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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이 만난 우리 시대의 청년예술인 (2) 영화감독 정지혜

영화가 갖는 이야기의 힘, ‘나만의 앵글’ 로 풀어냅니다

기사입력 : 2023-05-19 09:15:15

첫 데뷔작 <정순> 전주·로마국제영화제 연거푸 대상 수상

올해 스물여덟 양산 출신 감독… 지역 영화계 혜성처럼 등장

임권택․이창동이 롤모델… 인본주의 영화미학 추구 계속 노력

씨줄날줄 얽힌 사람 사는 이야기, 나만의 앵글에 담아내고파


영화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대중매체라 할 수 있다. 뿐만아니라 이제는 아주 각광받는 산업이자 촉망받는 예술의 자리까지 올랐다. 영화는 생활의 일부가 돼버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 수백만 명이 다양한 방식의 윈도우(TV, 인터넷, SNS, 스마트폰, DVD, VOD, USB 등)를 통해 영화를 보고 있다. 1895년 프랑스 뤼미에르 형제에 의해 ‘움직이는 사진’이란 이름으로 역사에 첫 명함을 내민 영화. 기껏해야 120년 짧은 역사지만 수천 년 역사를 가진 문학, 음악, 연극, 미술, 무용 등 전통적 예술 장르를 아우르며 현대문명의 총아로 우뚝 섰다.

근래 한국 영화는 한류에 힘입어 국제무대에서도 단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기생충〉과 〈미나리〉로 이어진 아카데미상 수상 소식은 우리 국민의 문화적 자긍심을 높여주었다. 연이어 〈오징어게임〉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공전의 히트는 넷플릭스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타고 세계인의 안방까지 파고듦으로써 또 한 번 K-드라마의 위력을 세계만방에 떨쳤다.

전주국제영화제 대상 수상
정지혜 감독이 헤드셋을 쓰고 영화 <정순> 후반작업을 하고 있다./정지혜 감독/

그러나 이런 화려한 외피에도 불구하고 한국 영화는 최근 심각한 위기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관객의 외면으로 영화 개봉을 미루는 사태가 줄을 잇고, 영화산업 인프라의 수도권 집중으로 지역 불균형이 심해지고 있으며, 한국 영화의 젖줄 역할을 해온 영화진흥기금마저 고갈된 사태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지난해 지역영화계에 단비와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경남 양산 출신 젊은 영화감독 정지혜씨가 전주국제영화제(한국경쟁 부문 대상)와 로마국제영화제(심사위원 대상, 최고여자배우상)에서 연거푸 대상을 차지했다는 낭보를 전해 온 것이다. 그에게 영광을 안긴 작품은 자신의 데뷔작이기도 한 영화 ‘정순’. 이 영화는 그가 자란 양산에서 모두 촬영해 그 의미가 남달랐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정지혜 감독은 국내외 크고 작은 영화제 초청에 응하느라, 또 새로운 작품을 위한 시나리오 집필 등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을 보내고 있다. 지역 영화계에 혜성처럼 떠오른 올해 스물여덟의 정지혜 감독을 지난 4월 말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만났다.

전주국제영화제 대상 수상
정 감독이 부산 영화의전당에 전시된 한국유명감독 핸드프린터에서 롤모델인 임권택 감독의 핸드프린터에 손을 대고 있다./김우태 시인/

-먼저 수상을 축하한다. 수상소감과 함께 요즘 근황도 궁금하다.

△실력보다 운이 좋았다. 함께 만들고 헌신적인 도움을 주신 배우와 스텝진, 그리고 동서대학교 교수님, 경남도와 양산시, 부산시 지원과 협조에 깊이 감사드린다. 영화는 과학이고, 산업이며, 예술이다. 여기에 엄청난 기회가 있다. 잠재력도 충분하다. 저 같은 젊은 영화인이 맘껏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이 지역에도 만들어지면 좋겠다. 현재 부산에서 영화 제작사와 영상업체도 운영하고 있다. '인터랙티브 콘텐츠'라는 시청자 선택에 의해 이야기 구조가 바뀌는 웹드라마를 준비 중이다.

