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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부산 행정통합 선결 과제] “지역 간 위상 정립·권한 이양… 정부 주도 ‘로드맵’ 제시돼야”

기사입력 : 2024-06-16 20:11:07

위상 정립… 작은 지역 흡수 경계

추진 초기 ‘부산 빨대효과’ 우려
신청사·명칭 놓고 갈등 가능성


인사·재정 정부 권한 이양 필수

수도권 대응, 지역 실질적 힘 부여
권한·자원 지방 이전돼야 효과


정부, 통합 지침 내놔야

통합 비용 지원, 행·재정 특례 등
구체적인 ‘통합 모델’ 마련 필요


지지부진했던 경남·부산 행정통합 논의가 17일 박완수 경남지사와 박형준 부산시장의 만남으로 다시 급물살을 탈 조짐이다. 다만 행정통합이 단순히 두 지역을 합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비대해지는 수도권에 대응하는 새로운 다극체제를 만들고 지역균형발전을 꾀한다는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에 위상 정립과 권한 이양 등 선결 과제가 분명하다. 통합 모델이 부재한 상황에서 정부 주도의 지침이나 로드맵도 필요한 상황이다.

경남·부산 행정통합은 2022년 말 국내 첫 메가시티로 추진되던 부산·울산·경남 특별연합(초광역 특별지방자치단체)이 무산된 이후 박 지사가 먼저 제안하고, 박 시장이 이를 수용하면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2월 행정 통합 실무 추진위원회를 꾸린 이후 행정통합에 필요한 구체적인 사항을 협의하고 있었으나 지난해 말 발표된 지역 주민 대상 여론조사에서 통합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더 높게 나타나 사실상 논의가 중단된 상태다.

이후 총선 정국에서 국민의힘이 경기 김포시의 서울시 편입을 띄우면서 조경태(부산 사하을) 전 뉴시티 프로젝트 특위 위원장도 부산·경남 행정통합을 법률적으로 뒷받침을 하겠다고 강조했지만, 흐름이 달라진 것은 없다.

경남도청 전경./경남신문DB/
경남도청 전경./경남신문DB/

◇위상 정립… 작은 지역 흡수 경계= 여러 자치단체의 행정통합을 두고 반대의 목소리가 분명한 것은 지역 내에서도 더 작은 지역의 소외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에 대응해 지역 균형발전을 이루기 위해 행정통합 등이 추진되지만 통합하려는 지역 내 더 작은 지역에서는 더 커지는 지역 단위 내에서 더 작은 지역으로 전락해버리는 것에 대해 경계할 수밖에 없다.

경남·부산 행정통합도 추진 초기에는 부산으로 빨대효과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특히 행정 통합 이후 서부경남권 비중이 전체의 10% 수준에 그치기 때문에 오히려 경남지역 균형발전에 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이에 박완수 경남지사는 “경남도지사가 창원과 서부경남의 발전 정책을 함께 추진하듯 경남과 부산이 통합돼서 한 자치단체장이 되면 부산과 진주, 창원의 균형적 발전을 위한 정책을 펼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1월에는 김포를 서울에 편입하는 ‘메가서울’에 대응하는 ‘메가부산’이 부산지역 정치권에서 언급되며 김해·양산의 부산 편입 가능성이 언급되자 지역에서 반발이 일기도 했다.

이같은 우려는 행정통합에 속도를 내고 있는 대구경북 행정통합 사례에서도 드러난다. 경북도의회 도정질문에서 도의원들은 대구와 경북 행정통합 재논의 과정이 제대로 된 의견수렴 절차 없이 급하게 추진된 이유를 따져물었고, 일부 북부지역에서는 지역 균형발전 대책 마련이 요구됐다. 대구경북 행정통합이 속도를 내자 경북 예천에서는 도청과 신도시가 들어서며 겨우 지역발전의 기회가 생겼는데 대구경북 통합으로 다시 개발에서 소외되는 것이 아니냐며 통합에 대한 반대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결국 향후에는 신청사나 명칭 등을 놓고 지역 간 갈등을 빚을 가능성도 크다. 대구경북의 경우 통합 지자체의 명칭과 통합 청사 문제가 행정통합의 걸림돌이 될 것을 우려해 구체적인 명칭과 통합 청사 위치에 대해서는 언급을 자제하고 있으나 지역에서는 꾸준히 명칭, 청사 문제와 관련 주도권 등을 두고 견제와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권한 이양… 인사·재정 정부 권한 실질적 혜택으로 주어져야= 행정통합이 물리적인 덩치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수도권에 대응하는 힘을 가진 통합 지자체를 키우는 작업이기 때문에 지역에 실질적인 힘을 부여할 수있는 권한 이양이 필수다.

