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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작업실] (8) 유재현 조각가

소망 담은 한지 오리고 접어 ‘완전한 행복’ 전하는 공간

기사입력 : 2023-11-15 08:09:16

12년 전 지인 통해 저렴하게 빌린 공간
산과 강 인접해 자유로운 분위기서 작업
작품 제작하며 쌓인 스트레스 풀기 위해
작업실 한가운데 드럼 놓고 취미로 쳐
처음 만든 흉상·인물화도 한편에 보관

대학원 때 정체성 고민하다 고대사 공부
높이 나는 새 형상화한 솟대서 영감 얻어
한지로 구상과 비구상 넘나들며 작업
행복은 사람 이루는 뿌리이자 가지
앞으로도 작품 통해 행복 전하고 싶어

얇은 한지를 오리고 접어간다.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며 내면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들여다보는 일련의 작업은 수행과도 같다.

유재현(61) 작가가 그렇게 접어낸 한지는 새의 형상과 닮았다. 저마다의 색과 형태를 가진 새들 수천, 수만 마리가 하나의 형상을 그린다. 이것은 나와 타인, 물질과 정신, 자연과 인간의 각기 다른 것들의 조화(調和)다. 유 작가의 목표는 단순하면서 거창하다. 필연적으로 불안정하기에 가질 수 없는 완전한 행복을 조화를 통해 선사하는 것. 그는 고향인 밀양에서 행복을 접어내고 있다. 나지막한 산을 마주 본 그의 작업실에는 그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조화로움이 가득하다.

유재현 작가가 밀양시 상동면 작업실에서 얇은 한지를 오리고 있다.
유재현 작가가 밀양시 상동면 작업실에서 얇은 한지를 오리고 있다.
밀양시 상동면 유재현 작가의 작업실 한켠에 모여 있는 한지 조형에 쓰이는 재료./성승건 기자/
밀양시 상동면 유재현 작가의 작업실 한켠에 모여 있는 한지 조형에 쓰이는 재료./성승건 기자/

◇그곳에 작가의 추억과 행복이 있다

-작업실 앞으로는 옥교산이, 뒤로는 밀양강이 있어 위치가 참 좋다. 작업실 자랑을 해보자면.

△일단 예전 작업실보다 공간적으로 훨씬 크고 비교적 인적이 드물어 자유로운 기분이다. 거기다 보다시피 자연환경이 좋다. 전국에 있는 산은 다 가봤을 정도로 등산을 참 좋아하는데 산이 바로 앞에 있어 이틀에 한 번 등산을 하고 있다. 작업실은 2011년에 친구 동서를 통해 구하게 됐고 감사하게도 공짜나 다름없는 값으로 작업실을 빌리고 있는 중이다.

유재현 작가가 밀양시 상동면 작업실 한켠에서 드럼을 연주를 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유재현 작가가 밀양시 상동면 작업실 한켠에서 드럼을 연주를 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 특이하게 작업실 한가운데 드럼이 있다. 장식인가 취미인가.

△3년 전부터 스트레스 풀기 겸 취미로 드럼을 치고 있다. 많은 수의 종이를 접고 작품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언제나 내면을 바라보고 있어 ‘나는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아니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문득 스트레스가 쌓여 있음이 느껴지더라. 행복을 전하기 위해 작품을 만들고 있는데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어떡하나’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드럼을 치고 싶었고 마침 당시에 드럼을 알려줄 수 있는 지인도 있어 홧김에 구매했는데, 잘 산 것 같다.

유재현 作 ‘Blooming525’.
유재현 作 ‘Blooming525’.

-작업실에 흉상도 있고 회화 작품도 있다. 오랜 기간 한지로 조형 작업을 하고 있는데, 다른 방식으로 작업을 한 것인가?

△부끄럽지만 저 흉상은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들었던 인체 조각이다. 광화문 광장에 있는 이순신 조각상을 만든 것으로 유명한 김영원 교수님이 제 은사이신데, 그분 수업에서 제작하게 됐다. 학생 때 참 많은 작품을 만들었는데 마땅히 둘 장소가 없어 다 버렸고 저것 하나만 남았다. 처음 해본 인체 조각이라 의미가 깊기 때문에 누님 집에 가져다 놨다가 작업실이 생기면서 다시 가져왔다. 회화 작품도 내가 그린 것이다. 대학원에 진학하기 전에 10년간 미술학원을 운영했는데, 그 좁은 교실 환경에서 할 수 있는 작업이 회화였다. 저쪽의 아이는 처음 그린 인물화인데, 우리 아들의 첫돌 모습이다. 모두 의미가 있는 작품들이기에 작업실에 보일 수 있는 곳에 두고 있다.

