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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마산 학문당 권화현 대표

“전국서 가장 오래된 토종서점 타이틀 힘 닿는 날까지 지켜야죠”

기사입력 : 2023-11-15 20:59:55

부친 호 ‘문당’ 앞에 배울 ‘학’ 넣어
1955년 개업… 올해로 68년 역사
22살에 가업 이어받아 45년째 운영

‘옛 모습 그대로’인 마산의 명소
지난 2018년 문재인 대통령 방문
‘학문당 끝까지 지켜야 한다’ 당부도

“내 대까지는 문을 닫지 않겠지만
언젠가는 마무리해야 함에 고민
지역 문인 등 애착에 그나마 힘”


“옴마야. 이게 아직도 여기 있네. 진짜 신기하데이. 옛날에는 여기서 친구들 약속하면 무조건 여서 만났다 아이가.” “진짜네. 다른 데는 다 문 닫고 바뀌고 아무것도 없는데 학문당 여기는 아직까지 여기 그대로 있네. 옛날 생각 많이 난다. 함 드가보자.”

제23회 마산 국화축제 기간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 거리를 지나던 중 중년 여성으로 보이는 일행의 대화가 들려왔다.

어떻게 보면 놀라운 일도 아니다. 창동 거리에서 ‘학문당’이라고 하면 마산 출신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장소다. 한편으로는 마산을 상징하는 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 같은 인터넷 쇼핑몰, 온라인 서점 등이 활성화된 시대에 오프라인 서점, 그것도 소규모 지역 서점이 지금까지 버텨온 것도 기적이라 볼 수 있다. 마산의 상징으로 자리 잡아 그 자리에서 수십 년 동안 지켜온 서점, 바로 창동 학문당 서점이 있다.

권화현 학문당 대표가 서점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권화현 학문당 대표가 서점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지난 9일 권화현(67) 학문당 대표를 만났다. 첫인상은 동네 아저씨 같은 포근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지역, 아니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토종 서점이라는 타이틀이 그에게는 하나의 책임감, 자존심으로 느껴지는 듯 무언가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인터뷰 내내 느낄 수 있었다.

“왜 서점 이름이 ‘학문당’이냐 하면, 아버님의 호가 ‘문당’입니다. 옛날에는 전부 이름 대신 호를 불렀잖아요. 요즘은 친구 나이가 60살이 넘어도 이름을 부르고 하는데, 당시에는 다 호로 불렀거든요. 그래서 아버지 호인 ‘문당’ 앞에 배울 ‘학’자를 넣어서 ‘학문당’이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권화현 학문당 대표는 학문당의 이름의 유래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아버지는 산청군 출신으로 젊은 시절 마산 3·15 의거탑 옆에 이모부가 작은 솜 공장을 하면서, 아버지가 이곳에 내려오셔서 처음으로 취직을 한 데가 서점이었다”며 “그렇게 일을 하면서 진주까지 가서 서점에서 책을 받아오고 하는 그런 모습이 좋았다고 하더라”고 학문당의 탄생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권화현 학문당 대표./성승건 기자/
권화현 학문당 대표./성승건 기자/

권 대표는 학문당을 2대째 이어오고 있다. 올해로 45년째 학문당을 맡아오고 있는 그는 이 선택에 대해 후회는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권 대표는 “22세 때 아버지로부터 학문당을 이어받아 벌써 45년째 맡아오고 있다”며 “내가 57년 정유년생인데 군대 3년을 빼고는 마산을 떠나본 적이 없다”고 마산 토박이임을 강조했다.

학문당 간판을 건 때는 1955년이라고 한다. 권 대표는 “정확하게는 1955년 9월 18일 정도로 추정한다. 옛날 개업 사진 뒤에 날짜를 적어놨더라고, 아버지가 친필로 적어 놓은 것을 보니 1955년 9월 18일로 보인다”며 “올해로 개업한 지 68년이나 됐다. 당시 내 기억으로는 한 3~4평 정도로 가게가 흙바닥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참 까마득한 일이다”고 했다. 그는 또 “이후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1960년대쯤 확장해 건물을 3층으로 지었다. 당시 주변에는 모두 기와집, 양철집이었으니 좀 무리한 측면이 있었다”고 부연했다.

