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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잡초의 재발견- 강지현(문화체육부장)

기사입력 : 2024-06-24 19:28:58

장맛비에 6월 폭염이 한풀 꺾였다. 초록빛 생명들도 구름 아래서 숨을 고른다. 이 가운데엔 보잘것없지만 그 누구보다 부지런히 하루를 준비하는 식물이 있다.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무럭무럭 자라는 풀, 뽑아도 뽑아도 다시 돋아나 화를 돋우는 풀, 잡초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싹을 틔우는 강인한 생명력의 대명사. 그러나 농부에게 잡초는 농작물의 성장을 방해하는 고약한 훼방꾼에 지나지 않는다.

▼잡초에 대한 평가는 박하다. 부정적 의미를 가진 잡(雜)자를 달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잡초는 환영 못 받는 천덕꾸러기요, 없애야 할 제거 대상이다. 그러나 잡초는 죄가 없다. 인간을 성가시게 한다는 이유로 ‘나쁜 풀’로 낙인찍혔지만 자연에는 아무 해를 끼치지 않는다. 미국의 사상가이자 시인인 랄프 왈도 에머슨은 잡초를 이렇게 평가했다. ‘아직 그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식물.’ 잡초와 약초는 한 끗 차이다.

▼벼·콩·밀 같은 작물도 애초엔 야생의 풀이었다. 쓸모없어 보이는 잡초도 가치를 알면 보물이 된다. 흔하게 보는 쑥, 망초, 바랭이, 쇠무릎, 질경이는 약재로 쓰인다. 개똥쑥은 말라리아 특효약, 병풀은 피부질환 치료제, 얼치기완두와 살갈퀴는 친환경 제초제로 활용된다. 갈대, 꽃창포, 부레옥잠 같은 수생 잡초는 수질 정화에 효과적이다. 지표면을 덮은 잡초는 호우 때 토양 유실을 막아준다. 세상에 필요 없는 존재란 없다. 가치를 발견 못했을 뿐이다.

▼일본의 식물학자 이나가키 히데히로가 쓴 ‘잡초학자의 아웃사이더 인생수업’에서 잡초의 진면목을 봤다. 잡초는 아무리 밟혀도 다시 일어나려는 쓸모없는 짓은 하지 않는단다. 대신 짓밟힌 잡초는 아래로 자란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뿌리를 뻗으며 고난을 견딘다. 밟히고 또 밟히면서도 꽃을 피우고 씨를 남기는 일만큼은 잊지 않는다.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있는 힘껏 오늘을 사는 잡초. 하늘을 향해 당당히 잎을 펼친 잡초가 새롭게 보이는 아침이다.

강지현(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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