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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작업실] (3) 박봉기 조각가

자연과 호흡 위해 숨 고르는 휴게소

기사입력 : 2023-06-13 21:09:45

야외서 작업하는 조각가
5년 전 꾸린 세 번째 작업실
드릴 등 도구·재료로 빼곡
커피 마시고 쉬어가는 공간


우포자연미술제 7년째 기획
자연 속 예술공간 확장 꿈꿔


박봉기(57·사진) 조각가는 자연에서 가장 편하다. 어릴 때부터 줄곧 강가와 산을 거닐던 삶 덕분이라 했다. 덕분에 그의 작품은 먼바다에서 떠밀려 온 고목이나, 벼락을 맞거나 해충을 먹은 버려진 목재, 유연한 대나무 등 자연물을 갖고 대지 위에 조형을 일군다. 물과 바람, 나무와 햇빛이 어우러지며 작품의 일부가 된다. 작품과 자연이 서로 호흡한다.

대다수 작품 제목이 ‘호흡’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생존과 직결된 호흡뿐 아니라 삶을 영위하며 나누는 가치들 모두가 ‘호흡’에서 나온다고 여긴다. ‘호흡을 맞추는 일’은 서로의 거리와 숨의 길이를 배려하며 어울리게 만드는 일, 자연과 삶의 이치를 호흡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박봉기 조각가가 창원시 의창구 사림동 한 주택가 반지하의 작업실 입구에 서 있다./김승권 기자/
박봉기 조각가가 창원시 의창구 사림동 한 주택가 반지하의 작업실 입구에 서 있다./김승권 기자/
박봉기 조각가./김승권 기자/
박봉기 조각가./김승권 기자/

박 작가의 작업실은 2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자연에 설치하는 야외 현장, 또 하나는 다음 작품을 위해 숨을 고르고 준비하는 공간이다. 설치 현장은 작품으로 선보여지니 이번에는 기항지와 같은 그의 창원 사림동 작업실을 찾았다. 5년여 전부터 써온 그의 3번째 작업실, 함께 작업실을 쓰는 김근재 조각가가 제주 현무암으로 만든 작은 ‘작업실’ 간판이 내걸린 곳이다. 7년간 카페 바리스타였던 그가 내려주는 핸드드립 커피를 마시며 찬찬히 둘러본다. 들어오는 문에서부터 대나무와 쇠 파이프들이 빼곡하게 쌓여 있어 철물점이나 자재점으로 착각할 만하다.

박봉기 조각가 작업실에 대나무등 작업에 필요한 재료들이 쌓여 있다./김승권 기자/
박봉기 조각가 작업실에 대나무등 작업에 필요한 재료들이 쌓여 있다./김승권 기자/

◇공사 현장 같은 작업실

-작업실이라기보다 건축 현장 같다.

△조각가들의 작업실이 좀 그렇다. 설치할 때 필요한 톱, 그라인더, 드릴, 용접모, 사다리 같은 도구, 장비들이 있고 이 앞은 전부 재료들이다. 허리에 공구 벨트를 두른 뒤 도구들과 재료를 꽂아놓고 사용한다. 최근 대나무 작업에는 철사 같은 0.8㎜ 결속선을 꼬아 이어 나갔기 때문에 선을 꼬아주는 일명 ‘뱅뱅이’, ‘하카’라 불리는 이 결속구를 자주 썼다.

박봉기 조각가가 작품 제작에 앞서 연필로 스케치한 드로잉을 살펴보고 있다./김승권 기자/
박봉기 조각가가 작품 제작에 앞서 연필로 스케치한 드로잉을 살펴보고 있다./김승권 기자/
박봉기 조각가가 창원시 의창구 사림동 주택가 반지하 작업실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다.
박봉기 조각가가 창원시 의창구 사림동 주택가 반지하 작업실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다.

-이 공간에 쌓여 있는 것들도 궁금하다.

△주로 작업 도구들과 예전 제 작품들이다. 정리가 안돼 보여도 저는 뭐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 (웃음) 저기 보이는 나무로 된 노는 1996년 개인전 때 만든 건데 나눠주는 걸 좋아해 34개 중에 2개 남았다. 산불에 불탄 나무를 가져와 일부를 깎아내고 나무의 휜 부분을 살려 노 모양으로 만들었다. 당시 예술에 대한 태도를 고민한 것이 녹아들어 있는데 작품 아이디어에 더해 기술과 노동, 의지까지 포함돼 만들어지는 작품이라면 의미를 전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도 육체를 쓰고, 정신을 가다듬으며 스스로를 끝까지 몰아가며 작업하는 스타일인데 노를 젓는 내 노동력만큼 작품과 해석이 나아갈 수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 저쪽 상자들은 3년 전에 폐업한 카페에서 남았던 컵과 같은 것들이다.

박봉기 조가가 작업실./김승권 기자/
박봉기 조가가 작업실./김승권 기자/

-카페를 그만두셨나.

△제 작품은 판매가 힘든 형태다. 아이 셋 있는 가장으로서 생계를 유지해야 했고, 좋아하는 커피를 팔면서 동네에 예술을 쉽게 즐기고 나누는 공간을 운영하면 좋겠다고 시작한 것이었는데 쉽지 않았다. 사파동에서 7년 동안 했는데 바쁘다 보니 작품에 몰입이 어려웠고 표정도 계속 어두워졌다. 3년 전에야 그만두고 작품에만 매진하고 있다. 최근 코로나 팬데믹 등으로 환경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대지 미술가들의 작품이 주목받고 있어 활발히 활동하고 있고, 스스로도 작품의 전달력이 좋아진 것을 느껴 보람되다.

