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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엄마도 엄마가 필요하다 - 이선애(수필가)

기사입력 : 2024-05-07 21:25:45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열무김치를 담가두었으니 가져가라고 하신다. 편안하게 앉아 엄마가 내어주시는 맛난 음식들을 먹으며 한나절을 친정에서 잘 쉬었다. 팔순의 엄마는 바른 정신으로 자기 발로 다니다가 두어 달 아프고 가시는 것이 소원이라 하신다. 치매가 두려워 매일 운동하고 글씨를 쓰신다. 식탁에 경전을 정성스럽게 써 내려간 종이가 보인다. 이런 우리 엄마도 봄나물을 무쳐주던 엄마가 있었고, 다정한 오빠는 누이를 위해 화롯불에 참새를 구워주었고, 볼이 붉어지는 첫사랑이 피어났을 것이고, 들과 산에 피는 꽃과 풀을 좋아했을 것이다. 나는 엄마의 입 모양과 눈매와 낮은 코를 닮았다. 엄마가 없다는 생각조차 해 본 일이 없다. 참 어리석은 딸이다.

김은정 교수는 박완서의 소설 ‘해산 바가지’를 통해 치매를 바라볼 때 필요한 메시지를 전한다. “나는 하마터면 큰일을 저지를 뻔했다. 그분의 망가진 정신, 노추한 육체만 보았지 한때 얼마나 아름다운 정신이 깃들었었나를 잊고 있었다. 비록 지금은 빈 그릇이 되었다 해도….” 환자의 몸이 아니라 마음을 어루만져 주어야 한다. 병든 노인으로만 보지 않고 그 속에 있는 아픔과 슬픔과 고통을 발견하고 다정한 마음으로 보듬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치매 환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해 올해는 1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한다. 노인 치매 관리 강화·간병비 부담 경감 등 보건의료 공약을 발표한 바 있다. 얼마 전 치매 아버지를 홀로 돌보던 50대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슴 아픈 일이 있었다. 현재 국가에서 치매 노인에게 지원하는 장기요양보험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이 부자는 아무 도움을 받지 못하였다. 치매 판정을 받은 아버지를 혼자 모시던 아들은 얼마나 먹먹하고 고단하였을까?

치매라는 무서운 강을 건너는 환자나 가족에게 국가의 지원은 꼭 필요하다. 삶의 끝자락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손상되지 않는 아름다운 마무리가 될 수 있도록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만든 것이 엄마다. 이러한 엄마도 엄마가 필요하다.

이선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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