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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하꼬] ‘부자마을’ 진주 지수면 승산마을 탐방

여기가 부자가 나올 상인가

허씨·구씨 집성촌…600년 역사

기사입력 : 2020-12-17 21:09:38

사람이 일평생을 살면서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은 숨길 수 없는 본능이다. 보다 여유롭게 살기위한 바람은 부자를 소망한다. 최근 이런 부자의 기운을 받기 위해 경남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잦아지고 있다. 삼성그룹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생가가 있는 의령의 부잣길과 진주시 지수면 승산마을이 그곳이다.

특히 진주 지수면 승산부자마을은 LG와 GS 창업주들의 생가가 그대로 보존돼 있고, LG그룹 구인회 회장과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은 물론 효성그룹 조홍제 창업주 등 굴지의 한국 재벌과 기업인들을 배출한 옛 지수초등학교가 있다.

◇진주 승산마을=600여년 전 김해 허씨가 이곳에 자리를 잡으면서 허씨 집성촌을 만들었다. 300년 뒤에는 능성 구씨를 사위로 맞으면서 허씨와 구씨가 조화를 이루며 마을을 일구어 왔다. 이 마을은 300여 채가 살고 있었는데 만석꾼이 2명이나 되고 천석꾼도 여러 명이 되면서 한 마을에서만 3만8000석에서 4만석을 생산했던 곳이다. 이 마을은 풍수지리적으로 물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역수인데 물이 나가는 곳이 보이지 않아 재물이 모인다거나 양 날개를 펼친 학모양의 방어산이 이 마을을 가리키고 있어 부자의 기가 있다는 말도 있다.

진주시 지수면 승산마을 전경.
진주시 지수면 승산마을 전경.

이 마을은 600년 된 역사만큼 고가들이 많다. 일부 고가는 문화재로 지정돼 있기도 하다. 담벼락을 따라 마을을 한 바퀴 돌다 보면 담 길이만 무려 5㎞나 된다. 300여 채에 달하던 이 마을은 6·26전쟁을 겪으면서 지금은 100여 채만 남아 있고 일부 후손들이 살고 있지만 일부는 거주하지 않고 관리만 하고 있다. 대부분의 집은 문이 잠겨 있어 돌담 너머로 들여다볼 수 있다.

진주 지수초의 ‘부자소나무’. 지수초 출신인 구인회 LG그룹 회장,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가 함께 심었다.
진주 지수초의 ‘부자소나무’. 지수초 출신인 구인회 LG그룹 회장,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가 함께 심었다.

승산마을은 담을 사이에 두고 재벌과 재벌들의 집이 줄지어 있다.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당시 신식학교이던 지수초등학교에 다니기 위해 의령에서 유학(?)와서 살았던 누님 집과 우물도 그대로 있다. 이어진 고가를 따라가면 LG 창업주 구인회 회장의 생가와 그 옆에는 구자원 LIG 창업주 생가, 바로 옆이 쿠쿠전자 구자신 회장의 생가가 있다. 뒤편으로 돌아가면 허창수 GS회장의 본가가 있다. 담길을 더 걷다 보면 허만정 GS창업주의 아버지이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가인 허준 선생의 생가가 있다. 골목 끝에는 허구연 야구 해설위원의 생가도 나온다. 마을 한쪽에는 임진왜란 당시 700명의 의병을 모아 진주성 1차전투에서 공을 세운 관란 허국주 선생이 노년을 보낸 관란정도 있다.

구자원 LIG 창업주 생가.
구자원 LIG 창업주 생가.

이 마을에서는 구자경 전경련 회장과 허창수 현 전경련 회장 등 한 마을에서 2명의 전경련 회장을 배출하기도 했다.

◇나눔과 베품, 진짜 부자정신이 있는 곳= 돈이 많다고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부자스럽게 살아야 진짜 부자다. 이 같은 정신이 흐르는 곳이 승산마을이다.

