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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氣 받기- 삼성·LG·효성·GS 창업주 이야기 5부] ⑨ 허완구의 지행

[5부] 내명자경 외단자의(內明者敬 外斷者義) GS그룹과 허씨 형제들

사재 100억 들여 진주여고 현대화… 허씨 집안 내림음식 책 출간도

기사입력 : 2023-12-14 08:08:41

허완구는 국가와 사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했다.

필자는 이 훈장보다 더 소중한 상이 허완구가 받은 1996년 진주시민이 준 진주시 문화상과 경상남도 교육청에서 준 제31회 경남 교육상이라 생각한다.

허완구의 지행에 시민이, 도민이 주는 상보다 더 큰 상이 어디 있을까. 진주시 문화상, 경남 교육상, 이름만 들어도 참 아름다운 상이다.

1925년 아버지 허만정이 설립한 진주여고
노후화로 파손되자 1996년 새로 지어 기증
1986년부터 지급한 장학금도 현재 진행 중
진주문화상·경남교육상·국민훈장 등 받아

진주여자고등학교 전경.
진주여자고등학교 전경.

# 허완구와 진주여자고등학교

허완구는 교육계에 많은 관심을 가진 경영인이었다.

아버지 효주 허만정이 1925년 설립한 진주여자고등학교가 오래돼 학교 환경이 좋지 않았다. 노후화되고 곳곳이 파손될 정도였다. 허완구 회장이 1996년 당시 100억원의 사재를 들여 학교 본관과 생활관, 체육관, 강당 등 각종 최신시설과 현대화 건물로 새롭게 지어 기증했다.1986년부터 시작한 장학금 지급은 현재도 진행 중이며 수혜자가 1000여명이 넘는다.

진주여자고등학교 내 세워진 허완구 기념비./이래호/
진주여자고등학교 내 세워진 허완구 기념비./이래호/
개교 당시 교명은 진주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였다.
개교 당시 교명은 진주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였다.

# 돌아보니 그립고, 그리워 가려고 하니 너무 먼 세월이 쌓였다

허완구 회장의 회고 말씀 중 일부이다. “서울에서 공부한 허정구, 허학구 형이 방학이 되면 언제쯤 고향에 내려온다는 연락을 받는다. 어머니는 객지에 나가 공부한다고 고생한 아들을 위해 고기나 여러 가지 음식을 준비했다. 형님이 고향 집에 도착하면 아버지는 아들에게 잠시 내방으로 오너라 하시며 먼저 들어가 기다리고 계신다. 정구, 학구 형님은 무엇을 말하는지 다 알고 있어 가지고 온 짐보따리 속에 공책 한 권씩을 가지고 아버지가 계시는 방으로 간다. 아버지가 보내준 돈에 대해 어떻게 사용했는지 구체적으로 보고하는 것이다. 서울에서 고향 승산리까지 20시간 넘게 달려와 이렇게 아버지에게 보고를 하는 것이 당시에는 무척 힘이 들고 짜증도 났지만 생각해 보니 이러한 교육환경이 오늘의 승산을 만든 동기가 되었다.”

허완구 회장은 2017년 2월 3일 작고했다. 이틀 뒤에는 형 허신구 회장도 동생 곁으로 갔다. 허만정의 아들 8형제 중 구(九)자 항렬 허정구, 허학구, 허준구, 허신구, 허완구 5형제는 이제 모두 고인이 되었다.

# 아내가 회고하는 허완구

허완구의 부인 김영자 여사는 2017년 설립된 승산나눔재단 이사장이다. 미국 유학 중 허완구를 만나 결혼했다. 와사등으로 유명한 시인 김광균의 딸이다.

김영자 이사장은 남편 허완구에 대해 “경남고 학보사에서 활동도 하였고 학창 시절 시를 써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문학을 좋아하고 문학을 사랑한 사람이다. 생활도 아주 소박하여 생전에 화려한 외식보다는 동네 칼국수집, 만두집, 냉면집, 해장국집 등을 자주 이용하였다”고 했다.

이렇게 소탈하고 소박한 것은 어려서부터 근검절약 정신의 교육을 철저히 실천한 선비 교육의 가풍에서 나온 것이라 보인다. 허씨 집은 지수면 승산리 최고의 부자였지만 손님이 먹다 남긴 음식도 함부로 버리지 않았다. 검소함을 알고 절약을 실천하는 가정이었다.

# 허완구의 자녀

허완구는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장남 허용수는 아버지가 설립한 승산그룹을 물려받아 경영하던 중 GS그룹으로 옮겨 GS에너지 대표이사로 근무하고 있다.

승산그룹의 빈자리는 딸 허인영이 경영을 하고 있다. 허씨 집안에서 여성경영인이 배출된 것은 많지 않다. 하지만 명문학교에서 공부하고 여러 기업에서 경영수업을 받았다. 지금의 구씨, 허씨 가문은 창업 1, 2세대에 비해 자녀 수도 많지 않아 앞으로 더 많은 여성 경영인이 배출될 것이라 생각한다.

