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ON 도희주의 반차 내고 떠나는 Trip in 경남] (5) 고성 문수암
저 멀리 보인다 탁 트인 세상, 저~~~멀리 보낸다 턱 막힌 일상
무이산 절벽 위에 자리잡은 문수암
‘청담대종사사리탑’ 자란만 향해 묵상
능선 따라 저멀리서 반기는 금불상
다도해의 아름다움에 근심·걱정 싹~
약사전 ‘약사여래대불’ 일출처럼 웅장
보현암은 불자 기도처로 영험한 기운
가야의 향기로 가득한 고성조각공원
선동마을·무선저수지 풍경도 볼만
5월 끝자락! 기온은 벌써 여름이다. 아파트 건너 대암산. 초록이 무성한 사잇길로 등산복 입은 사람들이 시야에 언뜻언뜻 들어온다. 오후엔 진행해야 할 업무가 있다. 함께 협의해야 할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미 스트레스는 시작됐다. 인간관계의 대립은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다. 그러나 피할 수 없다면 스트레스 먼저 풀고 일과 ‘맞짱’ 뜨자. 가자! 드라이브로 거친 산을 함께 즐기기 좋은 곳. 고성군 상리면 무선2길 808. 해발 545.6m. 무이산. 그곳에 문수암이 있다.

문수암에서 바라본 약사전의 ‘약사여래대불’과 운무로 뒤덮인 자란만이 운치를 뽐내고 있다./도희주 동화작가/

◇가야의 향기, 조각공원

고성 조각공원
마창대교를 지나고 동전터널을 빠져나가는데, 아스팔트에 누군가 남긴 스키드마크가 아찔하다. 즐기는데도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행동에 옮기는 건 즉시! 진행은 차분하게. 고성군 회화면 배둔 지나고 송학동고분군을 지난다. 저만치 교사 회전교차로가 보인다. 진주 방면 첫 번째 도로로 좌회전이다. 자칫 놓치기 쉬운 도로변에 ‘고성조각공원’이 있다. 조각공원과 펜스를 사이에 두고 있는 고성실내체육관에 주차한다. 공원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대형 바위. 설악산 울산바위가 방금 굴러떨어진 것처럼 장정 몇이 밀면 굴러갈 듯 크고 둥글다. 조각공원에 있어 조각품인 줄 알았는데 자연석이다. 공원 규모는 소담하다. 의미심장한 석상 7점. 칼이나 말의 석상이 사람 키보다 조금 높게 형상화되어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아쉬운 것은 설명문이 없다. 인터넷 검색에서 고성군 일대에서 발굴된 가야 시대 유물들을 축소하여 1998년 조성된 공원임을 알았다. 조각품들과 나무 사이로 천천히 걷는다. 마치 가야시대로 들어가는 착각을 일으킨다. 새로운 풍경을 찾아가다 잠시 고대(古代)에 들른 기분이다.
◇선동마을과 무선저수지
우측의 경남항공고와 고성중학교를 지나 국도 33호선을 달린다. 도로 좌우 모내기를 끝낸 논들의 풍경은 한결같다. 모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줄지어 고만고만한 키재기를 하고 있다. 문수암·보현암 이정표를 지나 곧 비보호 좌회전이다. 진입로 표지판은 ‘전통 사찰 제78호 문수암 3.5㎞, 보현암은 4㎞’로 되어 있다. 편도 1차로 좌우엔 메타세쿼이아가 하늘을 가리며 도열해 있다. 유럽의 교외를 달리는 기분이다. 무심코 시선을 돌리다가 수채화 같은 작은 마을을 포착했다. 들녘엔 모내기로 농부들의 일손이 바쁘다. 길옆 나무 아래에 ‘선동마을 이야기’ 표지판이 마을문화해설사처럼 나그네에게 200년 된 마을 이야기와 무이산의 유래를 짤막하게 들려준다.

