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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내년 3월 초에는- 류위훈(시청자미디어재단 경남시청자미디어센터장)

기사입력 : 2024-03-24 19:18:57

벨을 누르니 테이블 앞에 선다. 빈 접시들을 캐리어에 담고 ‘완료’를 누르니 미끄러지듯 돌아서 간다. 뷔페식당 안을 휘젓고 다니는 5대의 로봇. 주인의 조작으로 음식을 나르는 건 종종 봤지만, 손님과 상호작용하는 로봇은 처음이었다.

순간 ‘또 하나의 일자리가 사라졌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술의 이기 앞에 심사가 뒤틀리다니, 나는 기술 낙관론자가 아니라 비관론자다.

“큰일 났습니다. 굶어 죽게 생겼습니다.” 작년 3월 초에 만난 디자인 전공 교수의 말이었다. 미드저니(Midjourney)라는 AI 이미지 프로그램을 처음 접하고 적잖이 흥분되어 있었다. 그리고 딱 1년 후.

“큰일 났다. 굶어 죽게 생겼다.” 올해 3월 초에 만난 홍보업계 대표가 영화 ‘One More Pumpkin’을 함께 보며 한숨처럼 내뱉었다. 이 영화는 권한슬 감독이 제1회 두바이국제 AI영화제에서 대상과 관객상을 받은 작품으로 100% 생성형 AI만으로 만들었으며, 제작기간은 단 5일. 길이 3분의 초단편이지만 실사 제작 시 배우 등 10여 명의 스태프와 3개월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참고로 ‘https://aifilmfest.ae/film/one-more-pumpkin’에서 볼 수 있다.

더 큰일도 있다. 현재 알려진 생성형 AI 영상툴이 약 20개인데, 최근 오픈에이아이(OpenAI)에서 ‘소라’(Sora)를 보탰기 때문이다. 명령어를 치면 최대 1분 분량까지 영상화시켜 주며, 기존 툴과는 격이 다르다.

올해 하반기엔 일반인들도 쓸 수 있는 버전으로 공개할 계획이다. 이제 영화, 광고 등을 제작할 때 배우도, 스태프도 필요 없는 세상이 온 것이다. 할리우드 배우들과 작가들이 작년 여름 4개월 동안 파업을 한 이유가 바로 생계였다.

21세기에는 미디어를 제대로 읽고 쓸 줄 알아야 한다며, 미디어 콘텐츠 제작 방법 등을 교육하고 있는 입장에서 참 난처하다.

AI 활용 영상제작법 교육도 마련하고 변화에 대응해 보지만 너무 빠른 속도감에 현기증이 난다. 내년 3월 초에는 또 누가 생계 걱정을 할까? 기술의 발전과 인간 사이의 긍정적 유대를 믿으며 일단 쫓아가보는 수밖에.

류위훈(시청자미디어재단 경남시청자미디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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