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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ON- 이달균의 경남 영화 촬영지 돋보기] (4) ‘올드보이’ 합천댐

“누구냐 넌?”

기사입력 : 2024-04-05 08:12:33

청명 앞두고 합천 간다. 오락가락 비가 내렸는데 차를 세우자 고맙게도 잠시 그쳐주어 댐을 걸어 보았다. 강우량이 많지 않아서인지 합천호에 물은 그리 많지 않다. 영화 ‘올드보이’에서는 남동생 손을 놓고 떨어지는 찰나의 물 너울이 고요했다. 그런 고요가 오히려 두려움을 자아낸다. 그 죽음은 어떻게 변주되어 질까.

영화 개봉 이후 20년이 지나 찾아간 촬영지는 을씨년스럽다. 전망대 공사 중이라 그런가 싶었지만 댐이란 원래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기에 더욱 그럴밖에.


죽음에서 건져 올린 영화적 상상력
금기와 절망에 가득 찬 고통의 기록
빛깔 다른 두 복수로 접힌 데칼코마니

합천댐 무대로 촬영한 ‘올드보이’ 명장면
남동생 손을 놓고 떨어지는 누나의 아련한 눈빛
개봉 20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들 뇌리에 생생
칸영화제 그랑프리 수상… 한국 영화 세계에 알린 신호탄

‘올드보이’ 명장면 합천댐 스틸컷.
‘올드보이’ 명장면 합천댐 스틸컷.
영화 ‘올드보이’ 촬영지 합천댐./이달균 시인/
영화 ‘올드보이’ 촬영지 합천댐./이달균 시인/

◇영화를 관통하는 문제적 대사

“누구냐 넌?”

수없이 많은 오마주와 패러디를 낳은 영화 ‘올드보이’엔 명대사와 명장면이 많다. 하지만 이 한마디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극 전체를 관통하는 이 짧은 질문은 영화를 관통하는 문제적 대사가 아닐까. 그렇다.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 15년 동안 날 이곳에 감금시킨 그대는 누구인가? 처음 봤는데, 나도 모르게 끌리는 이 여인은 또 누구인가? 꽉 조인 매듭을 풀어나가면서 새로운 의문의 성벽에 부딪히는 한 사내의 절규와 복수, 그 처절함의 끝에서 만나는 절망의 무게를 어찌 감당할 것인가. “오늘만 대충 수습하고 산다”는 뜻의 이름 오대수(최민식), 현대를 사는 샐러리맨들은 늘 오늘 하루가 무사하길 빌면서 출근한다. 그러므로 오대수와 관객은 과장되지만 비슷한 눈높이에서 동일시된다. 바로 그런 기시감 속에서 극장을 나오며 자신을 타자화시켜 묻는다. “누구냐 넌?”

시간을 2004년으로 돌려보자. 한국인에게 그해 칸영화제는 박찬욱 감독을 위한 영화제처럼 느껴졌다. 심사위원장인 쿠엔틴 타란티노는 심사위원대상에 ‘올드보이’를 호명했고, 장내엔 7분 동안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그날의 뜨거운 함성은 세계 영화계에 한국 영화를 본격적으로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고, 그렇게 쏘아 올린 불꽃은 그 위상을 지구촌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박히게 했다. 물론, 이전에도 한국영화사를 장식한 금자탑은 꾸준히 세워지고 있었다. 1987년 배우 강수연이 ‘씨받이’로 베니스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2002년 제55회 칸에서 임권택 감독이 ‘취화선’으로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초석을 닦았다. 그리고 ‘올드보이’가 칸영화제를 강타하면서 비상의 날개를 달았고, 해외 영화제가 주목한 감독인 김기덕, 홍상수, 이창동 등을 거쳐 마침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2020년 제92회 아카데미를 들어 올리는 쾌거를 이룩했다. 다시 말해서 한국 영화의 전성기를 여는 과정에서 이 영화가 매우 중요한 징검돌 역할을 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듯하다.

그래서일까. 벌써 개봉 20년이 넘었고, 아직도 영향력 면에서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분명 클래스는 영원하다. 2013년 미국에서 스파이크 리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되었고, 발리우드라 불리는 인도에서도 리메이크되었으니 그 파급력은 실로 크다 하겠다. 2018년 BBC 선정 외국어 영화 29위에 선정되는 등 전 세계적으로 2000년대를 대표하는 영화 중 하나로 회자되고 있다. 2023년엔 미국개봉 20주년을 기념하여 재개봉되었고, 수입이 100만달러(약 13억4000만원)를 넘어서는 흥행 돌풍을 일으키면서 한국영화의 강력함을 조명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기생충’과 ‘올드보이’의 미국배급사 ‘네온’은 “한국영화는 ‘올드보이’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라고 했으니 이 영화의 위상은 알 만하다.

