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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중산층- 이상권(서울본부장)

기사입력 : 2024-05-19 19:20:12

1970년대까지만도 초등학교엔 ‘가정환경조사’가 있었다. 부모 학력은 물론 시골에선 보기 힘든 자가용, 텔레비전 등의 보유 여부도 물었다. 모두가 궁핍한 탓에 끼니 거르지 않은 것만도 큰 위안으로 삼던 시절이었다. 부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가난하지도 않은 중간 정도의 소시민이라는 다분히 주관적 위안이 자리했다. 1980년대 국민 80%가 중산층으로 생각한다는 조사는 이런 인식의 한 단면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중위 소득의 75~200%’를 중산층의 객관적 기준으로 삼는다. 한데 얼마 전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경제적 상층에 속하는 우리나라 국민 85% 정도는 자신을 중·하층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월 700만원이 넘는 고소득 가구 중 상층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11.3%에 그쳤다. 중산층 비율이 증가하는 추세에 역주행하는 상대적 박탈감의 투영이다.

▼중산층 정의는 ‘경제적 수준이나 사회문화적 수준이 중간 정도 되면서 스스로 중산층 의식이 있는 사회집단’이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배금주의, 가족이기주의, 성공지상주의라는 무한 욕망의 사슬에 묶였다. 이는 자식 교육, 소비, 라이프스타일의 비교에서 비롯한다. 남들과 비교하는 순간, 우울과 불행이 파고든다. 미국 심리학자 에드 디너(Ed Diener)는 ‘한국인의 낮은 행복도는 지나친 물질 중심주의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20여 년 동안 어렵사리 노력해 이제 겨우 두어 칸 집에 두어 이랑 전답이 있고, 겨울 솜옷과 여름 베옷 각 두어 벌 있으나, 눕고서도 남는 땅이 있고, 신변에는 여벌 옷이 있으며, 주발 밑바닥에 남는 밥이 있소.” 조선 중종 때 판서를 지낸 김정국이 재산에 탐닉하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 일부다. 판서는 정2품으로 요즘 장관직이다. 한평생 돈의 노예로 전전긍긍하는 금전만능 시대에 반추할 만한 경책이다. 소유할수록 욕심은 커지고 행복은 멀어진다.

이상권(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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