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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조짐- 이상권(서울본부장)

기사입력 : 2024-04-14 19:21:16

지난 3월 13일 윤석열 대통령은 삼천포 용궁수산시장을 찾았다. “윤석열” 연호에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대선 유세장을 방불케 했다. 예정 시간을 훌쩍 넘겨 손을 잡고 눈을 맞췄다. 3주 전인 2월 22일 마산 어시장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불과 한 달 뒤 총선이 ‘권력 도파민’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곤 상상조차 어려운 분위기였다. 넘치는 환호성을 대체적 민심으로 해석한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여당으로선 ‘민심은 천심’이란 경구를 받아들이기 힘든 성적표를 손에 쥐었다. 국민의힘 108석은 국민이 명줄만 붙여 놓은 것(홍준표)이란 게 적확한 묘사다. 192석 범야권에 포박당했다. 그나마 탄핵 마지노선 200석엔 못 미치는 절묘한 경고다. 대통령은 이제 민심 청구서를 결재할 시간이다. 차갑게 식은 여론과 냉혹한 정치 현실을 맞닥뜨려야 한다.

▼조짐은 나중 일이 벌어지는 양상을 추측할 수 있는 움직임이나 변화다. 기미(機微)는 ‘지극히 미미한 조짐’이다. 초기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결과가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다. 호기 아니면 위기다. 총선 결과는 일찌감치 예견된 조짐이라고 해도 과언 아니다. 예감하지 못했다면 공감력 부재다. 국민에게 다가서겠다며 청와대를 나온 대통령 집무실은 불통의 철옹성을 쌓았다. ‘도어스테핑’은 중단했다. 대국민 소통 창구인 기자회견은 사라졌다. 여론에 귀를 닫았다. ‘용산’은 국민 목소리가 담장을 넘지 못하는 새로운 구중심처로 자리 잡았다.

▼정치가는 냉철한 현실 감각을 가져야 한다. 민심 변화를 재빨리 파악하는 ‘지기(知機)’가 필수 요건이다. 꽃잎 하나 날려도 봄이 간다(一片花飛減却春. 두보 ‘곡강’)고 하지 않던가. ‘정치가의 거리감 상실은 곧 죽음과 입맞춤하는 일이 될 것이다.’(막스 베버) 미세한 조짐을 꿰뚫고 변화의 방향을 미리 판별해야 화를 면한다. ‘서리를 밟으면 단단한 얼음에 이른다(履霜堅氷至)’ 했다.

이상권(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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