올드보이 포스터와 스틸컷.
올드보이 포스터와 스틸컷.

◇쉿! 섣부른 세 치 혀는 죽음을 부른다

촬영 전, 영화의 시나리오를 받고 출연자들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보수적인 한국의 상황 속에서 이 영화가 대중적으로 어떻게 인식될까 하는 것은 당연한 물음이었다.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중요한 두 요소는 복수와 근친상간이다. 특히 근친상간은 한국 예술사 전체를 통틀어 봐도 별반 시도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1950~1960년대 전성기를 지나온 일본에서도 그리 흔한 소재는 아니다. 거장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나라야마 부시코’에서는 고려장과 형수를 취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또한, 한 지역의 오랜 풍습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이와 비견될 성질의 것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 오대수는 이유도 모른 채 15년을 한 사설 감옥에 감금된다. 수시로 가스에 정신을 잃고 깨어날 즈음 최면에 걸린다. 최면 속에 등장하는 한 여성, 그곳에서 멀지 않은 어느 횟집에 근무하는 미도(강혜정) 또한 오대수의 환상과 얽혀있다. 이는 복수를 위해 씨줄과 날줄로 철저히 얼개를 엮어 둔 이우진(유지태)의 작품이다. 흡사 거부할 수 없는 자석에 끌리듯이. 아버지 오대수와 딸 미도는 우진의 연출 속에서 배우처럼 서로를 탐한다. 영화는 다시 더 과거 고등학교 시절로 간다. 우진과 누이 수아(윤진서)를 먼발치에서 본 오대수는 친구들에게 은밀하고 이상야릇한 얘기를 한다. 근친상간에 대한 소문은 일파만파 퍼져나간다. 결국, 오대수의 세 치 혀로 인해 수아는 댐 아래로 몸을 던진다.

그 댐을 촬영한 현장이 바로 합천댐이다. 이 댐은 경남 합천군 대병면 회양리와 상천리에 걸쳐있다. 1982년 4월에 착공하여 1989년 5월에 준공하였다. 사진을 찍기 위해 아래쪽에서 위로 올려다보니 콘크리트로 축조된 구조물이 아찔하다. 자연스레 우진의 손을 놓고 떨어지는 수아의 아련한 눈빛이 겹쳐온다. 컬트액션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쿠엔틴 타란티노가 이 장면에서 오열했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그 고통스러운 장면에서 빠져나와 합천호 전경을 바라보면 경관이 예사롭지 않다. 황매산이 근처에 있고, 악견산 그늘이 물 위에 떠 있다. 승용차로 합천호를 한 바퀴 돌아도 꽤 시간이 걸린다. 멀리 해인사를 품은 가야산 국립공원이 있고, 기암괴석을 자랑하는 매화산이 어우러져 관광 명소로 손색없다. 기왕에 시간을 할애한다면 이 댐에서 멀지 않은 합천영상테마파크를 둘러보는 것도 좋다. 200편이 넘는 드라마, 영화, 뮤직비디오 등을 촬영한 곳이니 함께 즐기기엔 충분한 곳이다.

다시 감독의 시선으로 옮겨가 보자. 박찬욱 감독은 근친상간의 소재를 그리스 신화 속 가장 비극적인 영웅 오이디푸스에서 찾아왔다고 한다. 데포이 신전에서 아폴론으로부터 “네 아들이 너를 죽이고 네 아내와 결혼할 것이다”란 신탁의 예언을 들은 테베의 왕 라이오스. 그 비극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아들 오이디푸스를 강보에 싸 숲에 두고 온다. 문제는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비극적 예언의 주인공인지도 모른 채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수밖에 없었던 오이디푸스의 절망은 그리스 신화를 읽은 사람이라면 다 안다. 그 원류에서 기인한 패륜은 시나리오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고, 영화적 상상력의 전후를 이어주는 논리적 완결성을 갖게 된다.

