃잎 떠내려 갈 때 내 눈빛에는 허기가 졌다


☞ 고성군 하일면 학림의 노거수가 집들을 감싸 안아주면서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기억은 오래될수록 선명해진다. 저 풍경은 내가 살던 고향의 옛집을 닮았다. 보리가 익어가고 찔레꽃향이 코끝을 간지럽히고 새들은 아무 근심 없다는 듯이 하루 종일 지지거리고. 나를 일곱 살의 봄으로 자연스럽게 소환하고 있다. 초파일이었던가.

아들이 없던 어머니가 불공을 드리러 간다고 했을 때 오랜만에 나들이를 가고 싶었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떼를 쓰는 일이었다. 높은 산을 오르고 산골짜기를 가야 하는 길이어서 어머니는 한 번도 나를 절에 데리고 가질 않으셨다.

그해는 유난히 울고불고 난리를 쳤던 기억이 선명하고 아버지께 야단을 맞은 나는 저녁 늦도록 어머니를 기다리며 집밖을 맴돌았다. 아리고 그리워서 늘 돌아가고 싶은 그 시절이 눈에 선하다.

시·글= 이기영 시인, 사진= 김관수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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