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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평등상담실 폐지 위기… “직장 성차별 어디에 호소하나”

정부 지원 중단·관련예산 반토막 도내 유일 상담실 문 닫을 판

기사입력 : 2023-09-25 20:29:22

정부 지원 중단·관련예산 반토막
도내 유일 상담실 문 닫을 판
“여성 노동자 권리 침해” 반발
“고충 해결 마지막 보루였는데…”


직장 내 성희롱·성차별 피해 여성 노동자들에게 고충 상담을 하는 경남지역 ‘고용평등상담실’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

고용노동부가 최근 발표한 2024년 예산안에 따르면 고용평등상담실 예산 지원을 중단하고 관련 예산을 12억1500만원에서 5억5100만원으로 54.7% 삭감했다. 상담실이 제공하던 상담과 권리구제 서비스를 정부가 직접 운영할 방침이다. 경남의 경우 고용노동부 부산지방고용노동청에서 고용평등 상담이 이뤄진다. 경남지역에서 상담을 받기 위해서는 부산까지 가야 하는 것이다.

25일 오후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 경창상가 5층 (사)마산창원여성노동자회 내 고용평등상담실에서 고용평등상담원이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25일 오후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 경창상가 5층 (사)마산창원여성노동자회 내 고용평등상담실에서 고용평등상담원이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고용평등상담실은 고용노동부가 예산을 지원하는 민간 여성노동상담창구이다. 2000년 시작돼 현재 전국에서 19개가 운영되고 있다. 경남에는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에 한 곳이 운영 중으로, 지난해에만 △근로 조건 207건 △직장 내 성희롱 213건 △직장 내 괴롭힘 64건 등 총 530건의 사건을 진행해 지역 노동자들의 고충을 해결했다. 하지만 정부가 관련 예산 삭감과 동시에 민간보조사업이었던 해당 사업을 직접 수행키로 하면서 민간단체가 운영하는 고용평등상담실이 문을 닫을 위기에 놓이게 됐다.

고용평등상담실은 여성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정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박미영 마산창원여성노동자회 고용평등상담실장은 “지난 7월 부산고용노동청에서 고용평등상담실 관계자들과 지방관서 근로감독관, 고용노동부 사무관들과 함께 간담회를 했는데, 간담회에서는 고용평등상담실을 활성화하고, 권역별 지청과 연계하는 방향에 대해서 논의했다”며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고용평등상담실을 폐지한다는 게 너무 황당하다. 한마디 이야기도 없었고, 통보도 받지 못했다”고 분개했다.

그러면서 “현재 19개 고용평등상담실이 운영되고 있는데, 권역별 8곳에서 노동자들의 고충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의문이다”며 “특히 특수 고용노동자들은 노동법 안에서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데, 법의 테두리 밖에서 이들의 고충을 해결하는 게 고용평등상담실의 역할이었다. 정부의 이 같은 정책은 노동자들에게 재난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고용평등상담실 폐지가 가시화되면서 상담가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고용불안도 가중될 전망이다.

송인옥 고용평등상담실 상담가는 “아들을 혼자서 키우고 있는 생계부양자인데, 하루아침에 일자리가 없어진다고 하니 너무 당혹스럽다. 상담실이 없어진다는 사실도 고용부의 보도자료를 통해 알게 됐다”며 “고용평등상담실은 고용노동부 지청이나 여러 상담센터에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분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해결해 줄 수 있는 상담실을 없앤다는 정부의 방침이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전국고용평등상담실네트워크 등은 25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평등상담실은 다른 여러 상담실을 거쳐도 해결되지 않는 어려운 문제를 가진 여성 노동자가 마지막으로 찾는 곳이 되고 있다”며 “노동법이 적용되지 않는 특수고용노동자, 프리랜서, 플랫폼노동자 등은 어디를 가나 노동법 적용이 어렵다며 상담이 어려운 현실이지만 고용평등상담실은 어떻게 해서든 사건을 해결해 보려 애써 왔다”고 토로했다. 이날 간호조무사로 일하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 상담 지원을 받은 한 내담자는 “법 대응이 시작되면 회사는 노무사, 변호사를 써서 대응하는데 평범한 노동자는 법조문을 들이대면 위축되기 마련”이라면서 “전화 한 통으로 도움 요청이 가능한 곳이 상담실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고용노동부는 지난 22일 설명자료를 통해 “상담에서 권리구제까지 원스톱 지원을 위한 창구 단일화로 피해 권리구제 실효성을 제고하겠다”면서 “1차 상담 창구를 전화, 온라인, 방문 등 민원인 편의에 맞춰 진행할 예정이며 심층 상담 필요 시 전담 상담 인력이 출장 상담으로 밀착 지원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준혁·김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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