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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스승- 백남오(문학평론가)

기사입력 : 2024-05-09 21:41:58

아카시아 향기가 천지에 진동하는 5월의 중심에는 스승의 날이 있다. 돌이켜보니 나의 교직생활도 40년째를 맞이한다. 지나온 삶 속에서 배움과 가르침의 역정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그동안 내가 배운 선생님은 백여 분 이상이나 되고, 가르친 학생은 수만 명도 더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선생님이 나의 스승이 될 수는 없고, 그 많은 학생들이 나의 제자가 될 수도 없는 일이다. 그것은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

사제의 관계는 각자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비록 처음에는 제도가 만들어 준 물리적인 만남으로 시작되지만 서로에게 각별한 존경심과 신뢰감이 쌓여질 때 맺어지게 된다. 제도적으로 배우고 가르쳤다고 스승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제자는 스승을 진심으로 존경해야 하며, 스승은 그 제자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다. 교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는 이유만으로 그 모두의 스승이 될 수는 없다. 이때 선택의 무게는 당연히 제자 쪽에 더 기울고 있음이다.

내가 스승으로 모시는 분은 두세 분 정도다. 초등학교 시절 그 척박한 환경에서 나를 중학교에 합격시킨 젊은 선생님과 중년의 문턱을 넘어서는 길목에서 문학의 길로 인도하신 스승님이다. 몸은 부모로부터 받았지만 지식과 정신은 스승으로부터 배웠다. 내가 이 정도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은 분명 선생님들의 가르침 덕분이다. 스승님은 모두 나의 운명의 방향을 돌려놓으실 만큼 큰 영향을 주신 분들이다. 그 은혜를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나의 제자는 얼마쯤이나 될까. 나를 스승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부끄럽지만 가끔 궁금할 때도 있다. 그래도 고등학교에서 33년, 대학에서 11년, 평생을 가르치는 일만 했는데, 나름대로는 간절한 마음으로 사랑을 쏟으며 수많은 작가도 길러냈는데, 하고 위안을 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도 나의 인품은 넉넉지 못하고, 감정을 조절하는 힘은 미숙하며, 학문과 문학의 깊이 또한 출중치 못하니 따르는 제자가 있기는 하겠는가 싶을 때가 많다. 그러나 어찌하랴. 선택의 무게는 제자 쪽으로 더 기울어 있으니 말이다.

백남오(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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