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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국회의원의 자격- 양영석(지방자치부장)

기사입력 : 2024-02-05 19:25:10

‘안녕하십니까. ○○○ 국회의원 예비후보 ○○○입니다….’

생소한 발신번호로 걸려 온 전화를 망설이다 받으면 어눌하고 투박한 음성이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다. 듣도 보도 못한 사람이다. 그것도 육성이 아닌 녹음이다. 일말의 주저 없이 전화를 끊는다. 스팸성 전화를 받은 것도, 내 전화번호가 노출된 것도 언짢다.

어떡하든 자신의 이름을 알려야 하는 후보자의 간절함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방법이 틀려먹었다. 녹음한 목소리로 지지를 부탁하는 후보에 표심을 줄 유권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선거 몇 달 전에 불쑥 지지해 달라고 하니 염치도 없어 보인다. 국회의원에 출마하려면 적어도 1~2년 전부터 지역구를 돌아다니며 주민들에게 자신의 얼굴을 내비치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 아닌가.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다. 이런 식으로 어설프게 자신을 홍보하는 사람이 당선되면 과연 국회의원직을 잘 수행할 수 있을까. 선거운동 기간에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도와달라고 읍소하지만 막상 배지를 달고 나면 어깨에 힘주고 다니며 주민 위에 군림하려 할 것이라는 억측까지 하게 된다.

법률상 국회의원의 자격은 만 19세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피선거권을 가진 자다. 법률상 자격을 넘어서 국회의원으로서 갖춰야 할 자질은 무엇일까?

국회의원은 국민의 뜻을 받들어 국가와 사회의 발전을 위한 법과 정책을 입안하는 만큼 다양한 목소리를 경청하고 대변할 수 있어야 하고 국가와 사회의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갖춰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의 대표자로서 국민과 소통하면서 함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런 자질 있는 사람은 드물뿐더러 일반인이 그 능력치를 판별하는 것은 쉽지 않다. 프로필·정책공약이 있긴 하지만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자료는 아니다.

그렇다면 역으로 국회의원이 되어선 안 될 사람을 걸러내는 것이 더 현명할 수도 있겠다.

다행히 이런 사람을 가려낼 수 있는 지표(?)는 여러 개 있다.

지역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사람은 일단 배제하는 게 좋을 듯하다. 그 지역 사정도 제대로 모르는데 뭘 어떻게 하겠다는 말인가. 그는 당선되더라도 임기가 끝나면 미련 없이 원래 자신이 살던 곳으로 떠나는 뜨내기일 가능성이 높다.

전과가 있는 사람은 당연히 배척돼야 한다. 학생운동 등을 하다가 전과자가 된 사례는 제외하더라도 사기, 뇌물, 음주 운전 등 전과자는 사회 통념상 국회의원이 되기에 흠결이 있다. 한 통계에 의하면 4.10총선에 출마 준비 중인 예비후보 1143명 중 430명(37.6%)이 전과자이고 음주 운전 전과를 보유한 예비후보는 141명(12.3%)으로 집계됐다.

현역 국회의원의 경우 임기 동안 치적을 눈여겨보자. 지역이 예전보다 살기가 더 나빠졌거나 발전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는 한번 더 선택받을 자격이 없다고 봐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먼저 혁신돼야 할 분야는 정치다. 대충이라도 후보자의 능력과 자질을 따져보지 않는 ‘묻지마 투표’가 그 빌미가 됐지 않나 싶다.

지역주의, 진영논리에 매몰돼 투표하는 구시대 선거문화는 지역을 망치고 정치를 망치고 나라를 망친다.

양영석(지방자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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