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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봄날의 화해- 서일옥

기사입력 : 2024-04-18 08:04:10

보도블록 한편에 수선집을 차린 사내

조금씩 상처 입은 신발들을 보살피는 곳

반 평도 못 되는 공간

연중무휴 성업 중이다


실밥이 터진 자리 밑창이 닳은 자리

남루를 잘라내고 희망에 살을 붙이면

그 작은 경영 속에도 한 뼘만큼의 꿈이 큰다


곁방 살러 들어온 민들레꽃이 피고

한쪽 다리 절룩이는 고양이도 쉬다 가는

‘고객이 온돌’이라는

문패 더욱 정겹다


☞얼마 전 구두 뒷굽을 수선하기 위해 동네의 구두수선집을 찾아갔는데 가게가 보이지 않았다. 근처 상점에 물어보니 구두수선집이 코로나 이후에 문을 닫았단다. 한참을 걸어 예전에 몇 번 갔던 구두수선집을 찾아가며 그 집은 꼭 있길 바랐다. 삶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으며 상처투성이가 된 구두. 수선하지 못한 구두의 밑창이 내 남루한 인생의 자국만 같아 어쩐지 불안했다.

다행히 ‘보도블록 한편에 있는, 반 평도 못 되는 공간’인 그 집은 성업 중이었다. 좁은 가게 안은 손을 봐야 할 구두로 가득 차 있었다. ‘실밥이 터진 자리 밑창이 닳은 자리’를 수선하는 사장님. 상처를 준 세상을 탓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수선받는 구두. 구두는 사장님의 손길을 따르고, 사장님은 구두를 정성껏 쓰다듬고 광을 낸다. 문득 한 평도 안 되는 수선집이 치유와 화해의 공간으로 빛난다. 우리 인생에서도 ‘남루를 잘라내고 희망에 살을 붙이면’ 다 풀지 못한 꿈이 한 뼘만큼 자랄 수 있을까.

먼지 쌓인 돌 틈에는 ‘곁방 살러 온 민들레꽃이 피고’ ‘한쪽 다리 절룩이는 고양이’가 나를 힐끔 보고는 햇살 비치는 자리를 차지한다. 고양이 머리 위에는 ‘고객이 온돌’이라는 문패가 정겹다. 뒷굽 간 구두를 신고 보도블록 위를 걷는데 온돌방 위인 듯 따스하다. 남루한 무게를 털어내고 희망의 살을 붙인 구두 뒷굽에 햇살 한 줄기가 따라왔나 보다.

―김문주(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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