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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이 만난 우리 시대의 청년예술인 (24) 화가 오희선

그림은 스승이자 회초리 삶의 에너지 담아 꿈꾸다

기사입력 : 2023-10-26 21:20:09

어릴 때 미켈란젤로 전기 읽고 꿈 키워
지역서 학창시절 보내며 서양화 전공
그림 외에도 설치·조각 등 다방면 관심
올 12번째 개인전서 서재 연출 등 시도
독특한 상상력 통해 관객 공감 이끌어


나에게 그림은 스승이고 꽃이며 회초리다.

카페에 앉아 있는 피카소에게 한 여인이 다가와 간곡히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말했다. 그 청에 못 이겨 피카소는 단 몇 분 만에 그녀의 초상을 그려주면서 40만 프랑을 요구했다. 여인은 깜짝 놀라며 이 짧은 시간에 그린 그림값이 왜 이리 비싸냐며 묻자 피카소는 “당신을 그리는 시간은 몇 분에 불과하지만, 당신을 그리기까지 40년의 시간이 걸렸다오”라고 대답했다.

오희선 화가가 작품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희선 화가가 작품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 일화는 예술창작의 절대값을 얘기를 할 때 자주 거론되는 얘기다. 피카소에게 그림은 생이며 추구해 온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80여 년 미술 인생을 산 피카소는 회화·조각·소묘·도자기·시 등의 무수한 작품으로 20세기 현대미술 전반에 걸쳐 거대한 세계를 구축했다.

우리 시대의 청년예술인 오희선씨는 젊은 화가지만 피카소의 삶과 미술 세계를 닮고 싶어 한다. 방금 그은 일획(一劃)이나 하나의 점에 대해서도 여러 번 회의하고 부정하면서 다음 작업에 임하는 자세는, 힘들지만 결코 회피할 수 없는 숙명임을 잘 알고 있다. 회화뿐만 아니고 설치, 조각 등 다방면에 걸쳐 자신의 세계를 펼쳐 보이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 눈빛이 좋다. 비록 고되지만, 험난한 고개를 넘어가는 역경의 과정을 즐기고 싶어 한다.

그러므로 그녀에게 그림은 스승이고 꽃이며 회초리이기도 하다. 언제나 아틀리에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앉기 전에 깊은 호흡을 한다. 그 심호흡은 붓을 잡기 전 영혼에 자양분을 더하는 어떤 종교적 행위와 같은 것이다. 꽃을 피우기 전에 스승의 말씀을 새기는 시간을 갖고 싶단다. 그런 말을 듣노라면 나이에 비해 상당히 성숙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올해 창원 성산아트홀에서 열린 개인전 전시실 모습.
올해 창원 성산아트홀에서 열린 개인전 전시실 모습.

“청년다움”은 어떤 것인가?

젊은 화가 오희선은 벌써 열두 번째 개인전(제목: The Trees. 상상하다)을 열었다. 이 전시는 올해 7월 26일부터 31일까지 경남문화예술지원금을 받아 성산아트홀에서 선보였는데, 시적 상상력을 어떻게 색채와 형상으로 변주시켜 볼까 하는 테마로 구상되었다고 한다. 이번 전시는 관람자와 화가가 함께 참여하는 전시로 기획된 점이 특이하다. 텀블벅이라는 펀딩을 통해 후원금을 모금하여 2024년 그림 달력과 작품이 들어간 손수건을 제작하여 참여자와 관객에게 우편으로 아트상품을 보내주면서 공감대를 이끌어낸, 한 걸음 앞서간 전시로 보인다.

