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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승이야기 3] 이삿짐 차에 삶의 여정을 싣고- 박선영(시조시인)

기사입력 : 2018-06-1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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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일과 입는 일은 매일 새로이 한다. 그러니까 의식주 중에서 ‘의’와 ‘식’에 관해서는 날마다 새 도화지를 펼치고 그날의 색깔을 칠할 수 있다. 그런데 ‘주’에 관해서만큼은 다르다. 어젯밤에 잠든 자리에서 일어나서 어딘가로 나갔다가도 다시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 그 자리로 되돌아와 오늘을 정비하는 것이 ‘주’다. 의생활을 갈무리하고 식생활을 해결하기 위해 주생활에 안착하게 되어 있는 것이 삶이다. 주거(住居)와 거주(居住)는 같은 말로 살 거와 살 주, 산다는 뜻의 글자 두 개를 나란히 쓴다. 일정한 곳에 머물러 사는 삶, 또는 그런 집이라는 의미로 국어사전에 나와 있다.

때로는 그 ‘주’에도 환승을 해야 할 시기가 찾아온다. ‘주’의 안정감을 실체로 삼는 일에는 실로 많은 사람들의 욕구가 결집되어 있지만 주생활의 변화야말로 삶의 환승역이 아닐까 싶다. 이번 칼럼은 ‘환승(換乘)’을 주제로 쓰는 세 가지 이야기의 마지막이다. 주(住)생활에서 발견되는 삶의 마디에 대해 언급하는 것으로 짧은 연재를 마무리해보려 한다.

7월에 이사를 앞두었다는 지인에게 ‘한창 더울 때 하시네요’라 했더니, 지금 살던 집에 이사를 오던 날도 더웠는데 7월에 이사를 왔으니 또 7월에 이사를 가게 됐다고 한다. 그럼 아마 또 변수가 없는 한 2년 후의 7월에 이사를 갈 가능성이 크겠다. 부동산 임차 제도는 그렇게 한 가족의 생활에, 같은 계절에 이사를 하게 되는 주기를 만들어주었다. 애초에 한여름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다분했을 터.

이사를 해야 하는 사정들은 너무도 다양해서 다 열거하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사엔 살기 위한, 사는 데 필요한 거의 모든 일이 연루된다는 사실이다. 직장과 학교를 둘러싼 생활반경은 이 문제에서 거의 우선된다. 가족 구성원에 변화가 있어서 하는 이사라면 더욱 그렇다. 머릿수와 방의 개수부터가 밀접하다. 식구가 늘거나 주는 일은 누구에게나 중대하며 그에 따라 살림의 규모가 결정된다.

그러니 이사도 일종의 환승 행위 같다. 새로 들여야 할 것들과 버려야 할 것들이 생긴다. 손이 잘 가지 않고 소장가치가 떨어진 책들을 처분하는 일이 그렇다. 옷가지들을 펼치고 의류수거함으로 보낼 옷들을 솎아내는 것도 그렇다. 수건이 낡았으니 이참에 싹 버릴지를 고민하다가, 새로 사기 전까지는 써야 하니 우선 가져가보기로 했다가 그대로 몇 년을 더 사용하게 되기도 하는 일도 포함이다. 가구를 산다면 5년 후, 10년 후를 그려보게 되기도 한다. 살면서 그 환승을 몇 번이나 더 거칠지 가늠해보곤 하지만 역시 알 수 없다.

어딘가에 가기 위해 교통수단을 이용할 때, 최대한 덜 갈아타고 가는 것이 편안한 것처럼 집의 문제도 사실은 그렇다. 그래도 꼭 해야 하는 이사라면 좀 더 나은 삶, 그게 선물처럼 오면 좋겠다. 비오는 아침, 아파트 단지 내에 주차된 이삿짐 차가 꽤 높은 층으로 사다리를 설치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한 가족이 새 집으로 환승하는 날인데 비가 와서 어쩌나 싶었다. 오늘을 위해 많은 결정의 수고를 겪었을 그 가정에 행복이 촉촉하게 스미길 바란다.

박선영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