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일등 신붓감’ 직업 탈출한 여성 연대기

[책] 직업을 때려치운 여자들

기사입력 : 2024-02-21 08:01:44

여자라 선택했던 직업, 여자라 그만둔 32명
‘여자가 하기 좋은 일’ 사회적 통념에 일침
“다양한 여성의 꿈, 직업 몇개로 좁히면 안돼”

‘여자가 하기 좋은 직업’을 물었을 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이 떠오르는 필자는 K-도터(Daughter)임에 틀림없다. 그리하여 떠오른 직업은 교사와 간호사. 행운인지 필자 주변에는 직업 안정성이라든지 성별 역할을 강요하는 사람이 없어서 제멋대로 진로를 택할 수 있었지만, 정작 결혼할 나이가 되었을 때 ‘기자는 시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직업은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했던 걸 보면 ‘여자가 하기 좋은 직업’이라는 것은 한국 여성 대부분에 씌워진 사회적 강박일 것이다.


이것을 1990년생인 필자 개인이나 한 세대만의 문제라고 볼 수 없는 것은 ‘이대 학생처가 조사한 올봄 졸업생들의 졸업 후 희망을 보면 (중략) 바라는 직장은 교사 지망이 32.4%로 으뜸…’이란 내용이 실린 1965년 조선일보 기사, ‘젊은이들의 철밥통 선호는 대학 진학에서부터 나타난다. 연세대·고려대와 서울교대·경인교대에 중복합격한 여학생의 경우 서너명 가운데 하나를 뺀 나머지는 교대를 선택한다고 한다’던 2006년 서울신문 칼럼만 봐도 명확해진다.

이슬기·서현주의 책 ‘직업을 때려치운 여자들’은 여자라서 선택했던 그 직업들을, 여자라서 때려치워야 했던 이들의 이야기다. 늘상 일등 신붓감으로 랭크되는 공립 교사를, 즉 철밥통 공무원을 그만두게 된 서현주와 9년을 서울신문 기자로 있던 이슬기가 함께 담은 ‘또다른 서현주’에 대한 책이다. 그들은 궁금했다. ‘여자 하기 좋은 직업’이 정말 여자들에게 하기 좋은 직업이었는지. 그래서 2년간 32명에게 묻고 들은 그들의 연대기.

애초에 그들이 그 직업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 전직 보육교사 수정의 “결정을 당한 것”이라는 답변보다 적확한 것을 찾긴 힘들다. 규아는 ‘취업이 보장된다는 이유로 어른들이 강하게 밀어붙’였고 누군가는 ‘등록금도 싸고 직업이 보장’되어서 지레 부모님 눈치를 보곤 직업을 선택했다.

현주 말로 이들 직업은 ‘가성비 넘치는’ 선택으로 꼽혀왔다. 교사는 안정성과 공무원, 연금이라는 장점이 따라붙고, 간호사 역시 별다른 스펙을 찾을 필요 없이 취업하고, 사정상 쉬더라도 재취업이 용이하다는 안정성이 보장된다고 여겨졌다. 같은 이유에서 ‘여자가 하기 좋은 직업’의 다른 말은 ‘시집가기 좋은 직업’으로 풀이되곤 하는데 ‘돈은 적당히 벌면서 육아 살림 다 할 수 있는 부려먹기 좋은 직업’이라는 비아냥이 들려온다. 그래서 ‘여자가 하기 좋은 직업’이라는 통념은 정말 그 일이 좋아서 하는 이들에겐 모욕이 된다. 현역 초등교사 지은은 “일등 신붓감이라는 말 자체에 여성 생애가 결혼·출산·육아 등으로 정해져 있다는 생각을 내포하고 있어 소름끼친다”고, 전직 초등교사 주영은 “직업인으로서 내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었다고 분노한다.

공저자 둘은 교사, 방송작가, 간호사 등 여자 하기 좋은 직업, 또는 여초집단에서는 특히 ‘엄마’의 역할도 강요 받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돌봄을 맡는다는 이야기다. 학교만 봐도 여성의 몫이라 용변 뒤처리, 급식지도 등 보살핌이 필요한 초등학교 저학년 담임엔 젊은 여교사들이 배정되기 일쑤다.

책의 시작이 되었던 현주 작가의 사정에서 이 책의 가치는 명료해진다. ‘좋은 직업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합당한 가치를 평가받는 직업이다. 밥벌이는 모두 힘들고 직업엔 귀천도 없지만 평가 절하되는 직업은 좋은 직업이 아니’기에 ‘합리적 이유 없이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직업이 있다면 바뀌어야’ 한다.

현주 작가에 더없이 공감했던 슬기 작가 역시 노파심에 말을 얹는다. “여기서 여초 직업의 대명사로 언급되는 교사, 간호사, 승무원, 방송작가를 폄하할 생각이 전혀 없다. 이들 모두가 직업을 사회적 압박에 피동적으로 택했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단 여성이 가진 각양각색의 꿈이 몇 안되는 직업들로 좁혀져야 했는지, 그것은 정말 여성에게 좋은 직업이었는지는 따져봐야 했다.”

‘여자가 하기 좋은 직업’이 따로 있다고 믿는, 현 시대를 사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이 지침이 되기를.

저자 이슬기·서현주, 출판 동아시아, 267쪽, 가격 1만7000원

김현미 기자 hmm@knnews.co.kr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김현미 기자의 다른 기사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