그렇게 이우진은 누이를 떠나보내고 그 복수를 위해 삶의 모든 것을 바친다. 그에게 복수는 삶의 목적이며 최후의 가치가 된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금기를 넘어 절대적 사랑이었기에 그 죽음은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는 상실의 아픔이었다. 하지만 오대수 부녀에게 근친상간은 사랑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조종당한, 약물과 최면으로 파생된 괴이한 관계에 불과하다. 결국, 원인과 결과를 모르는 딸에게만큼은 완벽한 비밀로 해달라 애걸하면서 우진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혀를 가위로 잘라버린다. 세 치 혀를 잘 못 놀린 대가를 이렇게라도 치르고 싶다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영화 ‘올드보이’ 스틸컷.
영화 ‘올드보이’ 스틸컷.
영화 ‘올드보이’ 스틸컷.
영화 ‘올드보이’ 스틸컷.
영화 ‘올드보이’ 스틸컷.
영화 ‘올드보이’ 스틸컷.

◇복수, 사회를 이루고 사는 인간의 원죄적 욕망

그런 두 남자(우진과 대수)의 날 선 대립도 돋보이지만 젖 먹던 힘으로 일군을 제압하는 액션 장면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최민식이 죽을힘을 다해 연기한 이 장면은 국내는 물론 외국의 여러 영화인에게 영감을 주고 오마주되었는데 흔히 ‘장도리 액션’이라 불린다. 혼자서 십수 명을 복도에서 상대하는 장면이다. 롱테이크로 17번의 촬영 만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올드보이’는 금기와 절망에 가득 찬 고통의 기록이지만 철저한 미장센으로 양식화된 세련미를 주 무기로 하고 있다. 피로 점철된 잔인한 복수극도 감독의 능력에 따라 예술의 극점에 닿을 수 있다. 그렇다. 이 영화는 빛깔이 다른 두 복수로 접힌 데칼코마니다. 15년을 유폐시킨 끝에 근친상간이란 올가미를 씌워 내가 당한 고통을 그대로 전이시키는 이우진의 복수, 멋모르고 잃어버린 세월과 천륜을 패륜으로 몰고 간 이우진을 향한 오대수의 복수. 이 두 대칭을 이룬 복수극은 마침내 처연한 눈밭에서 최면술사의 목소리를 들으며 기괴하고도 낯선 풍경의 온도를 느끼며 끝난다. 물론 영화가 끝나는 것이지 그 운명이 종식된 것은 아니다. 이후의 일은 관객의 몫으로 남는다.

이 아름답고 충격적인 영화는 박찬욱 감독의 복수극 3부작 중 하나다. 복수란 무엇일까. 삶 속에서 걸러내지 못한 찌꺼기처럼 남아 있는 그 무엇을 치워버리고 싶은 마지막 욕구가 아닐까. 어떤 이는 이쯤에서 참고 지나가자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도무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 결행해 버리는 것이 바로 복수인 것이다. 그렇게 보면 복수심은 혼자가 아닌, 사회를 이루며 사는 인간의 원죄적 욕망이며 카타르시스나 다름 없다. 그런 각양각색의 모습을 영화 속에서 구현하고 싶었다면 원래 목표한 지점에 가까이 닿은 것이다. 3부작 중 첫 번째 영화는 계급에서 한 걸음 멀어진 경계인이 세계라는 질서 속에서 같은 계급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부조리한 상황을 블랙코미디로 그려낸 ‘복수는 나의 것’이고, 두 번째는 감독 특유의 유미적 감각이 돋보인 ‘친절한 금자씨’이며 세 번째 작품이 바로 이 영화다.

원작은 일본 만화이다. ‘망가액션’지에서 1996~1998년에 연재된 만화 ‘루즈 전기 올드보이’가 그것이다. 츠치야 가론이 쓰고, 그림은 미네기시 노부아키가 그렸다고 한다. 당시 일본에선 주목받지 못한 작품이어서 원작료를 싼값에 사 올 수 있었다. 모든 작품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데 이 영화 역시 그런 내막이 재미있다. 처음 이 만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봉준호 감독이었다고 한다. 봉 감독은 내용이 박찬욱 스타일이라며 추천하였고, 결국 영화화로 이어졌다고 한다. 감독은 원작의 복수와 영화의 복수를 전혀 다르게 각색했다. 이유는 총 8권의 복수극을 2시간짜리 러닝타임으로는 관객을 납득시키는데 한계가 있어 부득이 다른 차원의 복수를 그려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촬영 당시 영화사에서 실수로 각색된 시나리오를 원작자에게 보내지 않았고, 그 실수 덕분에 새로운 내용의 걸작이 탄생되었다고 하니 이래저래 숨겨진 비화는 역시 재미있다.

이달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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