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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진실규명된 과거사 재심 항고

끝나지 않는 재판… 법정 떠도는 영혼들 언제 안식처 찾을까

기사입력 : 2024-01-21 20:05:55

경남 민간인 학살, 재심서 26명 무죄
진화위 규명 후 재심 신청 3건 모두
항고 등으로 최대 7년 판결 늦춰져
유족회 “불필요한 절차로 억울함 커”
재심 즉시항고 개선·법 명문화 움직임


6·25전쟁 전후 이뤄진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은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저지른 중대한 불법행위다. 이에 국가는 2005년부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를 발족해 억울한 죽음임을 진실규명하며 과거의 잘못을 사과했다. 진실규명 이후 유족들은 배·보상을 위해 국가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거나, 희생자에게 기록된 죄를 없애기 위한 재심 형사소송을 진행한다. 하지만 재심 소송의 경우, 이미 죄가 없음이 진실규명 과정에서 밝혀졌지만 다양한 이유로 항고·재항고가 돼 판결이 미뤄지고 있다.

지난 2022년 10월 8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 문화광장에서 열린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72주기 제6회 경남 합동추모제' 모습./경남신문DB/
지난 2022년 10월 8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 문화광장에서 열린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72주기 제6회 경남 합동추모제' 모습./경남신문DB/

◇경남 항고·재항고 속 26명 무죄= 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희생자 창원유족회에 따르면, 경남에서는 2020년 2월 첫 재심 판결부터 3차례에 걸쳐 총 26명의 희생자가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들 재심 재판의 공통점은 검찰로부터 항고와 재항고를 받고 대법원에서 ‘재심개시 결정’이 내려진 후 재판이 시작돼 판결이 뒤늦게 이뤄졌다는 점이다.

경남에서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에 대한 첫 재심 재판은 지난 2020년 2월 14일 있었다. 당시 노상도 씨 등 희생자 6명은 창원지법 마산지원 형사합의부로부터 무죄를 선고받았다. 2013년 재심을 신청한지 7년만의 일이다. 2020년 11월 20일 송기현 씨 등 희생자 15명이 재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또한 2013~2014년 청구했던 재판이다. 이들 중 4명은 항고·재항고 절차를 밟아야만 했다. 이어 지난 1월 17일 정성화 씨 등 희생자 5명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들은 2021년 재심 신청을 했고, 항고·재항고를 거쳐 3년만에 무죄를 인정받았다.

◇재심 재판 절차에 지쳐가는 유족들= 이러듯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의 재심 재판은 지난하다. 때문에 희생자의 죄를 소멸시키는 재심을 신청하지 않거나 포기하는 유족들도 상당수 있는 편이다.

노치수 창원유족회 회장은 “재판장에서 잘못된 판결로 죽게 된 영령들이 또다시 재판장에 오랫동안 머무는 걸 바라는 유족이 있겠느냐”며 “진실규명을 받고 더 이상은 고통받고 싶지 않기에 재심 신청을 하지 않는 경우가 꽤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노 회장은 “유족들은 연좌제로 수십년간 고통받았고, 진실화해위의 진실규명으로 다 해결된 듯 했지만 재심 재판이 이런저런 불필요한 절차들로 늦춰지며 수년간 더 고통 속에 살아 왔다”며 “약식재판으로 선고한 사형 판결을 잘못됐다고 바로잡는 과정이 왜 이렇게 복잡한지 의문이다”고 호소했다.

검찰은 항고·재항고 이후 열린 재판에서도 절차를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 2020년 12월 당시 7년 만에 열린 첫 법정에서 검사는 “자료 검토·조사에 시간이 필요하다”고 발언했다. 유족들은 탄식을, 변호인은 불만을, 재판부는 의문을 표했다. 당시 변호인을 맡은 임재인 변호사는 “오랜 시간 거쳐오며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을 다해왔다”며 “불법 체포·감금이라는 판단이 명확히 드러난 상황에서 (검찰의 추가 조사 요청은) 불필요한 절차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시 류기인 부장판사도 “검찰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지금 와서 절차적으로 한번 더 기회를 갖는 게 의미 있는 증거조사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고 언급했다.

◇과거사 재심 ‘항고’ 필요할까= 재판의 항고·재항고 결정은 검찰의 고유 권한이면서도 재량이지만, 이미 국가기관이 진실규명한 과거사의 재심 재판까지도 즉시항고하는 것은 과하다는 의견은 계속 있어왔다.

논문 ‘재심 개시 결정에 대한 검사 즉시항고의 비판적 고찰(2020)’을 쓴 김도윤 변호사는 “형사소송법에 따라 검사는 재심에 제한 없이 즉시항고가 가능하다”며 “하지만 이러한 즉시항고는 헌법이 명문으로 보장하는 기본권인 신속한 재판을 저해하고 불필요한 사법자원 낭비를 발생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이어 “이미 재심 이유가 인정되는 상황의 재심이라면 이미 많은 피해를 입었을 피고인 또는 재심청구인에게 더 이상의 과도한 부담을 줘 재심 절차의 존재 의의에 반하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 2018년 재심에 대한 항고와 재항고 절차를 신속히 진행해 달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피해자 명예회복 과정을 진실규명에 이어 법적 구제방안까지 일괄 진행되도록 명문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지속적으로 나온다. 하지만 관련 법안은 과도한 예산 등을 이유로 국회에 계류 중이다.

김용락 기자 rock@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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