그는 마산시의 전성기에 대해서도 떠올렸다. “1980~1990년대가 마산의 전성기였다. 진짜 당시 마산수출자유지역, 한일합섬 등에서 여공들이 얼마나 많이 일을 했는지 모른다. 다 먹고사는 것을 해결하기 위한 그런 시절이기도 했다”며 “마산이 얼마나 대단했냐면 그 당시만 해도 그때 마산 시내, 창동 거리에 사람이 너무 많아가지고 사람들끼리 부딪힐 정도로 많아서 걸어 다니기가 힘들었다. 위에서 보면 창동 거리가 사람들 머리 때문에 새까맣게 보일 정도”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오랫동안 학문당에 있으면서 저마다의 사연을 털어놓는 손님들이 찾아, 때로는 그분들로부터 많은 위안과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권 대표는 “당시는 먹고살기가 힘든 시절이다 보니 책 도둑들이 그리 많았다. 훔치다 걸려서 맞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며 “어느 날 한 손님이 찾아와 미안하다면서 편지와 함께 돈 4만원 정도를 주고 가신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편지 내용을 보니까 옛날에 책을 훔쳐 간 적이 있는데 살아오면서 내내 마음에 걸려 용기를 내서 당시 시세를 생각해 4만원 정도를 넣어 주셨다. 또 학문당이 계속 잘 되었으면 한다는 내용을 적어 주셔서 마음 한편으로는 뭉클했다”고 말했다. 또 그는 “한때 아버지가 운영할 때는 어떤 사람이 찾아와 자기가 검사가 됐다며 학문당의 책을 훔쳐서 공부를 했다고 하면서 자기가 보상을 좀 해야 하겠다고 했는데 아버님이 잘됐으니까 다행이다고 하면서 서로 대화를 나누던 모습이 그렇게 기억에 남는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권 대표 사무실 벽에 붙어 있는 옛 학문당 사진들./성승건 기자/
권 대표 사무실 벽에 붙어 있는 옛 학문당 사진들./성승건 기자/

권화현 대표는 올해로 67세다. 자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학문당 서점에 대해서는 자식에게는 물려주기가 어려울 것 같다며 근심을 나타냈다.

“서점이 하루 이틀 간당간당하는데 누가 맡으려고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내 대에서 이제 끝을 낼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잘 마무리하느냐가 중요해서 고민이 많습니다.”

토종 서점으로서의 그리고 마산의 명소로서 자부심을 이어간다는 데 대해 대단한 애착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지난 2018년 12월 13일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한 날을 회상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학문당을 찾아 “마산, 창원은 이제 학문당 서점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고 당부한 것을 언급하면서 “문 대통령께서 ‘이선관 시 전집’과 허수경 작가의 산문집인 ‘그대는 할 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등을 구입했다. 총 6만여원어치를 직접 사가셨다”고 미소지었다. 그는 “그런데 그날 문재인 대통령님이 사주신 책 두 권이 매출의 전부였다”며 “하루 장사를 다 망쳤다”며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학문당을 이어받아 같은 자리에서 한결같이 지켜오고 있다는 것에 대한 뿌듯함과 함께 다양한 도서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있다”며 “이런 인연이 닿아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찾게 되는 기회로 찾아오기도 했다. 이 일을 계기로 힘을 얻었지만 이런 자신감도 갈수록 적어지고 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런 그는 마산에 대한 애착이 대단했다. 권 대표는 “학문당이 이제 시민들에게는 그래도 상징적인 곳이라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사람들이 요즘 많이 찾고 있는 것 같다”며 “한 사람은 ‘옛날 모습 그대로 있는 곳이 학문당밖에 없다’고 하고 또 다른 사람은 ‘50년도 지났는데 아직도 있네’라고 하는 말을 들을 때면 마음 한편에서는 뭔가 모를 여운이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내 힘닿는 날까지는 학문당은 문을 닫지 않고 이어가야 안 되겠나 싶다. 하지만 마무리를 해야 할 날이 언젠가는 오지 않겠냐”며 “마산에 있는 문인들이나 여러 관계자가 학문당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어떻게든 힘을 보태주겠다고 하고 있어 그나마 힘이 난다”고 강조했다.

한편으로는 시민들에 대한 바람도 전했다. 그는 무엇보다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젊은 사람들이 책을 좀 많이 읽어줬으면 좋겠다. 책 읽는 것만큼 좋은 교육이 없다. 아이들이 부모와 손잡고 와서 책을 찾고 하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은지 모른다. 물론 책을 사가면 더 좋고, 허허허~”라며 웃었다.

이민영 기자 mylee77@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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