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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개념과 경험, 그리고 ABS의 도입- 조정우(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기사입력 : 2024-04-16 19:30:56

올해부터 한국 프로야구 리그에 자동투구 판정시스템(Automatic Ball-Strike System)이 도입되었다. 볼·스트라이크 여부를 전적으로 전자장치로 판정하는 것으로, 줄여서 ABS라 부르고 있다.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한 이후 심판의 스트라이크 판정은 끊임없이 논란이 되었다. 영상기술의 발달로 공의 궤적을 느린 화면으로 반복해서 볼 수 있게 되면서 잘못된 판정에 대한 팬들의 원망과 비난은 갈수록 커져가고 있었다. 더 이상 ‘오심도 시합의 일부’라는 말은 팬들에게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최근 스포츠계에서는 발달된 영상기술을 역이용하여 적극적으로 오심을 보정하고 있다. ‘비디오 보조 심판 Video Assistant Referees’, 줄여서 VAR이라 하는 영상판독 시스템을 도입하여 심판들도 과학기술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도입 초기의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주요 스포츠 종목에서 이제 VAR은 선수도 팬들에게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한국야구에서 새로 도입한 ABS는 기존의 VAR과는 성격이 다르다. VAR은 정해져 있는 룰을 심판이 올바로 판정했는지를 영상으로 확인하는 것이라면, ABS는 장치 그 자체가 판정을 하기 때문에 두 시스템은 차이가 크다. 게다가 ABS는 일반인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속도로 지나가는 공을 추적할 뿐만 아니라 그것도 그 공이 입체적으로 설정된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는지를 판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O·X만 확인하면 되는 야구의 아웃세이프나 축구의 오프사이드 VAR과는 차원이 다른 판정 시스템이다.

야구의 스트라이크 존은 눈으로 보이는 선이 아니라 철저하게 개념으로 구성된 입체이다. 상하로는 타자의 무릎 위에서부터 팔꿈치 아래까지, 좌우로는 홈플레이트의 양 끝선이라는 상하·좌우로 설정된 입체 공간을 공이 통과해야만 스트라이크이다. 야구의 주심은 이 개념화되어 있는 스트라이크 존에 대해 자신의 육안에 의지해서 한 게임당 약 300개의 판정을 내려야만 한다. 주심은 입체적 개념과 시각적 경험이라는 서로 다른 별개의 두 인식 능력을 순간적으로 결합시켜야 하는 대단히 어려운 난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트라이크 판정에서는 오류가 날 수밖에 없다. 이에 반해 ABS는 테크놀로지를 활용하여 개념으로 구성된 스트라이크 존을 그 자체로 그대로 적용하여 판정하는 장치이다. 인간의 시각과 경험은 일절 배제하고 야구 규칙에서 개념적으로 설정한 스트라이크 존을 실제로 공이 통과했는지만을 판단하는 것이다.

그런데 스트라이크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타자가 칠 수 있는 공’이라는 뜻이다. 타자는 이 ‘칠 수 있는 공’을 삼세 번 만에 쳐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스트라이크아웃이다. 사실 앞서 말한 스트라이크 존은 바로 타자가 칠 수 있는 영역을 대강 도해한 것이다. 즉 타자 무릎 위에서부터 팔꿈치 아래까지와 홈플레이트 좌우 끝이라는 것은 스트라이크의 본래 개념이 아니라 개념화의 방법으로 도출된 것으로 ‘대강 이 정도면 칠 수 있는 영역’을 표시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ABS가 이 개념화의 방법을 그대로 적용하여 판정한다면 ‘타자가 칠 수 있는 공’이라는 스트라이크의 본질적 개념과는 일정한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 ABS의 도입은 오심을 줄인 획기적인 조치라는 점에서 환영할 일이지만, 자칫 스트라이크의 본질에서 벗어나 기계적으로 판정해 버리면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를 일이다. 제구력이 좋은 투수들은 ABS에 적응이 완료되면 입체적 존은 통과했는데 타자가 칠 수 없는 코스를 개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동안 스트라이크 존의 입체적 개념과 시각적 경험의 차이를 활용한 선수들이 있었던 것처럼, ABS가 안고 있는 스트라이크의 본질적 개념과 개념화의 방법 간의 괴리를 활용하는 선수가 나오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기 때문이다.

조정우(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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