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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스물두 번째 통영의 봄- 강지현(문화체육부장)

기사입력 : 2024-03-20 19:44:07

오스트리아 서쪽의 작은 도시 잘츠부르크엔 1년 내내 음악이 흐른다.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적인 건축물이 어우러진 음악의 도시. 잘츠부르크는 18세기 천재 음악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의 고향이다.

이곳에선 매년 여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열린다.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연주자, 성악가들이 모여 그들의 예술과 열정을 나눈다. 페스티벌이 열리는 5~6주 동안 도시는 온통 축제장이 된다. 대축제극장, 모차르트 하우스 등 20여곳에서 200여회의 공연이 열린다. 전 세계 음악 애호가들의 버킷리스트이기도 한 이 축제엔 매년 25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는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이 페스티벌은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영국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과 함께 유럽의 3대 음악축제로 꼽힌다.

대한민국 남쪽의 작은 도시 통영엔 ‘아시아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로 불리는 음악제가 있다. 그러고 보면 통영과 잘츠부르크는 닮은 구석이 많다. 위대한 음악가를 낳은 예술의 도시, 아름다운 자연환경, 세계적인 음악제가 열리는 점 등이 그렇다.

국내 첫 ‘유네스코 음악 창의도시’ 통영은 눈부신 바다를 낀 예향(藝鄕)이다. 통영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이 자란 곳이기도 하다. 매년 봄 이곳에선 그를 기리는 ‘통영국제음악제’가 열린다. 축제가 열리는 열흘간 통영은 음악으로 들썩인다. 공식 공연이 열리는 통영국제음악당 외에도 강구안, 동피랑 등 시내 곳곳에서 ‘축제 속 축제’ 프린지 공연이 펼쳐진다.

통영국제음악제는 1999년 ‘윤이상 음악의 밤’을 모태로 지난 2002년 출범했다. 그동안 세계적인 음악가와 연주단체들이 통영을 찾았다. 한 번 왔던 음악가들은 통영에 반하고 만다. 통영국제음악제는 외부에서 매력을 더 인정받는 축제다. 위상도 한층 높아졌다. 음악제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작곡가 진은숙이 지난 1월 ‘클래식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에른스트 폰 지멘스 음악상을 받은 덕분이다. 아시아인 최초다.

올해로 스물둘 청년이 된 통영국제음악제는 그동안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현대음악제로 성장했다. 음악제의 성장은 이념 논쟁과 정치적 편견을 극복하고 지역의 한계를 뛰어넘는 과정이었다. 그 지난하고 치열한 과정을 모르지 않는다. 다만 그동안 음악제의 뿌리 ‘통영’을 간과하진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지난달 통영국제음악제 관계자 워크숍에서 나온 ‘찐통영 논의’는 그래서 더 반갑고 의미 있다. 시민 서포터스 ‘황금파도’를 넘어 지역과의 접점을 더 확대해야 한다. 지역민들이 음악제를 ‘남의 나라 얘기’로 느껴선 안 된다. 외부에서 인정받는 만큼 내부에서 사랑받는 축제로 거듭나야 한다.

지난해 통영국제음악제에서 본 ‘카바코스와 친구들’ 공연을 잊지 못한다. 전국에서 모여든 관객들, 꽉 찬 객석에서 터져나오는 환호와 박수, 관객들 얼굴에서 비친 감동과 흐뭇함은 무대를 더 빛나게 했다. 음악제 기간 통영시민들 얼굴에도 이 같은 뿌듯함과 자부심이 묻어나기를, 그래서 통영국제음악제가 통영시민들의 자랑거리가 되기를 바란다.

오는 29일 2024통영국제음악제가 개막한다. 국내외 유명 음악가들이 ‘세계 초연’ ‘아시아 초연’ ‘한국 초연’은 물론 어디서도 보지 못한 새롭고 색다른 무대를 펼친다. 코로나19로 5년간 중단됐던 프린지 공연도 재개된다. 음악으로 물들 통영의 스물두 번째 봄이 기대된다.

강지현(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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