박완수 경남지사는 지난 5일 경남도의회 도정질문에서 “행정통합이 결국 수도권 일극체제에 대응하기 위한 것인데, 규모가 커지고 통합됐다고 대응이 되느냐. ‘지방정부’에 준하는 권한과 기능 이양을 전제로 한 통합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지사는 이날 최동원(김해3·국민의힘) 도의원이 “최근 대구-경북 행정통합이 급물살을 탔다”며 경남-부산 행정통합 가능성에 대해 묻자 이같이 답했다. 박 지사는 “오히려 (통합으로) 인구가 많아지면 행정 수요와 부담이 가중된다”면서 “수도권에 있는 권한, 자원들이 함께 지방으로 이전돼야 통합의 효과가 나타난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자치단체들을 묶기만 한다는 데 대해서 도민들이 (통합의 효과에 대해) 의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행정통합에 대한 실질적인 혜택 등도 사전에 고려돼야 한다. 지난 2010년 마산·창원·진해 통합으로 경남지역은 이미 선례를 경험했기에 행정통합에 대한 우려가 더 크다. 통합의 대가로 10년에 걸쳐 1466억원을 지원받았으나 10년새 인구나 경제지표는 전국 평균을 하회했고, 이후 특례시가 되고도 공공서비스 역량 효율성은 전국 평균에 못 미치는 등 통합에 대한 실질적인 혜택이 없었다는 평가다. 정부로부터 기초자치단체 이상의 권한을 획득하기 위한 준비가 없었던 것 등이 문제로 지적됐다. 앞서 언급된 작은 지역 소외에 대한 우려나 지역민의 반대 여론 등을 잠재우기 위해서도 행정통합이 실질적으로 어떤 혜택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로드맵 필요… 정부 주도의 행정 통합 지침 내놔야= 통합의 효과나 장단점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광역단체 행정통합으로 어떤 실익이 있는지 정부가 제대로 된 지침을 내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한 지방자치법에 따라 지자체의 설치·폐지·분할 또는 합병이 법률에 따르도록 규정돼 있어 통합 방식과 발전방안 등을 담은 법안과 정부의 구체적인 로드맵이 얼마나 구체화될 것인가 하는 점도 관건이다.

지난 4일 대구시와 경북도 두 단체장과 행정안전부 장관, 지방시대위원장이 참여하는 ‘4자 회동’에서 정부는 대구·경북 통합이 행정체계 개편의 선도 사례가 될 수 있도록 통합의 직·간접적 비용 지원 및 행·재정적 특례 부여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대구·경북 합의안을 적극 지원하기 위해 관계부처가 참여하는 범정부 통합 지원단을 구성해 정부 차원의 ‘대구·경북 통합 지원 방안’을 구체화할 계획이라고 밝히면서 2026년 6월 지방선거에서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를 따로 선출하지 않고, 통합단체장 1명만 선출해 7월1일 통합 자치단체를 출범하고, 이를 위해 올해 안에 특별법 제정을 목표로 관련 절차를 이행하기로 했다.

정부 역할이 분명한 만큼 정부 주도의 통합 모델이나 지침 등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제시될지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 지난해 5월 열린 부산·경남 2차 행정통합 토론회에서도 통합모델을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추진하는 행정통합에 대해 성급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박충훈 부산연구원 연구위원은 “부산·경남 행정통합의 타당성을 이야기하려면 수행사무, 계층구조, 재정체계 등 핵심 사항에 관한 통합모델이 제시돼야 한다”며 “일정 수준의 준비된 통합 모델이 마련된 후 통합의 장단점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지혜 기자 jh@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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