프랑스 에페르네 지역 루와지앙브리에서 하는 예술축제 Vign' Art 에 출품한 샴페인잔 형상의 ‘호흡’./박봉기/
프랑스 에페르네 지역 루와지앙브리에서 하는 예술축제 Vign' Art 에 출품한 샴페인잔 형상의 ‘호흡’./박봉기/
프랑스 에페르네 루와지앙브리에서 열린 예술축제에 출품한 샴페인잔 형상의 ‘호흡’./박봉기/
프랑스 에페르네 루와지앙브리에서 열린 예술축제에 출품한 샴페인잔 형상의 ‘호흡’./박봉기/

◇박봉기의 휴게실

-최근에는 어떤 작업이 진행됐나.

△지난달에 프랑스 상파뉴, 알자스를 다녀왔다. 상파뉴 중에서도 에페르네라는 마을은 샴페인으로 유명한 곳인데 수령이 50년을 넘겨 베어버린 포도나무로 대지 위 4m 높이의 샴페인 잔을 만들었다. 억센 땅에서 자라 굴곡이 큰 포도나무는 사람과 인생을 떠올리게 했다. 샴페인 한 잔에는 오랜 기간 이 일에 종사해 온 사람들의 삶과 기술, 노력이 담겨있고, 토양, 물 등 포도가 자라는 대자연이 포함돼 있다는 의미를 전하고 싶었다. 프랑스로 출국하기에 앞서 청주 대청호 환경미술제에서 동네를 잃어버린 주민들의 슬픔을 연결해 품어주고 치유할 수 있는 하나의 물방울 작품을 출품하고 왔다. 7월에는 대만에 갈 예정이다.

박봉기 조각가의 작업용 장갑./김승권 기자/
박봉기 조각가의 작업용 장갑./김승권 기자/
박봉기 조각가의 작업용 장갑./김승권 기자/
박봉기 조각가의 작업용 장갑./김승권 기자/

-이 작업실은 어떤 공간인가?

△한마디로 숨 고르는 ‘휴게소’다. 작업현장이 정해지면 출장 가듯이 여기서 재료와 도구를 챙겨 현장에 재료를 갖다 놓고 제작해 작품을 완성한다. 그래서 이곳은 하다 남은 재료들과 도구를 보관하는 곳이자 커피도 한 잔 내려 마시고, 음악을 듣고 지인들과 담소도 나누는, 취하고 싶은 걸 충분히 취하는 곳이다. 이 공간에서 시간을 누리고 보내는 것이 꼭 필요하고, 제 역할을 분명히 하고 있다.

지난 2022년 상반기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열렸던 개인전 '두 번째 산책'에서 관람객들이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박봉기/
지난 2022년 상반기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열렸던 개인전 '두 번째 산책'에서 관람객들이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박봉기/
박봉기 작가가 전시 현장에서 작품을 설치하는 모습./박봉기/
박봉기 작가가 전시 현장에서 작품을 설치하는 모습./박봉기/

-작가만의 호흡하는 실내 공간이라 여겨진다. 지난해 경남도립미술관에서의 실내 전시도 인상깊었다.

△사실 실내 공간에서의 전시를 주저했다. 원래 작품을 하던 현장은 자연과 어우러지면서 서로 시너지를 만들어 내는데 실내에서는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든 거다. 실내에서는 벽과 조명으로 또 다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겠다 싶어 도전했고, 아무도 가보지 않은 깊은 숲을 홀로 숨죽여 만나는 때를 상상하며 작품을 만들었다. 평소에는 버려진 재료들로 자연에서 그대로 만들다 보니 작품을 직접 관람하러 오시기 불편한 부분이 있는데 미술관에서 전시하면서 많은 분을 만나고 관람객들의 반응도 직접 들을 수 있어 기뻤다. 내가 소중하게 느낀 것들을 함께 어울려 나누는 것, 이것이 본래 예술하려던 목적이라 ‘계속 앉아서 오랫동안 보고 싶다’거나 ‘어릴 때 추억이 생각난다’는 관객분들 말씀에 뿌듯했다.

박봉기 조각가./김승권 기자/
박봉기 조각가./김승권 기자/

◇자연에서 함께 호흡하기

-‘우포자연미술제’를 기획한다 들었다.

△7년째 ‘우포자연미술제’ 전시 감독을 맡고 있다. 창녕 우포에 여러 나라의 작가들을 초청해 3주간 주민들과 먹고 자며 새벽부터 밤까지 함께 우포 주변에서 구한 자연 소재로 작품을 만든다. 여건이 되지 않아 매년 하지 못하지만, 할 때마다 어르신들의 반응이 뜨겁다.

-모색하는 공간이 있다면.

△큰 마당이 있거나 산 안에 있는 작업실을 꿈꾸고 있다. 소음과 먼지를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게 만들어 볼 수 있고, 거점이 생긴다면 긴 시간을 들여 예술공간으로 확장해 사람들이 만끽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박봉기 조각가.
박봉기 조각가.

이슬기 기자 good@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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