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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철폐 위해 거리 나섰다’ 떳떳이 밝힐 수 있게 만들 것”

[인터뷰] 최갑순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신임 이사장

항쟁 당시 경찰에 잡힌 1500여명 중 현재 500여명만이 참가 사실 밝혀

기사입력 : 2021-10-17 20:07:40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은 지난 2018년 8월 창립총회를 열고 공식 출범했다. 재단은 이후 3년간 부산·경남 민주화운동의 대부인 송기인 이사장을 중심으로 성공적인 첫발을 내디뎠다.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 지정을 비롯, 항쟁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개정도 이 기간 이뤄졌기 때문이다.

지난 16일 제42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일을 끝으로 재단 1기 이사진은 3년 임기를 마무리 짓고, 2기 이사진이 창원사무실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2기 이사장은 항쟁 참가자이자 경남여성회 창립회원인 최갑순(65) 전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회장이 맡았다. 지난 11일 경남신문 본사에서 그를 만나 재단 운영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최갑순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이사장이 1979년 10월의 마산항쟁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최갑순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이사장이 1979년 10월의 마산항쟁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지난 16일 42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일을 끝으로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1기 이사진은 3년 임기를 마무리짓고, 2기 이사진이 창원사무실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2기 이사장은 항쟁 참가자이자 경남여성회 창립회원인 최갑순(65) 전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회장이 맡았다. 지난 11일 경남신문 본사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항쟁 참가자들이 1979년 10월 유신철폐를 위해 거리에 나왔었다”고 자랑스럽게 밝힐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데 주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창원사무실에서 활동하는 재단 2기의 이사장을 맡게 됐다.

△재단 1기는 주로 부산에서 활동했지만, 재단 2기는 마산 창동에 소재한 창원사무실에서 운영하게 됐다. 1979년 10월 마산 항쟁에 참여했고 이후 이곳에서 꾸준히 민주화를 위해 활동한 점을 좋게 평가받아 이 자리를 맡게 된 것 같다. 앞으로 3년간 2기 이사진 21명과 함께 재단을 이끌어 부마항쟁 정신을 계승하고 재조명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

-42주년을 맞은 부마민주항쟁의 의미는?

△42년이 지난 지금 부마는 민주항쟁으로 당당히 역사적 평가를 받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고 생각한다. 부산·마산이라는 지역적 한계와 40년이란 시대적 한계를 넘어 세대 간 소통이 중요하다. 올해는 국민들에게 민주주의의 소중한 자산과 역사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청소년, 시민들이 함께할 수 있는 현재화된 부마를 이야기하겠다.

-3년의 임기 기간 이뤄낼 핵심 목표는 무엇인가?

△최종 목표는 모든 항쟁 참가자들이 “1979년 10월 유신철폐를 위해 거리에 나왔었다”고 자랑스럽게 밝힐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형성하는 일이다. 항쟁 당시 부산과 마산에서 경찰에 붙잡힌 사람 1500여명 중 현재 500여명만이 참가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 여전히 많은 시민들이 참가 사실을 숨기고 살고 있다. 지역적인 정서와 무언가 불이익이 될지도 모른다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진상규명 및 관련자 인정이 꾸준히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다. 부마항쟁 진상규명위원회 활동 기간은 지난 6월 만료됐다. 그동안의 진상규명은 기초적인 단계에 그친 수준이다. 우선 진상규명 기간이 연장돼야 한다. 규명위에서 체계적으로 정리를 진행하고, 이후 재단이 조사 권한을 받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필요가 있다.

-경남도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마민주항쟁은 시민의 것이다. 시민들 절대다수가 공감하며 주도한 항쟁이 수십년간 잊혀졌고 40여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시민들이 돌려받기 시작했다. 참가자들은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당시 모두가 손뼉 쳤던 위대한 항쟁이다. 재단은 시민들을 위한 부마민주항쟁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김용락 기자 rock@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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