집안에 전해오던 계절별 제철음식 재현
‘진주허씨 묵동댁 내림음식’ 주도적 편찬
진주지역 양반댁 음식문화 기록서로
재평가되고 정리돼 존재가치 인정받기를

묵동댁 내림음식은 허씨 집안에서 즐겨 먹었던 요리를 정리한 책이다. 음식을 통해 일제강점기 진주지방 양반, 선비가문 집안에서 즐겨 먹었던 식자재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진주허씨 묵동댁 내림음식/
묵동댁 내림음식은 허씨 집안에서 즐겨 먹었던 요리를 정리한 책이다. 음식을 통해 일제강점기 진주지방 양반, 선비가문 집안에서 즐겨 먹었던 식자재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진주허씨 묵동댁 내림음식/

# 허완구와 진주허씨 묵동댁 내림음식

‘진주허씨 묵동댁 내림음식’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허만정 집안에 예로부터 전해오는 요리 혹은 스스로 개발한 음식 조리법을 허씨가(家) 며느리가 수년간 노력해 재현한 것이다. 허씨 집안 선대가 즐기던 음식을 통해 집안 전통의 맥을 후손에게 전하고자 사진과 기록으로 그 과정을 세세하게 소개한 것이라 더욱 가치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지수 허씨가문은 김해허씨로 알려져 있는데 제목을 왜 진주허씨로 표기했는지 궁금점을 가지고 있다.

2013년 출간된 이 책을 주도적으로 편찬한 분은 허완구와 부인 김영자 승산나눔재단 이사장이다.

이 책을 소개하는 글의 일부이다. ‘진주허씨 묵동댁 내림음식, 여기서 묵동은 어머니 택호이다. 합천군 삼가면 초계 정씨 가문으로 지수에 시집을 왔다. 과거 양반집에는 여자가 시집을 오면 호칭에 택호를 붙여 주었다. 어머님은 합천 묵동에서 오셨기 때문에 우리 집안 전체를 묵동댁이라 부른다. 묵동댁 음식은 보통사람이 쉽게 즐겨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일상적으로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음식을 만들되 제일 중요한 부분을 ‘간 맞춤’에 두었다.’

김영자 이사장은 “허씨 집안에 시집을 와서 보니 시댁은 자녀들의 학교 교육 관심은 물론 선비 가풍의 집안 전통 교육을 중요시 여겼다. 음식에 대해서도 함부로 하지 않고 검소함을 강조하면서 만든 과정도 매우 중요시 여겼다”고 했다.

생선을 좋아한 허씨 집안에서 겨울에 대구를 말리기 위해 담장 위에 걸쳐 놓으면 친구들과 함께 살점을 떼어 먹었다는 구자경 회장의 회고도 있다.
생선을 좋아한 허씨 집안에서 겨울에 대구를 말리기 위해 담장 위에 걸쳐 놓으면 친구들과 함께 살점을 떼어 먹었다는 구자경 회장의 회고도 있다.

# 진주허씨 묵동댁 내림음식 도서 소개

‘진주허씨 묵동댁 내림음식’은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로 나눠 계절별 대표적인 제철음식 74종류를 선정했다. 그리고 저장음식 8종류, 제사음식 7종류와 함께 모두 89가지 요리를 소개하고 있다.

1부는 화전, 지수잔치, 집장, 대구, 지신정으로 되어 있다. 2부는 봄 요리로 13가지, 3부는 여름 요리 15가지, 4부는 가을 요리 21가지, 5부는 겨울 요리로 24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6부는 저장음식 7가지로 젓갈류가 많다. 7부는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과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허씨 집안에 시집을 온 며느리들은 집안에 제사가 있으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어려움이 있을 때 이 책을 활용하면 편리하다고 한다.

진주허씨 묵동댁 내림음식 도서는 서부경남 지역에서 생산되는 재료, 제철에 적합한 음식, 당대 명문 가정의 음식 재료 및 조리법 등을 알 수 있다.

요리연구 단체나 시청, 공공기관에서도 관심을 가져 진주지역 양반댁 음식문화 기록서로 재평가되고 정리돼 장계향의 ‘음식 디미방’만큼 그 존재와 가치가 인정받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허만정의 차남 구계 허학구 회장./사진제공=지수면 이재석/
허만정의 차남 구계 허학구 회장./사진제공=지수면 이재석/

# 독자가 제공해준 허학구 회장 사진

허만정의 아들 8명은 모두 경영인이다. 자료검색을 하면 사진과 주요 경력 등 개인의 활동 이력이 공개되고 있다. 차남 허학구 회장에 관한 자료는 새로닉스 그룹의 전신인 정화금속 설립자 정도만 언급하고 있다. 얼굴 사진이나 활동기록이 소개된 내용이 전무한 상태다.

2023년 10월, 지수면에 살고 있는 이재석님께서 필자에게 허학구 사진을 보내 주셨다. 또 하나의 소중한 자료 수집에 기쁜 마음이다. 이재석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7형제의 사진은 모두 공개된 상태이다. 타인의 사진 공개에 대한 초상권 문제가 있을까 자문도 받았다. 최종적으로 가족에게는 연락이 어려워 동의를 받지 못했다. 사진 공개에 대해 지면을 통해 양해 말씀을 정중하게 드리고 싶다.

허학구 회장도 한국 경제사와 초기 락희화학의 성장에 주요한 역할을 한 공인이기에 기록을 남겨두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했다.

이래호 LG그룹 구인회 회장과 기록 저자
이래호 (구인회 LG그룹 회장, 기록 저자)

이래호 (구인회 LG그룹 회장, 기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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