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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순간과 영원의 소중함을 가르치는 현장- 이지영(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클럽발코니 편집장)

기사입력 : 2024-04-02 19:22:05

매년 3월이 되면 통영국제음악제를 찾는다. 음식도 좋고 자연도 아름답지만, 통영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이 도시만의 빛깔과 힘이 있다. 일찍부터 문화예술인들의 집합소였던 이곳은, 아름다움을 꿈꾸고 도전하고 변화하며 앞서 나간 사람들의 흔적이 쌓인 곳이다. 덕분에 이곳에 오면 현실에 급급했던 생각과 시선을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게 된다.

지난달 29일 2024 통영국제음악제가 개막했다. 작곡가 윤이상을 기리기 위해 2002년 문을 연 이후 22년째다. 꾸준히 성장한 축제는 이제 아시아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음악제가 됐다. 많은 도시가 누군가를 기리고 행사를 꾸리지만, 뿌리를 살려내고 가치를 알리고 또 다른 열매를 맺어 이 정도의 위상을 갖게 된 경우는 통영국제음악제가 유일하다. 임기 3년 차를 맞이한 진은숙 예술감독은 음악계 최고 영예인 ‘에른스트 폰 지멘스 음악상’을 아시아인 최초로 수상하며 음악제의 높은 위상에 힘을 보탰다. 매년 놀라운 소식들이 색을 덧입히고 있다.

이 축제를 진지하게 바라보는 도시의 정책도 고맙다. 음악제 출범 당시, 함께 삽을 떴던 김일태 언론인이 통영국제음악재단의 신임 대표로 발탁된 것도 감사하다. 시작만 화려하고 사라지는 행사가 많은데, 도시 행정가들이 무엇을 위해 일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뚝심 있게 축제를 이끌어온 관심과 선택은 귀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올해 음악제는 현대음악의 거장 페테르 외트뵈시를 상주 작곡가로 선정했다. 개막 직전 세상을 떠나 아쉬움을 남긴 그를 추모하며 5개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플루티스트 엠마뉘엘 파위, 피아니스트 베르트랑 샤마유, 비올리스트 앙투안 타메스티 등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상주 아티스트로서 음악제 내내 최고의 무대를 만든다. 타악기 연주자 마리안나 베드나르스카, 카운터테너 필리프 자루스키와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의 ‘마태수난곡’, ‘크리에이터 나래 솔’, ‘리히터스 패턴스’ 등은 이 축제의 품격과 다양성, 열린 사고를 말해준다.

진은숙 감독은 현대음악이 새로운 지평을 여는 데 한국 전통음악이 영감이 되기를 기대하며 임기 첫해부터 한국 전통음악을 소개해 왔다. 올해는 국가무형문화제 판소리 ‘적벽가’ 예능 보유자 김일구 명창의 절창이 더해졌다. 보다 넓은 관객층과의 소통을 위해 팬데믹 이후 5년 만에 재개된 ‘통영프린지’도 반갑다. 세계적인 해외 연주자들과 양인모, 조인혁, 홍석원, 선우예권,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 등 한국 연주자들과의 앙상블도 기대된다.

올해 음악제의 주제는 ‘순간 속의 영원’이다. 매년 발표하는 주제를 곱씹어보면 이 음악제가 무엇을 고민하고, 음악제에 무엇을 반영해 왔는지 알 수 있다. 현재는 현재에 머물 수도 있지만, 현재 우리의 모든 순간은 ‘영원’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지금은 소수에게만 의미 있다 여겨지는 것들이 시간의 힘을 얻을 때 역사가 된다. 통영국제음악제는 시간이라는 개념 속, 순간과 영원의 소중함을 가르치는 현장이다. 이 도시를 사랑해서 매년 찾는 이유다.

이지영(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클럽발코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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