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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을 빛낸 경남의 거장들] (8) 문신

삶과 예술의 혼연일체… 우주와 생명을 조각하다

경남신문·경남도립미술관 공동기획

기사입력 : 2024-04-22 20:16:24

1961년 프랑스로 건너가기 전까지 회화 작가 활동
1970년 ‘국제 조각 심포지엄’으로 유럽 미술계 이름
1980년 고향 마산에 미술관… 조각 등 3900여점 소장
1994년 ‘레종 도뇌르 오피시에’ 수상 등 최고 작가 명성


1988년 9월 서울 올림픽공원에 스테인리스 스틸로 제작된 높이 25m의 ‘올림픽 1988’이 세워졌다. 화합과 평화라는 올림픽 정신을 형상화한 이 조각은 문신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작품으로 72개국 190여 명의 조각가가 참여한 ‘서울 올림픽 국제 야외 조각 초대전’에서 단연 돋보였다. ‘서울 올림픽 국제 조각 심포지엄’ 운영위원 중 한 명이었던 피에르 레스타니는 이 작품에 대해 “출품작 중 가장 스펙터클하며 우주와 생명의 음률을 시각화한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이를 계기로 문신은 조각가로서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었으며, 대칭과 균제미(均齊美)(균형이 잡히고 잘 다듬어진 아름다움)라는 문신 조각의 주요 특징 또한 널리 알려지게 된다.

문신 <올림픽 1988>, 스테인리스 스틸, 25x8x8.3m, 1988, 올림픽공원.
문신 <올림픽 1988>, 스테인리스 스틸, 25x8x8.3m, 1988, 올림픽공원.

사실 문신은 1970년 프랑스 남부 해안 도시 포르-바르카레스에서 열린 ‘국제 조각 심포지엄’에 13m 높이의 나무 조각 ‘태양의 인간’을 발표하며 유럽 미술계에 일찌감치 등장했다. 그는 1990년과 1991년에 걸쳐 자그레브 국립박물관, 사라예보 시립미술관, 부다페스트 국립역사박물관에서 ‘유럽 순회 회고전(Exposition Retrospective Itinerante)’을 개최하기도 했다. 1992년에는 파리 시청에서도 ‘유럽 순회 회고전’을 열었는데, 이 전시는 헨리 무어, 알렉산더 칼더와 함께 ‘세계 3대 조각 거장’의 일환으로 개최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심지어 문신은 1992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종 도뇌르 슈발리에(Legion d’Honneur Chevalier)’, 1994년 ‘레종 도뇌르 오피시에(Legion d’Honneur Officier)’를 수상하며 명실공히 프랑스에서 인정받은 최고의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문신 <화(和)>, 스테인리스 스틸, 191x269x65㎝, 1984, 경남도립미술관 소장.
문신 <화(和)>, 스테인리스 스틸, 191x269x65㎝, 1984, 경남도립미술관 소장.
문신 <무제>, 흑단, 140x45x18㎝, 1975,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소장.
문신 <무제>, 흑단, 140x45x18㎝, 1975,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소장.

한편 2022년 8월에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문신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문신 文信 : 우주를 향하여’라는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다. 이 전시에는 조각은 물론 회화, 드로잉, 도자를 비롯해 각종 서지류와 영상자료가 출품되었는데, 조각으로 유명하던 문신의 다양한 작품 세계를 이해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주목받은 전시였다. 실제로 문신은 1961년 프랑스로 건너가기 전까지 주로 회화 작가로 활동했다. 특히 자신이 체험한 현실을 바탕으로 한 그림들은 작가가 이해한 당시 사회 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평가된다. 1950년 제작된 ‘닭’이 그 한 예다. 닭장에 빼곡히 갇혀 있는 닭과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그 앞에 앉아 있는 남자의 모습이 인상적인데, 전쟁통에 힘겹게 살아가는 서민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문신 <닭장>, 캔버스에 유채, 141x103㎝, 1950,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이건희컬렉션).
문신 <닭장>, 캔버스에 유채, 141x103㎝, 1950,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이건희컬렉션).

1950년은 그에게 잊지 못할 상처가 있는 해이기도 하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8월 9일 그는 영문도 모른 채 경찰에 체포되어 3개월간 수감되었다가 “미안하다”는 말만 듣고 석방되었다. 머리를 길게 기른 채 다녀 ‘거창양민학살 사건’의 빨치산 관련자로 오해받아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당시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보도연맹사건’으로 형을 치르거나 목숨을 잃는 시기였기에 풀려난 것만으로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출감 직후 그는 종군화가로 입대하는데, 이때 ‘야전병원’(1952)이라는 목판화를 제작한다. 작품은 붕대로 머리를 감싸거나 안대를 한 부상병들에게 간호사가 책을 읽어주는 장면을 담고 있다. 병원이지만 침대는커녕 이부자리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문신 <야전병원>, 목판화, 28x32㎝, 1952,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소장.
문신 <야전병원>, 목판화, 28x32㎝, 1952,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소장.
문신 <소>, 캔버스에 유채, 76x102㎝, 1957,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문신 <소>, 캔버스에 유채, 76x102㎝, 1957,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그의 회화 중 주목할 또 다른 작품은 1957년에 제작된 ‘소’다. 작품에 등장하는 소는 기존 한국의 회화에 등장하는 향토적 대상으로서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소의 다리와 몸통, 엉덩이는 각각 다른 시점의 형태이면서 동시에 단순화와 도식화의 과정을 거쳐 재구성되었다. 마치 피카소의 입체주의를 연상케 하는데 실제로 문신은 피카소의 작품을 자주 모사하기도 했었다.

문신 <태평로에서>, 캔버스에 유채, 41x30cm, 1959,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소장.
문신 <태평로에서>, 캔버스에 유채, 41x30cm, 1959,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소장.

문신을 이야기할 때 빠트릴 수 없는 것이 있는데 바로 문신미술관이다. 1980년 10월 문신은 프랑스에서의 작가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해 고향인 마산 추산동에 미술관을 짓기 시작한다. 14년에 걸쳐 건립한 문신미술관은 문신의 또 하나의 역작이다. 문신미술관은 바닥 타일의 패턴부터 연못, 폭포, 분수, 그리고 나무들까지 모두 문신의 손길로 완성되었다. 이곳에는 그가 남긴 조각, 석고원형, 유화, 채화, 드로잉, 유품, 공구 등 총 3900여 점의 작품 및 자료가 보관되어 있다. 그는 미술관을 건립한 1년 뒤인 1995년 5월 25일 삶의 여정을 멈추었지만, 그의 정신을 담은 미술관을 통해 오늘도 우리와 함께 숨 쉬고 있다.

김재환 경남도립미술관 학예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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