선동마을 전경
선동마을 입구부터 목적지는 ‘남파랑길 32코스’ 구간에 포함된다. 처음 가는 길. 풍경은 새롭고 마음은 호기심으로 가득해 저절로 시야의 폭이 넓어진다. 왼쪽 길가에 수령이 제법 돼 보이는 느티나무 한 그루. 그리고 깨알같이 새겨놓은 표석을 지나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옆엔 소박한 정자까지 있다. 잠시 공터에 정차했다. 1996년 당시 70년 수령의 나무는 마을 사람들의 쉼터였다. 그런데 도로를 확장하면서 나무를 베어내야만 할 상황이었다. 마침 이(李)씨 성을 가진 지주가 본인 땅에 나무를 옮겨 심어 쉼터가 유지되도록 배려했다. 마을 사람들은 답례로 그 사람 성(姓)을 따서 나무를 ‘이정자(李亭子)’로 부르게 됐으며 곧 100수를 앞두고 있다.

한동안 달려온 평지가 어느 순간 경사를 달리한다. 무이산으로 향하는 545.6m의 시작. 차창을 내린다. 알싸한 숲 향기가 훅! 들어왔다. 도시를 벗어난 걸 실감한다. 비릿한 물 향기까지 더해지고 있다. 좌측 펼침막을 보곤 ‘무선저수지 생태탐방로 조성사업’ 진행 사실을 알게 됐다. 공사 기간은 작년 12월부터 내년 7월까지. 청정지역 무선저수지가 내비게이션에서 가오리 형상으로 뜬다. 연초록 숲과 제법 드넓은 에메랄드빛 저수지가 커다란 달력 그림처럼 반짝인다. 놓칠 수 없는 그림을 내 앵글 속으로 불러들였다. 등을 돌리니 바로 뒤에 새로 지은 듯 깔끔한 카페 건물의 통유리가 저수지 윤슬을 그대로 반사하고 있다. 내년 여름, 무선저수지의 새로운 모습을 찾는 발길이 이어지겠다.

무선저수지
◇허공에 떠 있는 문수암
초여름! 잠시 차에서 내려 주변을 탐색하는데 도로 옆 비탈은 온통 하얗다. 때죽나무꽃들이 자욱하게 낙화해 은은한 향기를 전하고, 순백의 찔레꽃 향기마저 더해 머리가 아찔해진다. 산허리로 길을 낸 문명의 이기가 새삼 고맙다. 도로를 포장하지 않았더라면 이 험지를 어떻게 접근할 수 있었을까. 경사가 어림잡아 30도, 가파른 곳은 40도도 될 듯하다. 아래에서 문수암 향하는 길은 흡사 하늘을 오르기라도 할 듯하다. 휘어지는 모서리 반사경 아래엔 ‘저단기어’를 사용하고 브레이크 파열 주의하라는 경고 표지가 있다. 손바닥에 살짝 땀이 쥐어진다. 차도 숨을 헐떡인다. 마치 차를 뒤에서 밀며 발뒤꿈치에 힘을 주듯 액셀러레이터를 밟은 발에 힘이 들어간다. 문수암 가는 길이 험하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설마 절벽 위에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문수암
문수암 주차장에 주차하니 발아래에 펼쳐진 남해의 다도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해무를 걷어낼 수만 있다면 더 좋겠지만 그런대로 운치가 있다. 먼 곳을 자세히 보길 바라는 건 어리석은 일이지 않은가. 눈앞에 보이는 일도 해결하지 못해 전전긍긍 스트레스받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멀리 있는 건 멀리 두고 볼 일이다. 가까이 당겨 자세히 보는 순간 갈등도 시작된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 보면 비극이라고 말한 사람이 채플린이었던가. 능선을 따라 저 멀리 금불상 얼굴이 환하다. 미처 몰랐던 ‘약사여래대불’이다.
문수암! 암벽을 낀 계단을 오른다. 주차장에서 고개만 들면 보이는 문수암 지붕이 생각보다 멀다. 40도 경사가 넘는 바위 절벽 길을 오르는데 숨이 턱턱 막힌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벌어진 길 사이로 깎아지른 절벽 아래 풍경이 간담을 서늘하게 조여 온다. 발끝에 차인 작은 조약돌이 비명을 지르며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 그 모양이 내 모습이 될 수도 있다. 이 아찔한 절벽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오는 불자들이 꽤 많다고 들었다. 굳이 이처럼 힘든 길을 오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런데도 이 힘든 길을 자청해서 오는 건 어쩌면 자신의 나약함을 극복할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닐까. 중턱에서 숨을 몰아쉬며 땀을 훔친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그네는 길 사이사이 벌어진 바위틈으로 내려다보이는 아찔한 벼랑 풍경이 눈에 들 때마다 오금이 저린다. 문득, 내려갈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석가모니의 말씀이 죽비처럼 내 등짝을 후려친다.
“우리 인생을 방해하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어느 것도 끝내지 않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어느 것도 시작하지 않는 것이다.”
운동화를 벗어 털었다. 안에서 작은 돌조각이 떨어진다. 속으로 변명처럼 중얼거렸다. ‘부처님 진짜 내려갈 생각은 아니었어요. 돌조각 때문에 발이 좀 아팠을 뿐이에요.’ 다시 좁은 바위 틈바구니 길을 따라 올랐다. 자일만 두르면 클라이밍 수준이다. 거의 다 올라갈 무렵 암벽 틈이 벌어져 있고 건너편 바위 위에 탑이 보인다. 건널 수 있게 길이 만들어져 있다. 암벽의 틈새는 성인 한 명이 들어갈 만큼 벌어져 바다를 건너온 바람이 바위를 덮고 있는 이끼를 훑으면 올라온다. 절벽 틈에 뿌리를 내렸으나 뿌리가 절반이나 드러난 나무들이 안쓰럽다. 그렇지만 나머지 절반에 자신을 걸고 의연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거스를 수 없다면 극복해야 하는 게 삶이다.
암석 위의 ‘청담대종사사리탑(靑潭大宗師舍利塔)’과 사리함은 자란만을 향해 묵상에 들었다. 사리탑 주변에는 허공을 향해 가지를 뻗은 소나무들이 바람에 경을 읊는 듯하다. 사리탑 앞은 툭 터진 허공이다. 자란만의 경치에 무아지경에 빠져든다. 운무 탓일까. 섬들이 둥둥 떠다니는 것 같다.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볼 수 없었을 터. 앵글을 잡는다. 지나왔던 무선저수지와 마을도 담고 소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는 문수암도 담는다. 불자가 아니어도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발아래 풍경에 세상 시름 툭, 툭 털고 갔을 터.
문수암을 등지고 약사전과 보현암이 있는 수태산으로 간다. ‘해동제일약사도량(海東第一藥師道場)’의 일주문에 들어선다. 정면 약사전 지붕 위로 ‘약사여래대불’의 얼굴이 마치 갓 떠오르는 일출처럼 웅장하다.

