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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다문화 시대의 ‘우리’- 박양호(마산대 글로벌한국어문화과 학과장)

기사입력 : 2024-03-04 19:19:37

대학교에서 외국인 유학생을 매일 만나고 있는 필자는, 직업의 영향인지 일상생활 중에 외국인이 눈에 띄면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한국어는 얼마나 할 수 있는지, 내가 가르치는 학생과 같은 국적은 아닌지 등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곤란을 겪는 것처럼 보이면 더 눈길이 간다.

몇 년 전의 일이다. 주말에 장을 보러 대형마트를 방문했다가 현금이 필요한 일이 있었다. 마트 내 ATM 기기에서 현금을 찾고 가려는데 옆 기기에 서 있던 외국인 남성이 도움을 청했다. 돈을 보내야 한다고 말하는 그의 손에는 계좌번호가 적힌 종이가 있었다. “여기로 돈을 보낼 거예요?” 일단 확인 후 이체 방법을 알려주고 감사 인사를 들으며 돌아섰었다.

외국인 주민 수의 증가로 필자가 거주하는 창원 지역에서도 어디를 가든 외국인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국제결혼, 유학, 취업 등 여러 이유로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여기가 한국 맞아?’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외국어 간판이 많은 동네도 생겼다. 캠퍼스에서도 외국인 학생을 더 자주 마주치게 되었다.

필자가 가르치는 외국인 유학생들은 대부분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중에서도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이 제일 많다. 한국어를 비교적 잘하는 학생은 손님 응대를, 서툰 학생은 주방에서 설거지나 요리를 담당한다.

작년에 한 학생이 내게 고민을 털어 놓았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되어서 곧 월급을 받을 텐데, 사장님의 계산법이 이상하다고 했다. 무슨 얘기인지 들어보니 예를 들어 학생이 5시간을 일하면 사장님은 4시간 30분만 일한 것으로 계산하는데, 화장실에 가거나 일하지 않고 쉰 시간은 빼야 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아마 제가 외국인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한국어를 꽤 잘하고, 한국에서 생활한 지도 2년이 넘은 학생이니 사장님의 얘기가 부당하다는 걸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럼에도 한마디 따지지도 못하고 체념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쓰렸다. “한국인 이모는 하루 일하고 그만뒀어요.” 가게에 한국인 직원도 있냐는 물음에 학생이 답했다. 그러니까 그 ‘사장님’은 국적과는 관계 없이 자신만의 계산법으로 월급을 주려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자신이 외국인이라서 그런 것 같다는 학생의 말은 일단 틀린 듯했다. 그래서 안심이 되는 한편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학생이 그동안 부당한 상황을 직간접적으로 여러 번 겪었던 걸까. 그래서 자신이 외국인이라는 점이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 건 아닐까.

어디에나 친절한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한국말이 서툰 외국인을 얕잡아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따뜻하게 배려하는 사람도 있다. 서로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만큼 오해가 생길 가능성이 크고, 문화 차이로 인해 의도치 않게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도 있다. 게다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어린 유학생이라면, 한국문화뿐 아니라 대인관계나 사회생활 자체에 미숙해서 실수를 범할 수도 있다.

요컨대 모든 문제가 그렇듯 자세한 사정을 알지 못한 채 어느 한쪽만 탓할 수는 없다. 앞의 사례에서도 필자는 학생의 이야기만 들었으니 그것이 100% 사실이라고, 학생이 좋지 않은 사장님을 만났다고 단정하는 건 위험한 일이다. 그래도 한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앞으로 더 늘어날 우리 주변의 외국인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지, 어떤 태도로 대하는 것이 좋을지 말이다.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고들 말하는데, 우리의 이웃에 외국인도 포함해서 생각하고 있었던가. 은연중에 그들을 이방인으로 여기고 ‘우리’에서 배제하고 있지는 않았던가. 글을 쓰면서 스스로를 먼저 돌아보게 된다.

박양호(마산대 글로벌한국어문화과 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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