만석꾼이었던 허준 선생은 77세 때 자신의 재산이 자식들에게 화로 남을 것을 염려해 국가와 이웃, 친족, 조상으로 4등분해 재산을 배분했다고 허씨 의장비에 기록돼 있다. 비석에 이 같은 내용을 아예 새겨 자식들이 지키도록 했다고 한다. 그는 재산을 분배하면서 진주여고 전신인 진주일신학당을 만드는데 600마지기를 주도록 했다. 또 남이 볼 때는 짚신을 신고 다니고 그렇지 않을 때는 들고 다닐 정도로 근검한 생활을 했다. 홍수로 인근 주민들이 호별세를 내지 못하게 되자 세금을 대신 내주기도 했다.?그의 아들 효주 허만정은 안희제 등과 독립운동의 자금줄이 된 백산상회를 세우기도 했다.

구인회 LG 창업주 생가.
구인회 LG 창업주 생가.

구인회 회장은 평소에 담배를 두 가지를 가지고 다니면서 손님을 접대할 때는 좋은 것을, 자신은 그보다 좋지 않은 것을 피우기도 하는 등 근검절약하는 것을 생활화했다.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목욕탕과 예식장, 경로당이 있는 사회복지관을 세워주기도 했다.

이충도 지수초등학교 총동창회 사무총장은 “사실은 부자를 하늘에서 내려준 것이 아니고 이분들이 평소 근검절약하고 가진 것을 나누는 정신을 실천했기 때문에 부자가 된 것이다. 진정한 기업가 정신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분들이 산 곳이다”고 설명했다.

◇기업가 정신의 산실 지수초등학교= 지수초등학교는 지난 1921년 개교한 시골 학교지만 졸업자들을 보면 한국 기업들이 줄줄이 거론된다. 구인회 LG그룹회장과 이병철 삼성그룹회장,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가 모두 이 학교 출신이다. 세 분은 비슷한 시기에 학교를 다니면서 운동장에서 함께 축구를 즐기기도 했다. 세 사람은 교정에 ‘부자소나무’를 심었고, 졸업생이나 학교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 나무 앞에서 사진을 찍어 부자의 기를 받아간다. 지난 2009년 태풍으로 부자소나무가 일부 부러지자 LG그룹에서 소나무 전문가를 파견해 치료하고 고정장치를 설치하기도 했다.

이들 외에 구철회 LIG그룹 창업주, 허정구 삼양통상 명예회장, 구정회 옛 금성사 사장, 구태회 LS그룹 명예회장, 허준구 LG 명예회장,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구평회 E1 명예회장, 구두회 예스코 명예회장, 허신구 GS리테일 명예회장, 허완구 승산그룹 회장, 최종락 국제플랜트 회장, 구자신 쿠쿠전자 회장 등이 이 학교를 졸업했다. 1980년대 한 일간지에 당시 100대 기업인 중 30명이 지수초등학교 출신이라고 소개를 했을 만큼 수많은 기업가를 배출했다.

구자신 쿠쿠전자 회장 생가.
구자신 쿠쿠전자 회장 생가.

하지만 2009년 농촌 학력아동이 급격하게 줄면서 학교가 인근으로 이전하고 폐교로 남게 되면서 매각 위기가 있었지만 동창들의 노력으로 소유권이 도교육청에서 진주시로 이관됐다. 여기에 지난 2018년 한국경영학회에서는 진주를 ‘대한민국 기업가정신수도 진주’를 선포하면서 학교 본관은 기업가정신교육센터로,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이 기증한 체육관은 기업가정신 전문도서관과 체험센터로 바뀌게 돼 내년 3월께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이 센터가 들어서면 전국 18개 창업사관학교 교육생들이 연수도 받기도 하는 등 대한민국 기업가정신 수도 성지로 탈바꿈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글= 이현근 기자·사진= 성승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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