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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 국가관리체계 수립해야”

진주 ‘묻지마 방화·살인’ 유사 범죄 막으려면

전문가들 “개인문제 아닌 사회문제”

환자 등록·관리 관련 법 개정 필요

기사입력 : 2019-04-18 22:00:00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자신의 집에 불을 낸 뒤 흉기를 휘둘러 5명을 숨지게 한 피의자가 과거 주변인들과 갈등으로 수차례 경찰에 신고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조현병이 사전에 인지돼 제대로 관리됐더라면 참사를 피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범죄 피해가 개인을 넘어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는 만큼 정신질환자를 대상으로 한 정신건강증진체계 손질과 함께 사회적 안전망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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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방화·살인 사건이 발생한 진주시 아파트에서 경찰 과학수사대 대원들이 현장감식을 한 뒤 현장서 나오고 있다./성승건 기자/

◆범죄 우려 정신질환자 관리 사각= 18일 경찰의 현재까지 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안인득(42)의 범죄는 피해망상 정신질환에 따른 범행으로 보여진다. 이번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가족 없이 홀로 살았던 안이 겉으로는 일반인처럼 보일 수 있으나 장시간 대화 시 일반적인 대화가 불가능한 상태였으며, 과거 정신질환 치료를 중단해 증상이 악화된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안이 지속된 피해망상으로 인해 분노감이 극대화된 상태에서 범행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과 보건당국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015년부터 1년 6개월 동안 조현병 치료를 받았지만, 그 이후 입원 치료나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의 관리를 받은 적은 없는 것으로 나타나 관리 사각지대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정신건강증진체계 손봐야= 전문가들은 안의 범죄를 정신질환자 전체의 문제로 확대 해석하는 것에는 선을 긋고 있다. 그러나 심각한 후유증을 낳는 사회병리현상인 점에서 정신질환이 심해져 실제 범죄로 이어지기 전에 제대로 된 치료와 관리가 될 수 있도록 정신건강증진체계를 체계화하고,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신건강의학 전문의 이영렬(58) 국립부곡병원장은 18일 “이 사건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개인의 범죄이지만 흉기를 휘둘러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숨진 ‘사회적 테러’라는 측면에서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할 범위를 훌쩍 넘어선 문제”라며 “범죄로까지 이어진 데에는 사회적인 안전망이 느슨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상기했을 때 이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국가와 지역사회가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도내 한 종합병원의 또 다른 정신건강의학 전문의도 “정신질환자의 경우 자신이 처한 환경변화에 따라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 퇴원 후 지역정신건강증진센터에 등록해 관리를 받도록 하고 있지만 강제성이 없어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며 “국가적인 차원에서 세밀한 관리 없이는 우발적 사고를 예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진혁 경남대 경찰학과 교수는 “관리가 되지 않아 (범죄 위험성이 있는) 정신질환자의 경우 가족과 주변인은 물론이고 스스로를 위험에 빠트릴 수도 있다”며 “인권과도 연계돼 있는 문제지만 당사자와 주변인, 그리고 사회 전체의 안전을 생각해 좀 더 강제성을 갖고 행정당국이 개입해 퇴원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병력을 관리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정신건강토털캐어서비스 확대해야= 일선에서 정신질환자 돌봄 서비스를 담당하는 사회복지사들은 좀 더 구체적으로 ‘정신건강토털캐어서비스’를 손볼 필요가 있다고 보고있다. 이 서비스는 정신장애인과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소견·진단서 발급이 가능한 사람을 대상으로 위기상황 개입, 증상관리(약물관리), 일상생활 지원, 사회적응 및 취업지원 등을 지원해주는 서비스다. 예산은 국·도비 90%, 자부담 10%로 운영된다.

도내에서 정신장애인을 돌보고 있는 8년차 사회복지사 이모씨는 “정부 사업에 대한 수혜자들의 만족도가 상당히 크지만 혜택 기간이 최장 3년에 불과해 실제로 개선 효과를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며 “정신질환은 치료를 중단하면 재발할 우려가 상당히 높아 3년으로 제한하기 보다는 환자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운영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돌봄 대상 중 정신장애 3급과 조현병을 진단 받은 20대 환자가 있었는데 사람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할 정도로 대인 기피증이 심했고 소란을 피워 자주 경찰서에 가기도 했다“며 “돌봄 서비스를 받으면서 상태가 굉장히 호전됐지만 3년이라는 기간제한 때문에 돌봄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고 이후에는 사회복지사 개인적으로 도움을 줘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이씨는 해당 서비스의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아 신청하지 못하는 정신질환자도 많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경남지역에서 돌봄 서비스를 받은 사람은 460여명 수준이었다.

이에 대해 경남도 관계자는 “해당 서비스는 1인당 2회 연장 가능하고 최장 3년 동안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며 “특수한 경우 심의위원회를 열어 기간을 연장할 수 있지만 현재까지는 그런 경우가 없었다”고 밝혔다.

◆‘칸막이’ 복지전달체계 개선 필요= 정신질환자를 포함한 복지전달체계에서 행정의 효율성을 제고해야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번 사건 피의자가 기초생활수급자이면서 조현병 전력이 있는 등 이상징후가 있었는데도 막지 못한 데에는 유기적인 협력체계가 미흡했다는 지적에서다.

실제 경남도에 확인한 결과 정신건강토털캐어서비스를 제공하는 복지고용담당에서는 보건행정과 등 타부서에서 진행하는 다른 지원서비스의 현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고, 기초생활수급자를 관리하는 부서에서도 기초생활수급자 대상 여부 외 다른 사항은 인지하지 못하는 등 통합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도영진·박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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