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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1020) 공근겸화(恭謹謙和)

- 공손하고 삼가고 겸허하고 온화하다

기사입력 : 2024-03-12 08:09:18
동방한학연구원장

도산서원(陶山書院) 선비문화수련원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 ‘가장 감명 깊은 과정’을 물으면, ‘종손(宗孫)과의 대화’라고 대답한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종손은 어린애가 오건, 어른이 오건 누가 와도 꿇어앉아서 대화를 하고 반드시 대문 밖에까지 따라 나가 전송하고 손님이 떠나야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 들어가신다.

선비문화수련원의 설립자가 바로 퇴계(退溪) 선생의 16대 종손 청하(靑霞) 이근필(李根必) 어른이다. 지난 3월 7일 오후 2시경에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났다. 1932년 생이니까, 금년 93세다.

족보에 실린 원래 이름은 돈환(惇煥), 원래 자(字)는 승욱(承旭)이었다. 권오봉(權五鳳) 교수가 자를 성유(聖幼), 호를 청하(靑霞)라고 지어 주었다.

어려서 집안에서 한학(漢學)을 공부하다가 해방 후 경북대학교(慶北大學校)를 졸업하고 인천 제물포고등학교에 재직하고 있었다.

1970년 12월 8일 도산서원 성역화사업 준공식에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참석하였다. 대통령이 윗대 종손 동우(東愚) 이동은(李東恩) 공에게 “아드님은 어디 있습니까?”라고 물었는데 “인천서 고등학교 교사로 있습니다.” “안 되지요. 아버지 곁에서 종손 교육을 받아야지요”라고 하고는 떠났다. 그 뒤 대통령이 조치를 하여 도산초등학교 등의 교장으로 재직하다 퇴직했다.

퇴계선생 종가는 전국 유가(儒家)의 표준이라고 할 수 있다. 곧 종가의 종가다. 모든 예법과 제도가 다른 종가의 모범이 된다. 그러니 한 마디 말, 한 가지 행동도 신중히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종손은 지극한 효자라서 부친이 살아 계실 때까지는 부친의 뜻을 정성을 다해 받들었기 때문에 어떤 일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종손이 되자 근 500년 동안 새벽 축시(丑時)에 지내던 퇴계선생 불천위(不遷位) 제사도 초저녁 제사로 바꾸고 내외분 합사(合祀)도 시행했다. 제수도 대폭 줄였다. “시대에 적응하지 않으면 존속하지 못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었다. 도산서원 사당에는 여성들의 출입을 금했는데 출입할 수 있도록 했다. 2019년 향사(享祀)에는 여성 초헌관(初獻官)도 초빙하였다. 축시에 모시던 향사도 낮 11시에 모시도록 했다.

세상을 교화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고안했는데 만년에는 ‘조복(造福 : 복을 만들자)’라는 글씨를 매일 200폭 이상 써서 널리 나누어주었다. 복은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는 언행에 따라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필자는 1987년부터 종손 어른을 모시며 지냈다. 엄숙함보다는 화락(和樂)함으로 사람을 교화(敎化)하는 힘이 컸다.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남을 배려하는 화합에 더 무게를 두었다.

가까이 모시던 어른의 특징을 표현하기는 정말 어렵다. 그래서 옛날부터 “지극한 정분은 글로 표현할 수 없다.[至情無文]”이라는 말이 있다. 굳이 이 어른의 언행의 특징을 표현하자면 “공손하고 삼가고 겸허하고 화락하셨다.[恭謹謙和]”라는 네 글자로 될까? 이 어른을 아는 다른 분들이 동의를 하실지?

* 恭 : 공손할 공. * 謹 : 삼갈 근.

* 謙 : 겸손할 겸. * 和 : 화합할 화.

허권수 동방한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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