올해 7월 성산아트홀에서 열린 개인전 ‘the trees. 상상하다’ 대표작
올해 7월 성산아트홀에서 열린 개인전 ‘the trees. 상상하다’ 대표작

우선 전시실 전경에 드로잉 초안(에스키스)을 하나의 책으로 가정한 서재를 연출하여 나무와 관련된 다양한 상상화들을 배치한다. 이는 관객의 시선과 작가의 느낌을 하나의 연결고리로 묶어 상상을 현실의 것으로 치환하고자 하였는데, 이는 전시실을 하나의 스토리텔링 공간으로 변모시키려는 시도로 보였다. 그것이 완전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일반관객은 공감을 표했고, 전문가들은 신선하다는 평가를 해주었기에 나름의 결과는 얻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시도가 바로 청년예술인다운 점이 아닌가 느껴진다. 그 작은 차이가 작업에 임하는 즐거움을 준다. 이전에 한 11번의 전시와 달리 이런 작은 시도가 관람자를 그림 앞에 오래 머물게 한 요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오희선 작가는 마산여고와 국립창원대학교 미술학과 서양화 전공으로,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대학에 진학한 것은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 미켈란젤로의 전기를 읽은 것이 계기였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에 관한 사연이 너무 강렬하게 다가와 미술인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을 가졌다. 어릴 적 꿈은 늘 변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림 그리는 일이 가장 즐거웠기에 그 꿈은 더욱 굳어졌다고 한다.


지난해 시조와 그림 콜라보 연재 작업
새 장르로 창작 방향 확장 보람 느껴
경남미술대전 등 입상·공로상 받기도
아동 미술교육 ‘까미노스 연구소’ 설립
“영감 통해 꿈꾸게 하는 화가 되고파”


시조와 그림의 콜라보가 확장성을 가져왔다.

최근에 한 작업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을 묻자 “2022년도에 ‘우리문화신문’에 연재한 이달균 선생님과의 ‘말뚝이 가라사대’ 콜라보 작업입니다. 시조와 그림의 콜라보를 통해 그림의 외연을 확장하는 법을 배운 계기가 되었는데요. 혼자만의 작업이 아니라 다른 장르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또 다른 창작의 방향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이 보람이었습니다”라며 수줍게 말한다.

지난해 신문에 연재한 ‘말뚝이 가라사대’ 콜라보 작품들.
지난해 신문에 연재한 ‘말뚝이 가라사대’ 콜라보 작품들.
지난해 신문에 연재한 ‘말뚝이 가라사대’ 콜라보 작품들.
지난해 신문에 연재한 ‘말뚝이 가라사대’ 콜라보 작품들.

가장 큰 영향을 준 분으로는 작고한 백순공 화백이라 서슴없이 말했다. 대학 스승일뿐 아니라 1회부터 6회 개인전까지 작업의 방향을 함께 연구해 주셨고, ‘카오스모스’라는 주제를 찾게 해주신 분이란다.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그동안 몇 차례 수상한 것들로 작은 격려가 되었다고 한다. 성산미술대전과 경남미술대전, 한겨레미술대전 등에 입상하면서 자신을 확인하였고, 2011년엔 DICACO 국제 만화영상공모전 입상, 2022년엔 진주공군교육사령부전시 공로상을 받는 등 에너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어떤 화가가 되고 싶으냐는 물음엔 “항상 새로운 영감이 살아 있는 화가, 유명한 미술관 수장고에 그림이 보관되는 화가, 타인에게 새로운 꿈을 꾸게 하는 화가를 꿈꾸기도 합니다”라고 말한다. 한 생명은 또 다른 생명을 낳는다. 나의 그림이 나를 벗어난 누구에게 또 다른 그림을 낳게 한다면 재능을 빛내기 위한 노력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오희선 작가는 새로운 생각을 실천 중이다. ‘까미노스(caminos) 연구소’를 설립하여 아동미술 관련 전시를 지속하는 것이다. 까미노스는 스페인어로 ‘길’이란 뜻으로 미술교육 방향을 올바르게 제시하기 위해 설립했다고 한다. 미래교육은 창조형 인적자본이 중요한데 그 핵심과목이 바로 미술이란 생각에서 출범시켰단다.

자신의 선택은 분명하지만, 아직 “무엇을 어떻게?”라는 명제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그 시간을 향한 체험과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상상의 한계를 벗어나는 작업을 위해 한시도 게을리 산 적은 없다. 그림도 생업도 중요하다. 현대미술의 다양성 속에서 그리기를 지속하는 자신을 보면 창작은 생을 위한 에너지이며 과제임을 새삼 깨닫는다. 그래서 배움을 지속하는 중이다. 젊은 화가 오희선의 앞날을 기대해 본다.

이달균 시인
이달균 시인

이달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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