유재현 작가가 밀양시 상동면 작업실에서 얇은 한지를 오리고 있다./성승건 기자/
유재현 작가가 밀양시 상동면 작업실에서 얇은 한지를 오리고 있다./성승건 기자/

-작업실에 가재도구도 많이 보이는데, 작업실에서 시간을 오래 보내는 편인지.

△사실 밖에 나갈 일이 없으면 언제나 작업실에 있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지긋하게 앉아서 해야 하는 작업이라서 구상을 끝내고 작품 하나를 만들면 한 달이 넘게 걸리는데, 집이 같은 밀양에 있지만 계속 작업실에 오게 된다. 조용한 환경이다 보니 명상하기도 참 좋다.

유재현 작가.
유재현 작가.

◇정체성을 찾는 길에서 마주한 한지 작업

-한지를 이용해 만든 이 조형 작품은 멀리서 보면 평면적이고 가까이서 보면 입체적이라서 오묘하다. 이런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게 된 지는 얼마나 됐나.

△늦깎이로 대학원에 진학하고 2차 학기부터 시작했으니 18년이 됐다. 원래는 일반적인 조각을 했는데 80~90년도에 화단에서 한국성에 대한 센세이션이 일어났는데 나 또한 한국성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대학생 때 생각이 나더라. 김원영 교수님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과제를 내줘서 나의 환경을 나열하고 그것을 보자니 ‘내가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 있었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고스란히 한국성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한국고대사 공부를 많이 했는데 그때 ‘한국의 원류는 샤머니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어떻게 표현하냐가 관건이었다. 그러다가 한 날 운명처럼 절에서 솟대를 보게 됐고 거기서 영감을 얻었다.

-작품을 구성하는 한지가 새의 형태고, 그 새가 긴장대와 같은 나무 꼬챙이에 끼워져 있으니, 솟대의 형태가 맞겠다. 새는 무슨 의미가 있나.

△새는 고대부터 신과 인간 사이를 연결하는 교량, 메신저의 역할을 해왔다. 사람은 끝없이 절대자에게 소원을 빌어왔다. 소통의 시도다. 그래서 나는 높이 나는 새를 형상화한 솟대를 세워 신과 통하고자 했다. 작품 속에 수천, 수만 마리의 새들이 우주를 향해 비상하고, 그 속에 꽃들이 만개하는 순간들을 표현한다. 조화와 질서 속에서 행복으로 귀결되는 모든 소망을 위해서다.

유재현 作 ‘the blooming sunflowers23721’
유재현 作 ‘the blooming sunflowers23721’

-이전에는 구체적인 형태가 없는 작품, 그러니까 비구상 위주였는데 최근에는 꽃으로 형태가 선명해졌다.

△그렇다. 오랜 시간 비구상으로 활동을 이어왔다. 그때도 꽃과 그를 둘러싼 기운을 표현하고자 했다. 꽃이라는 것은 봄을 대표한다. 풍요, 긍정적인 기운이 가장 왕성한 계절, 자연의 청년기다. 거기다 꽃의 만개는 사람의 에너지가 표출되는 형상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나만의 방식으로 표현했는데 1년 전 즈음에 문득 방식에 대한 고민이 들었다.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고 싶은데, 보는 사람이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머리를 싸매고 작품을 보며 고민한다면 행복을 전달하기 쉽지 않겠다 싶었다. 구상 작품을 하니 사람들이 더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즐거워하더라. 그렇기에 비구상과 구상을 넘나들며 작업을 이어가고자 한다.

-많은 감정과 의미 중에서도 행복을 전하고자 하는 이유가 있을까.

△‘작가로서 사람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한다. 사람의 모든 소망은 행복하기 위해 생겨난다. 그렇기에 행복이야말로 사람을 이루고 있는 뿌리이자 뻗어나가는 가지이다. 오랜 작가 생활 속에 나는 행복을 전달하면서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을 알았다. 행복을 선사하는 것으로서 나 또한 행복해지는 것, 가장 이상적인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작품을 통해 행복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글= 어태희 기자·사진= 성승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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