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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전쟁 속의 인간- 안창섭(시인)

기사입력 : 2022-06-23 20:16:07

6·25전쟁에서 인민군의 포로가 돼 총살을 기다리는 한 군인의 심리를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인간의 내면세계를 다룬 오상원의 ‘유예’는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한 인간의 고뇌와 실존적 불안 의식을 의식의 흐름 수법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주인공은 “누가 죽었건 지나가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들에겐 모두가 평범한 일들이다. 나만이 피를 흘리며 흰 눈을 움켜쥔 채 신음하다, 영원히 묵살돼 묻혀 갈 뿐이다”라며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선임하사는 “사람은 서로 죽이게끔 마련이오. 역사란 인간이 인간을 학살해온 기록이니까”라며 인류의 역사를 전쟁의 역사로 전쟁에서의 죽음을 당연히 하고 있다. 소설은 6·25전쟁을 통해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를 상실한 전쟁터에서 인간의 가치를 무의미한 존재로 전락시키는 전쟁의 참혹함을 되새긴다. 아직도 전쟁을 또 다른 정치의 연속으로 인식하는 위정자들을 생각하면 인류가 가지는 보편적 가치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며, 전쟁 속의 인간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할까?

인간은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상황, 피할 수 없는 극한 상황에 의해 죽을 수밖에 없다면 사람들은 성실하게 삶을 살기 위해서 노력하기보다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으로 괴로워하고 절망할 것이다.

우리는 죽음을 아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니 더 살고 싶어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며, 평소 생활에서도 생명에 위협을 주는 일을 하지 않으려 하고, 때로는 자신의 삶을 연장하기 위해서 타인에게 잊지 못할 상처를 주면서 살아가기도 한다. 이처럼 죽음을 어떻게 맞이하고 어떻게 살아갈지? 죽음이란 인간에게 두려운 존재이고, 인간은 죽음 앞에서 나약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더욱이 예상치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그 공포와 두려움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죽음의 공포가 인간의 의식을 가장 많이 지배하는 곳이 바로 전쟁터가 아닐까? 인간이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무의미하게 그 속에 내던지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끝나지 않은 전쟁을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한 시간 후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다”라는 문장이 소설 속에서 여러 차례 반복된다. 한 시간 후면 죽는다는 강박관념의 표현인데, 이러한 반복은 주인공의 내면의식을 통해서 말할 수 없는 전쟁의 처참함을 느낀다. 죽음 앞에서 의식을 잃지 않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모습, 삶의 유예기간이 점점 줄어감에 따라 두려움과 공포감으로 떨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서, 한 인간이 죽음 앞에서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알 수 있다. 더욱이 주인공이 살아 있는 시간, 즉 의식이 깨어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전쟁의 비극성을 더욱 절실하게 느낄 수 있다. 남북으로 분단된 우리의 현실을 생각할 때, 72년 전 민족 최대의 재앙이 된 6·25전쟁의 악몽이 이 땅에서 다시는 재현되지 않도록 민족의 힘을 모아 남북한 긴장을 해소하고, 하루빨리 관계의 개선을 통한 평화통일을 염원해본다.

안창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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