약사전

보현암
약사전에서 보현암은 좀 더 가야 한다. 초입은 마치 미술관인 듯하다. 돌출된 바위를 담쟁이들이 둘러싸고 있다. 게다가 바위 옆의 소나무와 대조적이면서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돌아보다가 저만치 조금 전 빠져나왔던 약사전의 ‘약사여래대불’과 눈이 마주친다. 발아래엔 문수암에서 보았던 자란만이 따라와 있다.
돌아오는 길, 메타세쿼이아의 연초록빛이 오전보다 더 눈부시다. 답답했던 마음을 걷어가듯 가슴속으로 한 점 바람이 휘 지나간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 간절하다.

국도 33호선에 메타세쿼이아가 도열해 있다.
〈팁〉
△고성조각공원: 고성군 고성읍 교사리 387. 고성군에서 발굴된 가야 시대 유물들을 형상화하여 1998년 8월에 조성한 공원이다. 발굴 당시 둥근 바위와 석마·칼·고배 등 조각품 7점이 있다. 석마는 고성군 마암면 석마리에 화강암으로 만든 말 형상 2기를 모방한 것으로 상고시대로 추정되나 정확한 기록은 없다.
△문수암: 삼국 시대부터 해동의 명승지로서 이름났으며 화랑들의 무예 수련장이었다. 신라 신문왕 8년(서기 688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암자이며 중창 및 중건의 역사는 전래되지 않고 최초의 암자는 사라호(1959년) 태풍 때 붕괴했다. 현 암자는 이후 신축했다. 신도들의 성금으로 1973년 이 암자에서 수도한 이청담(李靑潭)의 사리를 봉안하여 세운 청담대종사사리탑과 사리함이 있다.
△약사전과 보현암: 고성군 하일면 무선2길 957. 수태산(547.4m)에 자리 잡고 있다. 약사전은 질병 치료와 수명 연장, 재앙 소멸 등 중생을 구도해 준다는 약사 도량으로 동양 최대의 약사금불상이 있다. 약사전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보현암은 고성군 하일면 무선2길 1039. 불자들의 기도처로 영험한 기운의 기도 도량이라고 한다.
도희주(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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