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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년간 1만4000쌍에 ‘결혼 선물’ 주고 하늘로 떠나다

백낙삼 마산 신신예식장 대표 별세

투병 끝에 세상 떠나… 향년 93세

윤 대통령도 빈소에 조화 보내

기사입력 : 2023-04-30 21:08:11

“지금보다 어려운 시대였으니 식을 못 올리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저도 형편이 어려워 31살이 되어서야 정화수 한 그릇 떠 놓고 식 올리는 것으로 노총각 딱지를 뗐거든요. 돈이 없어서 결혼을 못 한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사진값 6000원만 지불하면 결혼식을 무료로 해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고인이 된 故 백낙삼 신신예식장 대표는 과거 경남신문과 인터뷰에서 무료로 예식장을 운영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마산에서 55년 동안 1만 4000쌍 부부에게 무료로 결혼식을 올려준 백낙삼 신신예식장 대표가 투병 끝에 지난달 28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93세.

백낙삼 대표가 예식장에서 환한 표정으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경남신문DB/
백낙삼 대표가 예식장에서 환한 표정으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경남신문DB/

고인은 어렸을 적부터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왔다. 한 방에 부모님을 포함해 13명의 가족이 지내야 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고인은 교육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중앙대학교 교육학과에 입학했지만, 부모님의 사업 실패로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졸업 1년을 앞두고 학업을 포기해야 했다. 이후 고인은 길거리 사진사 일을 시작해 실력을 인정받았고, 자신처럼 형편이 어려워 결혼식을 치르지 못한 부부들을 위해 지금의 신신예식장을 개업했다.

고인은 무료 예식장을 운영해 온 공로를 인정받아 2019년 제8기 국민추천포상 국민훈장 석류장과 지난해 LG의인상을 받았다. 또 tvN 예능 방송 ‘유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해 전국적으로 고인의 선행이 알려졌다. 평생 가난한 이들에게 따뜻함을 전한 고인은 지난해 4월 뇌출혈로 쓰러졌다. 이후 고인은 마산의 한 요양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수많은 시민에게 추억을 선물한 신신예식장은 고인의 아들인 백남문(53)씨가 운영할 계획이다. 더 좋은 예식장을 이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 거액을 들여 리모델링도 진행했다. 백남문씨는 28일 통화에서 “오늘 아침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그동안 많은 분이 응원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며 “앞으로 예식장 운영을 맡아 아버지께서 행하신 선행을 이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고인이 하던 주례는 고인과 50년 인연이 있는 백태기씨가 이어가고 있다.

백낙삼 신신예식장 대표가 향년 93세로 별세한 가운데 지난달 28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마산의료원장례식장에서 조문객들이 조의를 표하고 있다./김태형 기자/
백낙삼 신신예식장 대표가 향년 93세로 별세한 가운데 지난달 28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마산의료원장례식장에서 조문객들이 조의를 표하고 있다./김태형 기자/

한편 28일 마산의료원장례식장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에는 고인을 추모하기 위한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빈소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근조기가 자리 잡았고, 영정 아래에는 무료 예식장을 운영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9년 받은 백 대표의 국민추천포상 훈장증과 훈장이 액자에 담겨 있었다.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해 1월 신신예식장을 방문했던 윤석열 대통령도 빈소에 조화를 보내 애도의 뜻을 표했다. 대통령의 조화와 함께 장례식장을 찾은 최형두 국회의원은 “고인은 어려운 시기 예식장을 무료로 운영하면서 많은 이들에게 선행을 베풀었다”고 기억했다. 이날 조문객들은 하나같이 고인의 영정 앞에서 발길을 떼지 못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큰딸이 3년 전 신신예식장에서 결혼했다는 성귀만(65)씨는 이날 장례식장을 찾아 “선생님이 인자한 모습으로 주례를 봐주셔서 딸과 사위가 손녀딸도 낳고 너무 잘살고 있다”며 “작년에는 딸이 손녀딸을 데리고 예식장을 방문했더니 선생님이 손녀딸을 안아주면서 같이 사진도 찍었다더라. 항상 무료로 예식장을 운영하는 게 보람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회고했다.

한편 발인은 30일 오전 창원시립상복공원에서 이뤄졌다.

박준혁·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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