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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나의 루틴은 외로움 때문이다- 주향숙(시인)

기사입력 : 2023-06-01 19:28:21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라고 정호승 시인은 시 ‘수선화에게’에서 노래하고 있다.

나는 루틴을 만들어 지내는 것을 좋아한다. 루틴이 깨지는 날은 어쩐지 불편하고 어색하다. 아침에 일어나 이부자리 정돈을 하고, 깨끗한 물을 떠 놓고 기도를 한다. 특별한 형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가족의 안녕을 빈다. 무탈하게 하소서. 어떤 응축된 힘이 단전에 모이는 것을 느낀다.

의령에서 30년째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처음에는 그저 호구지책의 수단이었고 일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이 들면서 아이들에게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크다. 배움은 될 수 있으면 쉽고 빠르게 전달하고자 하고, 여기저기서 상처받는 아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고 어루만지려 애쓰고 있다. 아이들은 우리의 귀중한 미래니까.

주중 화요일과 목요일은 승마를 한다. 운동에 소질 없고 겁이 많은 사람이지만 말이 좋고 말이 주는 순한 에너지가 좋다. 마치 진정한 자유를 느끼는 기분이랄까. 5월이 오니 승마장 울타리에 장미꽃이 활짝 피었다. 내가 좋아하는 말 ‘연이’는 가끔 꽃잎을 따 먹는다.

얼마 안 되는 금액이지만 기부를 한다. 의령장학회는 7년째 하고 있고 유니셰프는 작년부터 하고 있다. 학원 하는 사람으로서의 부채감이었을 것이고, 죄 없는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에게 보내는 미안한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가족과 친구와 보내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글을 쓰며 보낸다. 내향적 성격이라 집 밖에서는 늘 긴장하게 된다. 몇 해 전, 록산 게이의 ‘헝거’를 읽었다. 그녀는 어릴 적 겪었던 폭력과 그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키운 거대한 몸집으로 인해 또다시 사람들로부터 받는 폭력에 대해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글쓰기를 통해 마침내 카타르시스에 이르게 되었다고 했다.

나 또한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 당당하지 못했고, 끝없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고난의 순간도 많았다. 어디로 더 가야 할지 막막해지는 안개터널 같은. 그런 때는 숨죽이고 가만히 하루를 살았다.

상처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상처를 잘 극복할 수 있는 내적 에너지가 있었으면 좋겠다. 흔들리지만, 쓰러지지 않는 나무처럼.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마법 하나씩 갖고 살았으면 좋겠다. 나의 친구 경은 꽃꽂이를 하고, 란은 그림을 그리고, 림은 노래를 부르고, 수는 바느질을 하는 것처럼.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스스로를 치유하고 시간을 보내고 외로움을 견디고 있다.

살면서 도저히 욕심낼 수 없는 것들은 욕심내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지혜라고 믿는다. 사람은 저마다 가진 능력치가 다르고, 그것은 랜덤처럼 그저 주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이제 조금씩 깨닫고 있다. 자신이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다 가면 될 일이다.

그동안 많이 외로웠다. 그 누구도 내가 될 수는 없었기에. 나는 내 몫의 나날을 살아내야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좋아하는 일과 취미와 루틴이 있어 외로움을 느낄 수 있는 이 시간이 좋다. 외로움의 시간은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니까.

나는 오늘도 노트북을 끌어안고 잠이 든다.

주향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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