-영화에 입문하게 된 동기는?

△어릴 적부터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런 시간을 영화, 드라마를 보며 많이 채웠고 자연스럽게 관련 직종을 꿈꾸게 되었다. 고등학교 진학 후에 영상동아리 '키네키즈' 활동을 하며 친구들과 단편영화를 만드는 경험을 하였고, 그 경험이 직접적으로 영화인의 길로 이끌었다. 영화가 갖는 이야기의 힘을 빌리고 싶었다.

전주국제영화제 대상 수상
지난해 정 감독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영화 <정순> 으로 한국경쟁 부문 대상을 받고 있다./정지혜 감독/

-영화 ‘정순’으로 큰 상을 많이 받았는데, 어떤 점이 평가받았다고 생각하는가?

△첫째로 디지털 성범죄가 범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고, 아직까지 우리 사회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는 점을 ‘정순’이 잘 전달했다고 평가한 것 같다. 디지털 성범죄가 특정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세대에 노출되어 있고 함께 고민해야 하는 사안이라는 문제의식에 공감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둘째로 영화의 주인공인 '정순'을 연기한 김금순 배우의 매력이 〈정순〉을 통해 잘 드러난 점이다. 그동안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던 김금순 배우가 〈정순〉을 통해 국내외 영화제에서 큰 주목을 받게 되었고, 배우의 얼굴을 통해 관객들이 더 정순의 이야기에 공감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영화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지난 작품과 앞으로 본인의 영화가 추구하는 미학 또는 메시지는 어떠한 관계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동안 작업했던 단편영화들을 포함하여 〈정순〉까지 사회적으로 사각지대에 놓여있거나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1~2명의 주인공을 중심에 두고, 그 인물의 삶의 단편을 천천히 바라보는 형식을 따랐다고나 할까. 이를 통해 관객들에게 이 인물이 어떤 사회에 놓여있는지, 영화 속 사회가 우리 삶에 얼마나 가까운지를 관객들에게 설득하는 작업을 해왔다.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본질을 탐구하다 보면 인간의 본성과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은 인본주의로 귀결되지 않겠나. 씨줄날줄로 얽혀있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나만의 앵글을 통해 재미있게 그려보고 싶다.

-어떤 영화감독을 롤모델로 삼고 있나? 그리고 영화감독으로서 꼭 제작하고픈 영화는?

△임권택 감독님과 이창동 감독님을 롤모델로 삼고 있다. 영화를 예술로 승화시킨 분들이다. 그분들의 영화처럼 오래 기억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현재 쓰고 있는 시나리오는 중학생을 주인공으로 한 성장드라마, 코미디 영화다. 그동안 작업했던 영화들이 비교적 어두운 분위기였는데, 이번 시나리오를 통해 좀 더 밝은 톤과 매너를 가진 영화에 도전해 보려 한다. 실패하더라도 새로운 장르와 이야기에 계속 도전할 것이다.

-지역에서 영화 활동하기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그리고 젊은 영화인이 많이 배출되기 위한 조건들이 있다면?

△아무래도 지역 영화인들이 떠나지 않기 위해서는 한 해에 많은 수의 지역 영화들이 제작되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관에서 영화인과 지역 로케이션 데이터베이스 등 소프트웨어 정보들을 잘 제공해 주는 것도 큰 힘이 된다. 수도권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 양질의 지식과 기회가 지속적으로 제공된다면 서울로 떠날 이유가 없다. 부울경이 힘을 합쳐 영화산업 생태계를 조성한다면 큰 시너지를 발휘할 것이라 본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확한 개봉 일자가 나오지 않았지만, 〈정순〉이 올해 안에 관객들을 찾아뵐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극장에서 많은 분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정순〉을 경남에서 모두 촬영하였는데 이 지면을 빌려 도와주신 지역민들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코로나로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올해는 활기를 되찾고 그만큼 더 행복했으면 한다.

김우태(시인)
김우태(시인)

김우태(시인)

※이 기사는 경남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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